[이리저리뷰] 고통의 역사, 어원도 찾기 힘든 왕들의 기록

2023.07.23 08:32:24

조선 왕조의 역사를 실감나게 편찬한 조선왕조실록. 국보 제151호이자 국제연합(UN) 교육·과학·문화 전문 기구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인 이 기록물은 1400년 이후 한반도를 위시한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온갖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 군사적 동향을 연월에 맞춰 글로 돋보기처럼 묘사한 방식과 잡다하다는 얘기까지 들을 만큼 꼼꼼하게 챙긴 내용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것은 물론 지금 봐도 혀를 내두를 만합니다. 참고로 조선왕조실록은 국사편찬위원회가 별도 개설한 조선왕조실록 사이트(클릭하면 이동)에서 누구나 언제든 열람 가능합니다.

 

어떤 일까지 기재했는지 좀 더 이색적인 기록을 뒤지던 중 오늘 날짜와 가장 가까운 세종 5년(1423) 7월21일 기해 두 번째 기사에서 '평안도 삼화현(三和縣) 사람 박독동(朴禿同)과 개새끼가 벼락을 맞았다(震平安道三和縣人朴禿同及狗兒)'는 내용을 찾았습니다. 혹시나 하고 조선왕조실록 사이트에서 벼락을 검색하니 국역 798건, 원문 441건으로 모두 1239건이나 나오네요.

 

조선왕조실록을 더 살폈더니 왕과 그 가족들이 치통으로 고생하는 기사가 상당히 많다는 걸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저것 흥미롭게 보다가 가장 먼저 찾은 기사는 성종 11년(1480) 7월8일 병술 네 번째인데 '치통과 식상증(食傷證, 음식 탓에 생긴 소화불량 등 위장질환)에 관한 약을 중국 사신에게 물어 구하도록 승정원에 전교(傳敎, 임금이 명령을 내림)하다'라는 부분입니다.

 

 

저도 몇 해 전쯤 역사서적에서 읽은 기억이 있는데 역사학 연구를 하던 전문가들의 추정은 치통이 오랜 기간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것을 감안하면 단순히 이가 아픈 충치가 아니라 사랑니, 그것도 수평 매복 사랑니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아직 추정에 그친 이유는 전주 이 씨 문중이 조사를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고요.

 

여기서 또 하나 관심 있게 볼 부분은 사랑니가 어떻게 생긴 이름인지 어원을 찾지 못했다는 것인데요. 국립국어원도 어원을 묻는 질문에 난색을 표한 사랑니는 사랑을 알게 되는 사춘기 무렵부터 나오기 시작하고 그 통증이 첫사랑 가슴앓이와 비슷한 정도로 고통스러워 이 같은 이름을 붙였다는 구전이 나돕니다.

 

많은 분들도 아시겠지만 유럽에서는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될 즈음 사랑니가 나온다 해서 지혜의 이(wisdom tooth)라 부르며 치의학에서도 이를 따와 지치(智齒)라 칭한다고 하네요. 가장 안쪽에 있는 어금니로 영구치 가운데 가장 대형인 대구치, 그중에서도 제3대구치의 속칭인 사랑니는 보통 왼쪽과 오른쪽 위 아래턱 한 개씩 모두 4개가 나오지만 개수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정상적으로 자라 다른 이처럼 청결하게 관리하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위치가 위치인지라 등 매복지치(埋伏智齒), 수평지치(水平智齒), 반매복지치(半埋伏智齒) 등 잇몸과 신경을 괴롭혀 결국 통증 없이 지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죠. 

 

'짐이 곧 국가'와 마찬가지였던 조선 왕정에서 임금의 옥체에 제대로 손도 대지 못한 채 이유도 모를 치통을 지켜봐야만 했을 어의의 심정은 가히 짐작도 되지 않습니다.

 

/이슈에디코 전태민 기자/



전태민 기자 tm0915@issueedico.co.kr
Copyright © Issueedico All rights reserved.

2024.04.30 (화)

  • 동두천 1.0℃흐림
  • 강릉 1.3℃흐림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고창 6.7℃흐림
  • 제주 10.7℃흐림
  • 강화 2.2℃흐림
  • 보은 3.2℃흐림
  • 금산 4.4℃흐림
  • 강진군 8.7℃흐림
  • 경주시 6.7℃흐림
  • 거제 8.0℃흐림
기상청 제공

상호(제호) : 이슈에디코 l 주소 :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대로1길 18 l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 아05210 대표전화 : 070-8098-7526 l 대표메일 : eigig@issueedico.co.kr l 발행·등록일자 : 2018년 5월 22일 l 발행·편집인 : 정금철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은 발행·편집인이며 대표전화 및 대표메일로 문의 가능합니다. Copyright © Issueedico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