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E 사회] 남성 육아휴직 장려금을 신청해 지원 대상자로 선정된 민원인에게 구체적인 잔여 지급액까지 안내했으면서도 이듬해 예산이 편성되지 않았다며 지급을 거부했다면? 행정기관이 약속한 내용을 예산 사정만으로 뒤집을 수 있느냐는 물음에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잔여 60만 원 있습니다" 안내 후 번복
권익위가 지난 3일 내놓은 '내년 지급액에 대해 미리 안내했다면…신뢰보호 위해 육아휴직 장려금 지급해야'라는 제하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민원 신청인 ㄱ씨는 A시가 도비 보조사업으로 참여한 남성 육아휴직 장려 지원 사업에 3개월분 장려금을 신청했다.
지난해 12월 24일, A시로부터 지원 대상자 선정 문자를 받았고 이번 지급액은 3개월분 90만 원, 잔여 지급액은 2개월분 60만 원이라는 구체적인 금액 안내까지 있었다. 그런데 올해 1월, A시는 돌연 2026년 예산이 편성되지 않아 잔여분 지급이 불가하다고 통보했다.
권익위는 세 가지 근거를 들어 A시에 의견을 표명했다. 첫째, 잔여 지급액을 구체적 금액까지 명시해 안내한 이상 ㄱ씨가 지급받을 수 있다고 믿은 신뢰는 보호받아야 마땅하다.
둘째, A시가 올해 자체 사업예산을 확보해 아빠 육아휴직 장려금 지급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만큼 지급 여력이 있다. 셋째, 장려금 잔여분 지원이 남성 근로자의 육아휴직 장려를 목적으로 한 국가 및 지방정부 정책 방향에 반하거나 과도한 지원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와 관련해 권익위 허재우 고충처리국장은 "행정기관이 지원 대상자로 선정됐다고 알리면서 장려금 잔여액까지 안내한 만큼 신뢰보호가 필요하다는 게 권익위의 판단"이라고 제언했다.
도비 보조사업 빈틈은 역시나 예산 문제
이번 사안이 단순한 개별 민원 처리를 넘어 주목받는 이유는 아빠 육아휴직 장려금 자체가 도(道) 단위 보조사업으로 설계돼 매년 도 예산 편성 여부에 따라 사업 존폐가 갈리는 구조적 불안정성이 있기 때문이다.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국민 편의를 위해 육아휴직 제도를 지속 활성화하고 있다. 지난해 1월부터 육아휴직 급여 상한액이 월 150만 원에서 최대 250만 원으로 인상됐고, 복직 후 6개월 뒤에 급여의 25%를 지급하던 사후지급금 제도도 폐지됐다.
부모 각각 최대 1년이던 육아휴직 기간은 1년 6개월로 늘었다. 생후 18개월 이내 자녀를 둔 부모가 육아휴직을 함께 또는 순차 사용하면 첫 6개월간 통상임금의 100%를 지급하는 '6+6 부모육아휴직제도' 첫 달 상한액 역시 200만 원에서 250만 원으로 올렸다. 올해 편성된 정부 예산안 기준 육아휴직 급여는 3조3936억 원이다.
이 같은 중앙정부의 제도 확대에도 지방자치단체 단위 장려금은 여전히 자체 예산이나 도비 보조에 의존하는 구조다. 지자체별로 금액과 기간, 소득 조건이 제각각이며 월 30만~50만 원 수준의 추가 지급 사업을 운영하는 곳이 상당수다.
광주 북구는 2026년 5400만 원을 들여 60여 명에게 월 30만 원씩 최대 3개월, 전북 전주시도 도내 100인 미만 중소기업 재직자에 한해 월 30만 원씩 최대 3개월을 지원한다.
경기 파주시 또한 올해부터 월 30만 원씩 3개월간(1인당 최대 90만 원) 지급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서울시는 6개월 이상 육아휴직 시 60만 원, 12개월 사용 시 60만 원을 추가 지급하되 중위소득 150% 이하라는 조건을 붙이고 있다.
다만 이 사업들은 예산 소진 시 조기 마감되거나, 이번 사례처럼 이듬해 예산 미편성으로 지급 자체가 중단될 수 있다. 광주 북구는 지난해 첫 시행 때 신청 시작 한 달 만에 조기 마감돼 하반기 예산을 추가 편성한 바 있다.
아빠 육아휴직 늘었지만, 현실에선 괴리감
국가데이터처가 작년 12월 발표한 '2024년 육아휴직 통계'를 보면 남성 육아휴직자는 6만117명으로 전년보다 18.3%, 9302명 증가했다. 전체 육아휴직자 20만6226명 중 남성 비중이 29.2%로, 2015년 6%에서 9년 만에 약 다섯 배 뛰었다. 2024년생 신생아 아빠의 육아휴직 사용률도 10.2%를 기록해 처음 두 자릿수에 진입했다.
수치만 따지면 고무적이지만 눈으로도 보이는 양극화의 벽이 존재한다. 지난해 육아휴직을 시작한 아빠의 67.9%가 300인 이상 기업 소속이었고, 산업별로는 공공행정, 국방, 사회보장 행정 등 공무원 직군에서 아빠 육아휴직 사용률이 16.1%로 최고치였다.
기업체 사례를 들면 삼성전자는 남성 육아휴직자가 2023년 1303명에서 2025년 2022명으로 3년 새 55% 이상 급증했으나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 자체는 14.4%에 그쳤다. 여성 사용률 95% 이상과 비교하면 여전한 격차다.
지난해 10월 28일 고용노동부 보도자료는 같은 해 1월부터 9월까지 육아휴직 급여 수급자 수는 14만1909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 10만3596명과 비교해 37% 늘어나며 2024년 연간 전체 수급자 수인 13만2535명을 이미 넘어섰다는 내용이었다. 이 가운데 5만2279명인 남성 수급자는 전체의 36.8%로, 제도 개선과 인식 변화가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이 이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 기준으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지난해 조사결과를 갱신한 OECD의 '출산 관련 부모의 휴가 이용 현황'대로라면 2023년 기준 한국의 출생아 100명당 남성 육아휴직자 수는 21.9명으로, 스웨덴(387.3명), 노르웨이(116.9명), 독일(66.7명), 일본(26.3명)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번 국민권익위의 의견표명은 개별 민원 해결을 넘어 지자체 장려금 사업의 구조적 특성을 드러낸 사례라서 이목이 모일 수밖에 없다.
중앙정부가 수조 원 규모 예산을 쏟아 남성 육아휴직을 독려하는 와중에 예산 편성 상황에 따라 약속한 돈조차 지급하지 못하는 지자체 보조사업의 구조적인 문제는 밑 빠진 독이 아니라 '밉보이는 독'과 같다. 지자체 보조사업이 지속 가능한 것인지 되짚는 것도 중요하지만 약속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교훈 먼저 되새길 시점이다.
/이슈에디코 정금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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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육아휴직 장려금은 고용보험 육아휴직급여와 별개 제도. 지자체별로 금액·기간·소득 조건이 다르며, 남성 육아휴직자에 월 30만~50만 원 수준 추가 지급. 중복 수령 가능하며 거주지 지자체 홈페이지 또는 정부24에서 '아빠 육아휴직 장려금' 검색.
예산 소진 시 조기 마감되는 곳 많아 신청 시기가 중요하며 6+6 부모육아휴직 특례 대상자는 특례 기간 종료 후 신청 가능한 지자체도 있으니 반드시 세부 조건 확인. 거의 모든 지자체 사업은 고용보험 육아휴직급여 수급자를 대상으로 하므로, 고용보험 미적용자는 제외되는 경우 대부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