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전 '짜사이'에서는 우리가 익히 알지 못했지만 유사 분야(?)에서 활동 중인 뮤지션들의 얘기를 했었죠. 이어지는 이번 타이어 편에서는 더욱 편한 읽을거리로 방향을 완전히 틀어버린 연예인들을 살피려고 합니다.

지난 1971년, 열두 살 소년 피터 오스트럼(Peter Ostrum)은 영화 '초콜릿 공장(Willy Wonka & the Chocolate Factory)'에서 찰리 버킷 역을 맡았습니다. 진 와일더(Gene Wilder)와 호흡을 맞춘 이 영화는 이후 세대를 넘어 사랑받는 고전이 됐죠.
촬영이 끝나고 제작사는 오스트럼에게 3편 출연을 제안했습니다만 그의 시선은 다른 곳에 박혀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사준 말을 돌보다 만난 수의사의 모습에 반한 것이 계기였고요.
코넬대 수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뉴욕주 라우빌에서 40년간 수의사로 일하다 2023년 은퇴했습니다. 3개월마다 들어오는 영화 로열티는 약 10달러였다고 하니 저 같은 소시민들이 보기엔 영화에 나오는 골든 티켓을 그냥 버린 거나 마찬가지겠죠.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모두가 증오했던 조프리 바라테온. 그 역할 덕에 확실한 인지도를 쌓은 배우 잭 글리슨(Jack Gleeson)은 시즌 4를 끝으로 연기를 은퇴하고 아일랜드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또 1980년 영화 '샤이닝'에서 잭 니콜슨의 아들 대니 역을 맡았던 대니 로이드(Danny Lloyd)는 이 한 편을 남기고 일찍 영화계를 떠나 켄터키주의 한 대학에서 생물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됐고요.
방향이 반대인 경우도 있는데요. 한국계 미국인 켄 정(Ken Jeong)은 노스캐롤라이나대 의대를 졸업한 내과 전문의로 카이저 퍼머넌트 병원에서 7년간 환자를 진료하면서도 틈틈이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에 올랐죠.
영화 '행오버(The Hangover)'를 통해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뒤 배우로 본격 전향했지만 지금도 의사 면허를 유지하고 있답니다. 공연 중 관객이 발작을 일으키자 무대에서 뛰어내려 응급처치를 한 일화는 너무 유명하고요.
1996년 영화 '마틸다'의 주인공 마라 윌슨(Mara Wilson)은 '34번가의 기적'에도 출연한 할리우드 대표 아역 배우였습니다. 청소년기를 거쳐 뉴욕 대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했지만 오히려 극심한 무대 공포증을 경험해 글쓰기로 방향을 틀었다죠. 회고록 'Where Am I Now?'를 내놓으며 결국 작가가 됐고요. 정작 연기와 무대에 공포를 느껴야 하는 연기자들은 꿋꿋하게 자리는 지킨다는 게 함정
R&B 네오소울의 아이콘 에리카 바두(Erykah Badu)는 2010년 이후 정규 앨범을 내지 않고 있습니다. 대신 둘라(Doula)로 활동하며 산모와 아기를 돕고 있죠. 참고로 미국에서 많이 접할 수 있는 직업인 둘라는 출산 등 사람의 건강과 관련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가입니다.
이런가 하면 영화 '그렘린'과 '리지몬트 하이의 수업 시간'의 히로인 피비 케이츠(Phoebe Cates)는 1994년 배우 케빈 클라인(Kevin Kline)과 결혼한 뒤 사실상 은퇴한 상태죠. 이후 뉴욕 맨해튼 카네기 힐에 '블루 트리(Blue Tree)'라는 이름의 부티크를 열고 조용히 가게를 운영 중이랍니다.
이번 편 마지막 소개 인물은 'Let's Stay Together'를 내세워 1972년 빌보드 1위에 오른 소울 음악의 전설 알 그린(Al Green)으로, 1976년 목사 안수를 받고 멤피스에 풀 고스펠 태버나클 교회를 세운 그의 설교는 지금도 끝나지 않았죠.
최근 한국에서도 세컨드 커리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통계청과 KB금융그룹 경영연구소가 지난 2023년 발표한 자료대로라면 한국인의 주된 직장 퇴직 평균 연령은 49.3세, 기대수명은 83.6세.
이 수치를 고려하면 퇴직 후에도 30년 이상의 시간이 남는 만큼 '제2의 직업'은 선택이 아니라 반강제 필수가 된 시대입니다. 타이어는 그 쓸모를 온전히 다하기 전까지 한 방향으로만 굴러가지 않습니다. 꺾이고 틀어지다가 때로는 완전히 반대편으로 방향을 돌리기도 하죠. 중요한 건 어떻게든 굴러가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이슈에디코 정금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