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익스트림 메탈 씬의 최전선을 지키기 위해 2009년 서울에서 뜻을 모은 멜로딕 데스메탈·메탈코어 밴드 Remnants of the Fallen(램넌츠 오브 더 폴른, 약칭 ROTF)의 정규 1집 'Shadow Walk'. 오스트리아 빈에서 캐나다 밴쿠버, 러시아 모스크바까지 세계 곳곳 스물여섯 작품과 귀 아픈 시간을 보내는 동안 정작 발밑을 지나쳤다는 반성으로 꺼내든 얼쑤 지화자 어기여차~ 첫 국내 밴드입니다. 이 자리에 ROTF의 1집을 내세운 이유 중 하나는 이들의 1집이 지난 2017년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메탈&하드코어 음반 타이틀을 거머쥔 국내 멜데스·메탈코어 씬의 이정표 같은 작품이기 때문이죠. 다른 이유들은 직접 들으면 바로 아실 겁니다 전신 밴드 Lost in Sea를 거쳐 2009년 지금의 이름으로 진용을 갖춘 이들은 사회와 종교, 인간 내면의 투쟁, 종말이라는 묵직한 주제들을 다뤘습니다. 정규 데뷔 전까지 EP 'This World Fades'(2010) 'Perpetual Immaturity'(2012)와 그 리덕스 버전(2013)으로 씬 내에서 실력을 다졌고 2014년에는 해외 레이블 No Remorse Records의 컴필레이션 'Global Domination Vol. 1'에 'Answer Beyond'를 올리며 한 발을 바다 건너 내밀기도 했죠. 그렇게 여러 해를 벼른 끝에 2016년 10월 18일 Watch Out! Records를 통해 나온 첫 정규 앨범이 바로 'Shadow Walk'입니다. 오랜 무대에서 검증된 기존 EP 수록곡들을 새로 녹음해 다듬고 여기에 신곡을 얹어 한 장으로 완성한 이 앨범은 한층 정제된 사운드를 내세워 밴드의 현재 기량을 증명하죠. 앨범 라인업은 메인 보컬 박용빈, 베이스와 백킹 보컬을 맡은 이승진, 두 자루의 기타를 나눠 든 홍승찬과 김승연, 드러머 이종연으로 짜인 5인 진용입니다. 박용빈은 고막을 째라 덤비는 고음 스크리밍에 울렁대는 트위스트 그로울링을 쌍끌이로 당겨 곡의 감정을 끌어올리고, 이승진의 베이스는 흔들림 없이 적절하게 중심을 잡으면서도 백킹 보컬로 두께를 더하죠. 홍승찬, 김승연이 주고받는 트윈 기타는 이 밴드 최대의 무기로 수려한 멜로디 라인과 날선 솔로를 촘촘히 배치하면서도 메탈코어의 상투적 함정인 브레이크다운 남발을 절제해 앨범이 긴장을 잃지 않도록 조율합니다. 이종연의 드러밍은 블래스트 비트의 폭주와 그루브의 여유를 자유롭게 왕복하며 아홉 곡을 지치지 않게 이끌고요. 여기에 초대 손님들도 힘을 더했습니다. 3번 트랙에 유거송(Chris Gursong Yoo), 5번 P.K, 7번 Yul(송상율)이 게스트 보컬, 마지막 타이틀곡에는 이 앨범 프로듀서인 최준용이 게스트 기타로 충실히 조력하죠. 유거송과 P.K, Yul, 최준용은 각각 Noeazy, Scarlet Forest, End These Days, Day of Mourning 출신으로 모두 메탈코어 계열과 친숙한 이들이고요. '쓰러진 자들의 잔재' 정도로 옮길 수 있는 이들의 밴드명과 달리 꼿꼿하게 귀를 직격하는 해외 밴드의 작품이라 해도 믿을 만하다는 평이 아깝지 않은, 총 재생시간 41분 58초의 이 앨범을 한 곡씩 살피며 이번 편 마칩니다. 유튜브로 연결되는 추천곡은 놓칠 수 없는 앨범 전체 곡 중 타이틀곡 'Your Dead Heart'입니다. 국내 앨범 첫 소개라 흥분한 나머지 평소보다 분량이 더 길어진 건… 맞습니다 누군가 만들어준 진실에 복종하지 말고 혼자 판단한 후 일어서라는 역설이 담긴 본 작의 스타트 트랙 'Assembly of Drama'는 2분 35초의 짧은 곡으로 질주에 앞서 극의 서막을 올리듯 착실하게 긴장감을 적립하며 뒤이을 여덟 곡의 성향을 예고하죠. 고통과 실패를 스스로 만들었다고 해도 부서진 인간은 다시 일어설 수 있으며, 결국 삶이라는 드라마의 진실과 마주해야 한다는 자기각성을 뇌리에 새기게 합니다. 밴드가 당도한 작법의 성숙을 드러내는 두 번째 곡 'Your Dead Heart'는 제목처럼 무뎌진 내면과 그 틈을 헤집은 공허에 접근하죠. 앨범 타이틀로 내민 곡답게 멜로딕 데스메탈의 선율과 메탈코어의 직선적인 타격감을 균형 있게 배치합니다. 기타가 서정과 광포의 선을 오가는 동안 박용빈의 중저음 그로울이 무게를 박아 넣는 대비도 선명하죠. 맹목적인 가르침과 내적 혼돈을 떨치고 자기 의지와 자존으로 죽은 심장을 다시 뛰게 하라는 재생의 바람을 모두 외치는 것 같은 구성이 돋보입니다. 세 번째 트랙 'The Aggravator'는 게스트 보컬 유거송까지 공격성을 한층 끌어올리죠. 날카로운 기타 워크와 두 보컬의 대비가 '분노를 부추기는 자'라는 제목에 걸맞은 긴박감을 자아냅니다. 손가락 끝이 걱정되는 피킹과 몰아치는 드럼 위에 더블 보컬 공방이 공격성을 키우는 곡으로 독선과 거짓이 타인을 지배하고 희생양을 만드는 존재를 겨누며 결국 자기기만이 스스로의 몰락을 부른다는 응징의 서사죠. 기존 발표곡을 새로 손본 다음 트랙 'The Contender's Abyss (2016 ver.)'은 원곡의 골격은 지키되 한층 또렷해진 윤곽을 얻었습니다. '도전자가 마주한 심연'이라는 제목처럼 무너지지 않으려는 의지와 절망이 충돌하는 심적 충격을 느낄 수 있죠. 다시 손 걱정이 될 정도로 가없는 피킹과 리듬 밀도가 핵심인 곡입니다. 속도를 유지하면서 멜로디를 놓지 않는 연주가 인상적으로 순응과 거짓 예언자, 자기 안의 비겁함을 넘어 도전자로 일어서라는 내용을 담았고요. 다섯 번째 트랙 'Misery Injection'은 게스트 보컬 P.K가 참여했으며 몰아치는 앨범 구성에서 그루브로 완급을 조절하는 지점입니다. Scarlet Forest의 P.K가 객원 보컬로 참여해 하드코어적 압력을 가하면서 후반부 트랙에 대한 집중력을 되살리죠. 배치가 좋은 곡으로 리듬의 대조와 보컬의 상이한 질감이 사회비판적인 내러티브를 짐작케 합니다. 인간을 복종시키는 착취, 탐욕 등 거대한 존재들의 기만을 짚으며 침묵과 순응은 속박의 굴레라고 꼬집습니다. 이어지는 'God Idolatry (2016 ver.)' 역시 재녹음본으로 '신을 향한 우상숭배'라는 제목이 시사하듯 종교와 맹신을 향한 비판적 시선을 부각하죠. 리프와 전환을 연달아 시도하며 곡 전반을 채웁니다. 구원을 상품처럼 팔고 경전과 신성을 권력처럼 이용하는 종교적 위선에 질타를 가하며, 지배적 존재의 자리에 인간 자신의 의지를 재배치하려는 가사에 수긍하게 될 무렵 페이드 아웃으로 잔상을 남깁니다. 일곱 번째 트랙 'Revive in Fire'는 객원 보컬 Yul이 가세한 곡으로 불 속에서 되살아난다는 제목에 맞춰 후반부 에너지를 다시 지펴 올리죠. 격렬한 리듬 전개와 서정적인 리드가 엇갈리며 극적인 긴장을 만드는데 긴 호흡 안에서 중량을 유지하려는 노련함을 인정하게 됩니다. 무너지는 세계와 권위 앞에서 신에게 운명을 맡기지 말고 자신의 고통까지 받아들이며 다시 횃불을 켜라는 거침없는 선언이며 '구원받는 인간'에서 '자신의 구원자가 되는 인간'으로 시선이 이동하는 구간이죠. 여덟 번째 곡 'Answer Beyond (2016 ver.)'는 앞서 해외 컴필레이션에도 실렸던 밴드의 대표곡을 새로 녹음한 트랙입니다. 저편의 대답을 구하는 제목처럼 종말과 그 너머를 응시하는 서사를 촘촘한 연주 위에 올렸습니다. 짧게 끊는 리프와 몰아붙이는 타격적 리듬이 긴박감을 연출하죠. 인간은 발전과 정복을 말하지만 같은 오류를 되풀이하고 끝내 자신이 사는 세계까지 파괴한다는 냉소적인 내용이며 완벽을 꿈꾸는 인간의 태생적 한계를 '그 너머의 답'으로 제시합니다. 앨범 동명 트랙인 마지막 곡 'Shadow Walk'는 게스트 기타 최준용이 참여해 완성한 곡으로, 작품 전체 갈무리에 적절하죠. 그림자 속을 걷는다는 제목 그대로 어둠을 헤치는 여정을 다섯 자루 남짓의 현과 목소리에 실어 마지막까지 밴드의 역량을 과시합니다. 강한 리듬의 골짜기에 서정성을 골안개처럼 뿌리듯 종결부다운 규모를 만들며 타성에 기대 생존하는 무기력함을 거부하고 자신이 선택한 결과도 감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죠. 레코딩에 대한 아쉬움이 아주 조금 있지만 저처럼 원시안적인 국내 메탈헤드라면, 그리고 국산의 값어치를 낮게 잡은 이들이라면 이 앨범이 그 편견을 정중히 무너뜨리고도 열 배의 가치로 남을 겁니다. Assembly of Drama 2:35 Your Dead Heart 4:33 The Aggravator 4:48 The Contender's Abyss (2016 ver.) 4:46 Misery Injection 4:54 God Idolatry (2016 ver.) 5:04 Revive in Fire 5:30 Answer Beyond (2016 ver.) 4:31 Shadow Walk 5:17 /이슈에디코 정금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