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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뷰

[이리저리뷰] 걸을 수 없는 바퀴벌레

월드컵 개막까지 68일. 오는 6월 11일 개막하는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은 미국, 캐나다, 멕시코 3국이 공동 개최하는 사상 첫 대회죠. 이 가운데 1970년, 1986년에 이어 월드컵을 세 번째로 여는 세계 최초의 국가인 멕시코는 멕시코시티, 과달라하라, 몬테레이에서 총 13경기가 열려 축제 카운트다운이 한창입니다.

 

이런 가운데 지난 3월 28일과 이달 1일, 홍명보호는 월드컵 전 마지막 모의고사였던 유럽 원정 평가전에서 코트디부아르에 0-4, 오스트리아에 0-1로 무릎을 꿇으며 2전 전패, 0득점 5실점이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들고 본선을 맞이해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대한민국이 속한 조별리그는 개최국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 체코가 A조로 태극전사들은 6월 12일 체코전과 19일 멕시코전을 모두 과달라하라에서 치르죠.

 


불타는 도시에서 축구?


월드컵을 앞둔 멕시코의 풍경도 암울하기 그지 않습니다. 좌표를 한 곳만 찍자면 과달라하라. 바로, 한 달 반 전 멕시코 최대 마약 카르텔 수장의 사살로 도시 전체가 불타올랐던 그곳입니다.

 

지난 2월 22일, 과달라하라와 두 시간 거리의 할리스코주 타팔파. 멕시코군이 미국 정보 지원 아래 할리스코 신세대 카르텔(CJNG, Cártel de Jalisco Nueva Generación) 수장 '엘 멘초'를 사살했습니다. 미국이 1500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었던 인물로 사살 직후 카르텔 조직원들이 20개 이상의 주에서 보복에 나섰죠.

 

차량 방화, 고속도로 봉쇄, 시가전이 이어지며 최소 74명이 사망했는데 그중 25명은 국가경비대원이었습니다. 에스타디오 아크론 인근에서 무장 조직원들이 활보하자 학교, 법원, 대중교통 등 지역 기반이 멈췄고 멕시코 축구 리그에서 최상위급 리그인 '리가 MX' 4경기도 연기됐습니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지난 3월 6일 과달라하라를 찾아 10만 명 규모 보안 인력 투입을 발표했고 같은 달 26~31일, 같은 도시에서 월드컵 대륙간 플레이오프를 강행했죠. 다행스럽게도 경기는 무사히 치러졌고요.

 

그러나 노팅엄대학의 범죄학 교수인 하비에르 에스카우리아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카르텔 역시 월드컵이 평화롭게 열리는 데 경제적 이해관계가 있다고 짚었습니다. 그들이 레스토랑을 사고 호텔을 소유하며 경제 시스템의 일부로 역할하기 때문이라는 거죠.

 


바퀴벌레의 노래


이는 곧 안전의 보증인이 국가가 아니라 범죄 조직의 사업적 판단이라는 역설로, 바퀴벌레처럼 썩은 것도 가리지 않고 이득만 추구하는 대형 스포츠 행사의 흉한 이면이기도 합니다.

 

스페인어로 바퀴벌레는 '라쿠카라차(La Cucaracha)'입니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신나는 행진곡 아니면 중남미풍의 민요를 떠올릴 라쿠카라차는 우리가 아는 가사 그대로라면 '바퀴벌레, 바퀴벌레, 아름다운 그 얼굴'이라는 황당한 내용이 됩니다.

 

이 노래의 기원은 15세기 스페인. 레콩키스타 시기에 만들어진 민요 선율이 뿌리로, 1818년 멕시코 작가 리사르디의 소설에 최초의 문헌 기록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 노래가 진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1910년부터 1920년 사이 멕시코 혁명 때였습니다.

 

 

이 나라 혁명가 판초 비야의 농민군도, 대통령 카란사의 정부군도 저마다의 가사를 붙여 불렀고 아리랑처럼 수백 가지 버전이 구전됐죠. '바퀴벌레, 바퀴벌레, 더 이상 걸을 수 없네. 피울 마리화나가 부족하기 때문이네'라는 가장 유명한 후렴구는 현재 마리화나를 담배로 바꿔 부르고요.

 

걸을 수 없는 바퀴벌레가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여러 설이 경합하는데 독재자 빅토리아노 우에르타를 술과 마리화나에 쩐 바퀴벌레로 조롱한 풍자가요라는 설, 죽여도 다시 나타나는 혁명 영웅 판초 비야를 비유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또 전쟁터를 따라다니던 여성 종군자 솔다데라를 지칭했다는 설 외에도 멕시코 민중이 스스로를 바퀴벌레라 불렀다는 설도 널리 알려졌죠. 비참하게 살지언정 목숨을 잃고 또 잃어도 끝없이 나타나는 농민과 원주민이 판초에 솜브레로 차림으로 줄지어 행군하는 모습이 바퀴벌레 떼를 닮았다는 자조가 섞여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아직도 걷지 못하는 바퀴벌레들


노래 속 바퀴벌레는 걸을 수 없죠. 피울 것과 먹을 것이 없어서… 100년이 지난 지금, 과달라하라의 시민들도 자신들의 터전에서 제대로 걸을 수 없었습니다. 이곳저곳 도로가 봉쇄되고 여기저기 총알이 날아다니기 때문이죠.

 

라쿠카라차는 완결 없이 구전되는 노래입니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새 절이 붙은 채 새로운 바퀴벌레가 등장하거든요. 레콩키스타 시절에는 무어인, 혁명기에는 독재자, 지금은 카르텔과 국가 폭력 사이에 낀 민중이 바퀴벌레 신세와도 같습니다.

 

그런데 바퀴벌레는 4억 년을 살아남은 생명체로 멕시코인들이 스스로를 이 존재라 부른 것은, 비참함의 표현인 동시에 끈질긴 생존의 선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68일 뒤, 에스타디오 아크론에는 함성이 울릴 테죠. 지금은 비난의 목소리가 크지만 막상 월드컵이 되면 우리 태극전사들은 자신들을 응원할 국민을 떠올리며 몸을 사리지 않고 이곳의 잔디 위를 달릴 테고요. 바퀴벌레가 멕시코 민중의 자화상이라면, 녹두꽃과도 같은 우리 국민을 위해서요.

 

라쿠카라차, 라쿠카라차. 더 이상 걸을 수 없네.
하지만 걷지 못해도 바퀴벌레는 죽지 않습니다.

 

그리고,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녹두꽃은 떨어져도 곧 다시 피어납니다.

 

/이슈에디코 정금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