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못 본 사이 부쩍 자라 살짝 어색한 조카, 지지부진하던 누군가가 문득 두각을 드러내는 순간 등 오랜만에 마주한 것들의 성장은 느닷없는 놀라움을 건넵니다. 당사자에겐 더디기만 했겠지만 오래 떨어졌던 누군가의 눈에는 어느 날의 폭발적인 변화처럼 다가오죠. 가히 흔들어 개봉하면 터지듯 분출하며 내용물을 쏟아내는 탄산음료처럼 폭발적인 성장세라는 문구가 지나친 과장이 아님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지난 2023년 미국화학회(ACS)가 공개한 7~12세용 교육자료 '이산화탄소 풀어놓기(Unleashing Carbon Dioxide)'의 실린 내용대로라면 탄산음료의 톡 쏘는 청량감은 이산화탄소를 과포화 상태로 녹인 뒤 그 위에 다시 이산화탄소를 덮어 가둔 결과입니다. 같은 자료가 제시한 헨리의 법칙에 따르면 액체에 녹은 기체의 양은 액체 위를 누르는 그 기체의 압력에 비례하죠. 뚜껑을 닫아 병 안쪽을 이산화탄소로 채워두는 동안 이 기체가 얌전히 녹아 있는 이유입니다. 뚜껑을 여는 순간 그 압력이 사라지니, 녹아 있을 이유도 함께 사라지는 것이고요. 압력은 오르지 않았습니다 촬영한 이미지는 냉장고에서 방금 꺼낸 탄산음료입니다. 흔든 탄산이 터지는 이유를 두고 우리는 흔히 흔들어서 내부 압력이 높아졌기 때문이라 여겼죠. 그런데 이 통념은 사실과 다른데요.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치코 캠퍼스의 물리학자 데이비드 케이건이 2001년 5월 학술지 '더 피직스 티처' 39권 5호에 실은 논문 '흔든 탄산 증후군(The Shaken-Soda Syndrome)'을 보면, 압력계를 단 밀폐용기에 탄산음료를 넣고 평형을 맞춘 뒤 흔들어도 압력은 그대로였습니다. 케이건이 지목한 진짜 원인은 핵생성 지점이죠. 흔들면 병 윗부분에 있던 이산화탄소 기체가 액체에 섞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기포를 무수히 만드는데, 이 작은 기포 하나하나가 이산화탄소가 달라붙어 큰 기포로 자라나는 씨앗이 됩니다. 뚜껑을 여는 순간 압력이 떨어지며 녹았던 이산화탄소가 빠져나오려 할 때, 이미 뿌려진 그 수많은 씨앗에서 기포가 한꺼번에 자라 액체를 밀어 올리는 거죠. 케이건은 이 분출이 상상 속 압력 상승이 아니라 아주 많은 핵생성 지점 때문이라고 단언했고요. 국제 학술지 '네이처 리뷰스 피직스'가 3년 전 4월, 5권 197쪽에 실은 에디토리얼 '거품의 물리학(The physics of fizz)'에서 정리한 설명도 같습니다. 흔들림은 기포가 생겨날 자리를 만들고 뚜껑을 여는 순간 그것들이 급격히 자라며 액체를 밀어낸다는 거죠. 원인을 좁히던 케이건이 2.3도 기울기 경사로에 레이저 계측기를 달아 355㎖ 캔이 50㎝를 굴러 내려오는 시간을 쟀더니, 다이어트 콜라는 흔들지 않았을 때 1.86초에서 흔든 뒤 2.04초, 펩시 1.86초에서 2.15초, 라이트 맥주는 1.85초에서 2.20초로 느려졌죠. 흔든 캔은 어김없이 경주에서 패배했습니다. 이유는 에너지의 행방에 있었죠. 굴러 내려오는 캔은 앞을 향하는 몫, 제자리에서 도는 몫으로 중력 에너지를 나눠 쓰는데 흔들지 않은 캔에서는 내부의 액체가 벽과 겉돌며 거의 움직이지 않아 도는 데 드는 몫이 적습니다. 흔든 캔에서는 액체 전체에 퍼진 기포가 액체를 벽에 맞물리게 해 액체까지 함께 돌아가죠. 돌려야 할 것이 늘어난 만큼 앞으로 나아갈 힘은 줄어듭니다. 케이건이 논문에서 유력하게 짚은 것도 이 기포가 액체 쪽으로 더 많은 에너지를 넘긴다는 설명이었고요. 탄산이 들어가지 않은 과일음료마저 1.82초에서 1.90초로 밀린 것도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반면 수돗물을 담은 통은 1.74초와 1.75초로 사실상 차이가 없었고, 비눗물과 김빠진 콜라처럼 거품이 잘 이는 액체는 뚜렷하게 느려졌죠. 설탕이 없는 음료나 이산화탄소가 거의 남지 않은 음료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진 겁니다. 흠집 많은 표면에서 더 많이 피어납니다 기포가 어디서나 생기지 않는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다시 ACS 자료로 돌아가면 기포는 매끄러운 곳이 아니라 표면의 미세한 홈과 흠집에서 나타나죠. 매끈해 보이는 빨대나 자갈, 멘토스류의 사탕도 고성능 현미경을 통해 들여다보면 온통 자잘한 흠과 돌기투성이인데, 그곳이 이산화탄소가 매달려 기포로 자라는 발판입니다. 이 자료는 멘토스가 유독 격렬한 이유로 코팅의 설탕이 녹으며 홈과 굴곡이 더 늘어난다는 점, 코팅에 든 아라비아검이 음료의 표면장력을 낮춰 기포가 더 쉽게 빠져나가게 한다는 점을 함께 거론했죠. 따뜻한 탄산이 더 쉽게 넘치는 것도 같은 결입니다. 헨리의 법칙에서 비례상수는 온도가 정해져야 값이 정해지는데, 미국 대기연구대학연합(UCAR) 과학교육센터의 수업자료를 참고하면 온도가 오를수록 기체의 용해도는 떨어지죠. 따뜻할수록 물이 이산화탄소를 덜 붙잡으니, 조금만 건드려도 더 격렬하게 뛰쳐나오는 것이고요. 그렇다면 이미 흔들린 캔은? 손가락으로 옆면을 톡톡 두드리면 넘치지 않는다는 속설이 널리 퍼졌으나 덴마크 남부대와 덴마크공대 연구진이 2019년 12월 공개한 무작위 대조시험 결과는 다릅니다. 330㎖ 맥주캔 1031개를 흔든 것과 흔들지 않은 것, 두드린 것과 두드리지 않은 것 네 갈래로 나눠 연 뒤 흘러넘친 양을 0.01g 단위에 맞춰 측정한 이 실험에서, 흔든 캔의 경우 두드린 쪽이 평균 0.159g 덜 흘렀을 뿐 통계적 의미는 없었죠. 연구진이 내린 결론은 단순했습니다. 확인된 방법은 기포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이라고요. 다만 이 시험은 앞서 인용한 네이처 리뷰스 피직스에서 짧게 다뤘을 뿐 아직 학술지에 정식 게재되지 않은 사전공개 논문이고, 연구진 스스로 맥주의 단백질이 기포가 떠오르는 걸 방해할 수 있어 탄산음료에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단서를 달았습니다. 김빠진 콜라를 흔든 뒤 15분이 지나 다시 굴렸을 때 캔은 여전히 흔들기 전 기록을 회복하지 못했고, 2시간이 지나서야 원래 속도로 돌아왔다는 케이건의 실측이 어느 정도 이를 짐작하게 하죠. 서두에서 언급했던 누군가의 성장과 도약은 이미 그 안에 무수한 씨앗이 자리 잡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요? 압력을 참고 견디다 갑자기 터진 게 아니라 보이지 않게 퍼졌던 계기들이 뚜껑이 열리는 순간처럼 적절한 시기에 일시적으로 발현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를 뒤흔드는 시련은 그저 내부의 압력을 높이는 고통이 아니라 훗날 자라날 씨앗을 곳곳에 뿌리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매끄럽기만 한 삶보다 흠집과 거친 자리가 많은 인생에서 오히려 더 많은 생장점이 생기듯 말이죠. 하지만 많이 힘든 건 딱 질색이니까ㅠㅜ /이슈에디코 정금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