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거실에서 음악을 들으며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늘어지는 여름날엔 의식의 흐름에 맞춰 글을 쓰는 것도 제 피서 방법 중 하나죠.
감상 중인 비틀즈의 세 번째 정규 앨범 'A Hard Day's Night'엔 13곡이 수록됐습니다. 총 재생시간은 30분가량으로 'Can't Buy Me Love' 'And I Love Her' 'I Should Have Known Better' 등 주요 수록곡을 담아 1964년 7월10일 발매했고요.
앨범명이자 타이틀곡인 ‘A Hard Day's Night’는 1965년 3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음악편집상 부문에 후보로 오른 동명의 영화 주제곡이기도 합니다. 이 곡의 도입부는 12현 리켄배커(Rickenbacker) 기타를 쓴 독특한 코드로 록 음악사에 족적을 남겼는데요.
통상적인 6현 일렉트릭 기타의 두 배인 12현으로 더 입체적인 소리를 내 1960년대 록 사운드를 상징하게 됐습니다. 영화, 앨범 모두 비틀즈가 전 곡을 직접 작곡한 첫 작품으로 영국과 미국 차트에서 모두 1위에 올랐죠.
특히 시간이 지나면서 쟁글(Jangle) 팝이라는 장르의 시초가 되는 앨범으로 평가돼 가치를 더욱 높였습니다. 쟁글 팝은 찰랑거리는 것 같은 기타소리를 장르명으로 칭한 것처럼 강하지 않게 훑는 느낌의 주법이 특징이고 12현 리켄배커의 순수 사운드를 기반에 둔 일반적인 팝 음악이라고 설명해도 될지 모르겠네요.
아울러 'The Beatles' 앨범의 23번 트랙 'Helter Skelter'는 근자에 이르러 하드 록과 프로토-메탈(헤비메탈 전신)로 평가받으며, 이후 하드 록과 헤비메탈 밴드들에게 큰 영감을 줬습니다.
또 1965년 12월과 1967년 5월에 각각 나온 정규 6집 'Rubber Soul', 8집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등은 고전적이면서 실험적이고도 독특한 음악적 요소를 덧입히며 꿈을 꾸는 듯한 사운드를 창조해 드림(dream) 팝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죠. 드림 팝은 영롱하고도 몽환적인 곡 자체의 분위기가 특징이고요.
이쯤에서 떠오르는 밴드가 하나 있습니다. 음악 장르를 구분하고 해당하는 음악인이나 밴드를 일치시키는 건 리스너(listener) 간 분쟁이 생길 만큼 까다로운 일이죠. 이런 전제하에 제가 아는 한 쟁글 팝과 드림 팝 모두에 해당하는 음악을 했던 밴드는 크랜베리스(The Cranberries)입니다.
아일랜드 대표 록 밴드 중 하나인 크랜베리스는 1989년 이 나라 리머릭(Limerick)에서 결성돼 2003년 해체 후 2009년 재결성했다가 2019년 4월 마지막 앨범 In the End를 내놓고 부득이하게 다시 흩어졌죠.
기타리스트 노엘 호건(Noel Hogan)과 베이시스트 마이크 호건(Mike Hogan) 형제 조합에 드러머 퍼걸 롤러(Fergal Lawler), 그리고 보컬을 맡으면서 기타와 키보드 연주도 겸했던 홍일점 돌로레스 오리오던(Dolores O'Riordan).
1993년 3월1일에 발매한 데뷔 앨범 'Everybody Else Is Doing It, So Why Can't We?' 수록곡 중 'Dreams'는 미국에서 뒤늦게 큰 인기를 모았고 1994년 7월,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에도 왕페이의 중국어 번안곡 '몽중인(夢中人)'으로 실려 영화를 대표했습니다.
제가 크랜베리스의 앨범을 처음 접한 건 1994년 9월 발매한 이들의 두 번째 앨범인 'No Need to Argue'입니다. 아일랜드인 특유의 발음에 끌려 'Ode to my Family' 'Zombie' 등 이 앨범의 히트곡을 질리도록 들었던 어린 날이 있었죠.
돌로레스는 1971년 9월6일, 아일랜드 리머릭주 밸리브리켄(Ballybricken)의 한 농가에서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면서부터 빈곤한 생활을 했고 지인에게 성적 학대까지 당해 우울증, 대인기피증 등 여러 정신질환을 앓았습니다.
잘 버티면서 사는 듯 보였지만… 현지 날짜로 2018년 1월15일, 돌로레스의 사망 소식을 접한 팬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 역시 그랬고요. 발표된 사인은 과다 음주에 의한 목욕 중 익사로 경찰이 침대에서 위조 펜타닐을 찾았다고 하죠. 녹음 세션 참여를 위해 머물던 런던 모 호텔에서 발생한 사고였고 작업 중이던 작품은 마지막 앨범으로 발매할 예정이었답니다.
고단했던 어린 시절, 록스타를 꿈꾸며 매일을 견디던 돌로레스에게는 지역의 거의 모든 노래 경연대회에 나가 우승할 정도의 재능이 있었고 결국 모친이 바라던 수녀의 삶을 거부한 채 19세에 크랜베리스에 합류했죠.
돌로레스는 가족에 대한 애증을 글로 서술해 가사로 만드는데 이 곡이 2집 앨범 수록곡 중 첫 번째 트랙이자 타이틀곡인 'Ode To My Family'입니다. No Need to Argue 앨범에 담긴 Ode To My Family… 다툼 없는 세상을 바라며 가족에게 송가를 바친 돌로레스는 정작 세상에 던져진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멀리 떠났네요.
누군가와 스치기만 해도 짜증이 번지는 무더운 여름입니다. 하지만 아웅다웅 부대끼고 부딪혀도 가족은 결국 언제나 돌아갈 품이죠. 유독 길게 느껴지는 이번 여름, 가족과의 마찰로 마음에 불이 붙게 됐다면 돌로레스가 청량한 목소리로 남긴 'Ode to My Family'를 들으며 단란했던 시절을 잠시 떠올리는 건 어떨까요?
/이슈에디코 정금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