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E 사회] '땅콩' '물컵' '계엄령 놀이' 등 갑질 논란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그 숱한 조직의 현재는 어떨까?
출근길 직원들에게 간부들이 직접 리플릿을 나눠주고, 관리자들은 갑질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에 서명하는 등 산림청 국립수목원은 10일 갑질 근절 캠페인을 전개했다.
갑질을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조직문화의 문제로 본다는 점에서 이번 캠페인의 방향은 옳지만 서약과 홍보물만으로 뿌리 깊은 권력형 괴롭힘이 사라질지는 따져볼 대목이다. 특히 이런 다짐이 절실한 곳들은 따로 있으나 자숙의 의미인지 잠잠하기만 해 국립수목원의 이번 행보에 더욱 시선이 따른다.
갑질 본질은 견제받지 않는 구조
국립수목원이 이날 배포한 '국립수목원, 상호존중 조직문화 확산 위한 '갑질 근절 캠페인' 실시'라는 제하의 보도자료를 보면, 이번 행사는 출근하는 직원들에게 갑질 근절 홍보물과 리플릿을 나눠준 간부직원들이 '갑질 근절 실천 서약서'까지 작성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직위를 이용한 부당한 지시나 권한 남용을 근절하고 상호 존중의 조직문화를 만들겠다는 맹세로, 국립수목원은 그간 갑질 예방 교육과 청렴 교육, 익명 신고제도를 운영해 왔다. 이날 국립수목원 최경 원장 직무대행은 갑질 근절이 간부를 비롯한 모든 구성원의 실천과 책임에서 시작되는 만큼 상호 존중하는 조직문화를 만들겠다고 제언했다.
국립수목원이 내놓은 보도자료는 갑질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조직문화의 문제로 명시했다. 이는 갑질이라는 말이 사회에 각인된 계기와 정확히 맞닿아 이전 사례를 곱씹게 한다. 지난 2014년 대한항공 '땅콩회항'은 부사장이 기내 서비스를 문제 삼아 사무장을 내리게 하고 항공기를 되돌린 사건으로, 갑질이라는 단어를 국내외에 알린 계기가 됐다.
2018년에는 같은 그룹 오너 일가의 '물컵 갑질' 논란이 이어졌다. 갑질은 재벌가만의 문제도 아니다. 지난해 7월부터 11월까지 강원 양양군청의 한 40대 공무원은 자신이 지휘하던 20대 환경미화원들에게 이른바 '계엄령 놀이'라며 이불 속 피해자를 발로 밟고 비비탄 총을 쏘는 등 수십 차례 폭행과 강요를 일삼았다.
이 공무원은 파면됐고 1심에서 징역 1년 8개월을 선고받으며 위계를 쥔 사람이 아래를 짓밟는 구조가 공직사회 곳곳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례가 됐다. 이들 사건 모두 개인의 성격 탓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본질은 견제받지 않는 권력과 위계라는 구조에 있었다.
심각성을 인식한 정부의 움직임은 제도로 이어졌다. 정부는 2018년 관계부처 합동으로 직장 등에서의 괴롭힘 근절 대책을 내놓은데 이어 2019년 7월 16일에는 근로기준법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을 신설해 시행했다.
다만 사용자와 근로자가 지위나 관계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고통을 주는 행위를 금지하고 사용자에게 조사 및 조치 의무를 안겼으나 사용자의 조치 미이행 시 제재 규정이 없다는 허점이 시행 초기 드러났다. 2021년 개정을 거쳐 그해 10월부터 조사·조치 의무를 위반하거나 사용자와 그 친인척이 가해자인 경우 과태료를 물리도록 보완했다.
갑질 문제 해결 핵심은 관리자 책임
그럼에도 사각지대는 여전하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고 특수고용직이나 하청·경비 노동자처럼 법상 근로자로 인정받기 어려운 이들은 보호 밖에 있다.
노골적인 폭언은 줄었지만 업무나 식사에서 배제하는 교묘한 정서적 괴롭힘이 늘었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신고했다가 오히려 불이익을 겪는 사례도 끊이지 않는다. 서약서에 서명하는 것과 실제로 피해자가 안심하고 신고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해외는 이 간극을 법 규제로 메웠다. 일본은 2020년 대기업, 2022년 모든 기업 대상의 일명 '파워하라(Power harassment) 방지법'을 시행해 신체·정신적 공격, 과도하거나 과소한 업무 부여, 사생활 침해까지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규정하고 사용자에게 예방 및 대응을 의무화했다.
유럽의 경우 프랑스는 노동법전에 반복적인 정신적 괴롭힘을 겪지 않을 권리를 명문화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서유정 선임연구위원은 루마니아와 룩셈부르크 등이 가해자 처벌은 물론 괴롭힘을 방치한 사용자에게 더 강한 책임을 지운다는 점을 짚으며 이는 괴롭힘을 조직문화의 문제로 보는 시각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우리나라는 아시아권에서 드물게 법제화를 이룬 나라지만 법령의 구체성과 집행력, 사회적 수용성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남은 과제라는 첨언도 보탰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무너진 견제 구조가 문제인 갑질 논란의 본질을 따지면 익명 신고가 실제 조치로 이어지고 관리자의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국립수목원이 갑질을 조직문화의 문제로 규정한 그 인식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느냐가 이번 캠페인의 진짜 시험대다.
/이슈에디코 정금철 기자/
|
+플러스 생활정보
직장 내 괴롭힘을 겪으면 회사 신고 외에 관할 지방고용노동청 진정 가능하며 고용노동부 고객상담센터(국번 없이 1350)에서 상담 지원. 사용자는 신고 접수 시 지체 없이 객관적으로 조사하고 조사 기간 피해자 보호를 위한 근무장소 변경·유급휴가 등 조치 의무를 이행해야 하며 신고자·피해자에게 해고 등 불리한 처우 시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
폭행은 형법상 폭행죄, 폭언·모욕은 명예훼손·모욕죄로 별도 대응 가능. 증거는 대화·메시지·녹취·목격자 진술 등 기록으로 확보. 시민단체 직장갑질119 등에서 무료 노동 상담을 지원하나 5인 미만 사업장·특수고용직은 법 적용이 제한될 수 있어 사전 확인 필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