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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봐라] "텍스트힙은 멋져" 책이 바꾸는 젊은 세상

독파민에 빠진 Z세대, 출판시장 '쥐락펴락' 핫한 영향력


 

1년간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성인이 열 명 중 여섯 명인 나라에서 의외의 춘풍이 불고 있습니다. 독서가 '멋있는 일'로 통하는 이른바 텍스트힙 현상. 텍스트힙은 글을 뜻하는 '텍스트(Text)'와 세련됐다는 의미의 '힙(Hip)'을 합친 신조어로 일부에만 영향이 크게 미치는 여타 유행에 비해 훨씬 바람직해 보입니다.

 

Z세대를 위시해 책을 읽고 기록하는 행위 자체를 개성 있는 문화로 여기면서 생겨난 이 현상과 맞물려 숏폼 영상에 지친 젊은 층이 오히려 종이책에서 신선함을 찾으며 '독파민(독서+도파민)'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죠. 

 

수치로도 확인됩니다. 올 1월 교보문고 도서 판매 동향을 보면 올해 1월 1~15일 기준 도서 판매량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5.5% 늘었고 소설 분야가 7.2% 늘며 전체 판매를 이끌었습니다. 20대 구매 비중도 2023년 20.8%에서 올해 22.3%로 올랐고 특히 문학 분야만 따로 파악하면 1020세대 비중이 2024년 11.4%에서 올해 15.8%까지 뛰어 상승 폭이 두드러졌죠.

 

이 기간 예스24 장르별 판매량 집계에서도 한강 작가 작품을 제외한 시, 소설, 희곡 분야 도서 판매가 전년 동기보다 17.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고요.

 

이 흐름에 불을 지핀 건 지난 2024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었습니다. 열기는 식지 않았고 이듬해 예스24에서 또 다른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헝가리 현대문학의 거장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Laszlo Krasznahorkai)의 '사탄탱고' 판매량이 12시간 만에 연간 판매량의 약 12배를 기록하는 등 서점가가 들썩였죠.

 

 

셀럽 효과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아이브(IVE) 장원영이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언급한 뒤 교보문고에서 해당 도서 판매량이 전월 대비 두 배 넘게 뛰었고, 르세라핌(LE SSERAFIM) 허윤진이 출국길에 책을 들고 나타나자 '공항 패션' 대신 '공항 책'이라는 새 키워드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방탄소년단(BTS) 리더 RM이 읽은 것으로 알려진 '요절'은 18년 만에 재출간돼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고요. 해외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감지됩니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해에 미국의 패션 모델이자 배우 카이아 거버가 독서 클럽 '라이브러리 사이언스'를 설립하며 독서는 정말 섹시하다고 말해 세간의 이목을 모은 데 이어 영국 가디언은 Z세대가 다시 종이책에 주목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죠.

 

독서를 즐기는 방식도 달라졌습니다. 표지를 가린 채 한 문장만 보고 책을 고르는 블라인드 북, 여러 사람이 같은 책을 돌려 읽으며 밑줄과 메모를 공유하는 교환 독서, 북커버와 북마크로 나만의 책을 꾸미는 책꾸미기까지… 

 

독서 플랫폼 쪽 성적표도 눈에 띕니다. 구독형 독서 플랫폼 KT밀리의서재는 지난해 매출 881억 원을 시현하며 전년과 비교해 21.4% 성장했습니다. 영업이익은 143억 원으로 30.6% 올랐고, 영업이익률은 16.3%를 마크하며 3년 연속 두 자릿수를 유지했죠.

 

전자책 플랫폼 리디북스를 운영하는 리디 주식회사도 2025년 연결기준 매출 2516억 원으로 전년보다 약 7% 성장했다고 지난 1일 발표했습니다. 지난해 4분기 매출은 713억 원으로 분기 기준 최고치를 기록하는 괄목한 성적을 거뒀고요.

 

성인 전체 독서율은 40.3%에 머무르는 상황에서 이 같은 변화가 언제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지켜볼 일입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숏폼과 인공지능(AI)이 일상을 지배하는 시대에 종이 한 장 넘기는 행위가 오히려 새로운 감성 소비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죠.

 

텍스트힙이 보여주기식 유행에 그칠 것이라는 시선도 있지만, 2년째 이어지는 수치의 흐름은 단순한 붐 이상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슈에디코 정금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