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대폰 안에 금융 애플리케이션(앱)이 몇 개나 있으신가요?
은행, 증권, 카드, 보험 앱까지 여러 개를 설치했지만,
정작 필요한 순간엔 어디서 무얼 찾아야 할지 헷갈리는 경험이 한 번쯤 있을 겁니다.
기능은 많아졌는데 오히려 더 불편해졌다는 역설. 이를 두고 카카오뱅크 윤호영 대표이사는 '슈퍼 앱의 모순'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8일 오전 '2026 프레스톡'에서 그 해법으로 AI를 꺼내 들었는데요.
카카오뱅크는 이날 인공지능(AI)과 글로벌 확장을 두 축으로 한 미래 전략을 공개하며 'AI Native Bank'로의 전환을 선언했습니다. 또 이날 인도네시아 '슈퍼뱅크'와 태국 '뱅크X' CEO들도 깜짝 등장해 글로벌 협력 성과를 직접 소개하며 힘을 보탰습니다.
◇"서비스가 많아질수록 불편한 금융…AI로 해법 찾다"
윤 대표가 이날 꺼낸 첫 번째 화두는 역설이었습니다. '고객 불편을 없애자'는 설립 정신에서 출발해 어느새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의 90%인 2700만 명이 쓰는 은행으로 성장했지만, 그의 심정은 복잡해졌습니다.
그는 "어느새 모든 금융 앱이 비슷한 모습이 된 가운데 서비스가 많아질수록 고객이 더 큰 복잡함을 느끼게 되는 '확장의 역설'이 생겼다"며 "이걸 해결할 수 있는 건 AI뿐"이라고 제언했습니다.
해법은 고객이 탭을 눌러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AI가 먼저 알아서 챙겨주는 방식입니다. 4년 전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신청을 업계 최초 대화형으로 선보인 이후 금융 검색, 계산기, 이체, 모임통장 관리까지 AI를 속속 심어왔는데요. 카카오톡 기반 챗봇이 전체 상담의 70%를 처리 중이기도 하고요.
앞으로 카카오뱅크는 2700만 고객의 '앱 온리(App-only)' 데이터와 카카오와 공동 개발한 금융 특화 거대언어모델(LLM) '카반'을 결합해 초개인화 AI 서비스를 구현한다는 계획입니다. 예를 들어 1년 치 소비 내역을 분석해 줄여야 할 항목을 짚어주거나, 복잡한 퇴직연금 상품을 대화 한 번으로 추천해 주는 식이죠.
◇70조 원 수신 후 다음 단계…결제홈·투자탭·퇴직연금
카카오뱅크는 그간 '돈을 보내고 모으는' 수신에 집중했습니다. 모임통장, 26주 적금, 한 달 적금, 저금통 등 다양한 상품으로 수신 잔액 70조 원까지 키운 것도 그 결과고요. 이번에는 두 번째·세 번째 영역, 즉 '쓰고 불리는' 데 본격적으로 뛰어들겠다는 게 카카오뱅크의 선언입니다.
결제 쪽에서는 올 하반기부터 맞춤형 혜택 체크카드, 외국인 전용 카드, 청소년 카드, 두 번째 PLCC 등을 연이어 출시하고, 3분기엔 흩어진 결제 내역과 캐시백을 한데 모은 '결제홈'도 선보입니다.
투자는 2분기 '투자 탭' 신설부터 시작합니다. 인터넷전문은행 최초 펀드 판매도 추진하고 나아가 퇴직연금 시장 진출도 공식화했습니다. 윤 대표는 "어렵고 복잡한 연금 관리를 카카오뱅크의 압도적인 편리함으로 돕겠다"고 했는데요. 2030세대부터 시니어까지 아우르는 '평생 자산 관리' 서비스로 나아가겠다는 거죠.
◇"9개월 만에 흑자"…인도네시아 슈퍼뱅크 20개월 성과
이날 행사에는 깜짝 손님들이 있었는데요. 카카오뱅크가 투자한 인도네시아 디지털은행 '슈퍼뱅크'의 CEO가 직접 무대에 올랐습니다.
슈퍼뱅크는 2024년 6월 앱을 출시한 지 9개월 만에 손익분기점을 달성, 20개월 만에 640만 명의 고객을 확보했습니다. 더불어 지난해 12월 인도네시아 증권거래소에 상장해 현지 디지털 은행 중 시가총액 1위에까지 올랐고요.
슈퍼뱅크 티고르 M. 시아한(Tigor M. Siahaan) CEO는 "단순함·투명성·유연성이라는 우리 원칙은 모두 카카오뱅크에서 배웠다"며 "카카오뱅크와의 협업은 단순한 투자 지원이 아니라, 인도네시아 전체 은행 산업에 의미 있는 혁신을 가져오는 원동력"이라고 언급했습니다.
특히 슈퍼뱅크가 공들인 건 저축 문화 정착이었습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돈이 생기면 간식·담배·휴대폰 등을 먼저 사고 월말엔 남는 돈이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카카오뱅크 저금통 개념을 현지화한 자동저축 상품 '쯜릉안(Celengan, 돼지저금통)'을 만들었는데요. 매일 강제로 소액씩 저축 계좌로 이체해 3~6개월 뒤엔 원하는 걸 살 수 있게 해주는 상품이라고 합니다. 카카오뱅크와 협업해 만든 럭키 포켓(Lucky Pocket)은 출시 몇 달 만에 70만 명이 개설했다고 하고요.
◇태국 뱅크X, 내년 1분기 출시…가계부채 88% 나라 두드린다
태국 가상은행 '뱅크X' 대표도 이날 자리에 함께했습니다. 카카오뱅크와 태국 1위 금융그룹 SCBX, 중국 최대 디지털은행 위뱅크(WeBank) 컨소시엄으로 구성됐으며 내년 1분기 출시가 목표입니다.
뱅크X 뿐나맛 위찟끌루왕싸(Punnamas Vichitkulwongsa) CEO는 "태국의 경우 7000만 명 중 절반은 노후 계획 없이 월급을 받자마자 다 쓰고 가계부채는 GDP의 88%에 달하는데, 상당 부분이 비공식 대출"이라며 "우리는 프리랜서, 노점상, 라이더처럼 기존 은행에서 대출받기 어려운 사람들을 돕겠다"고 했습니다.
이 은행에서도 카카오뱅크 흔적은 곳곳에 배어 있습니다. '26주 적금'과 '모임통장'을 태국 시장에 맞게 이식했을뿐더러, 대화형 AI 인터페이스도 적용합니다. 뱅크X가 목표로 하는 비용 대비 수익 비율은 약 25%인데, 이는 태국 대형은행 40%와 비교해도 눈에 띄는 수준입니다.
◇새 진출국 몽골…국내 거주 외국인 2000만·스테이블코인도 노린다
카카오뱅크는 이날 새 진출국으로 '몽골'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3년 전 인도네시아·태국을 선언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몽골 차례입니다. 카카오뱅크가 쌓은 비금융 데이터 기반 신용평가모델(CSS) 노하우를 현지 금융기관에 전수할 예정인데요. 이와 관련해 윤 대표는 "포용금융 역량을 세계에 수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고 설명했습니다.
글로벌 확장은 '저 멀리 해외'만이 아닙니다. 국내 거주 외국인 250만 명을 위한 금융 서비스도 연내 선보이는데요. 요구불통장·해외 송금·전용 카드를 갖추고 방한 외국인·재외국민 등 잠재 고객 2000만 명을 모을 계획입니다. 실시간 AI 전문 번역으로 언어 장벽도 없애겠다고 하고요.
한발 더 나아가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유통도 추진합니다. 관련 법 제정 시 라이선스를 취득, 통장처럼 실생활에서 쓰이는 코인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구상입니다.
발표 말미에 윤 대표는 "오늘은 단순 사업 계획이 아닌 미래 금융의 청사진을 제시한 자리"라며 "우리나라 국민과 2000만 체류 외국인을 넘어 전 세계로 확장해 새로운 금융 혁신의 역사를 써내려가겠다"고 했습니다.
카카오뱅크는 내년까지 자산 100조 원, ROE 15% 달성을 목표로 이자·비이자 수익의 균형 잡힌 성장을 추진 중입니다. AI라는 엔진을 장착하고 글로벌 무대로 뻗어나가는 2700만 은행의 다음 판이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해집니다.
/이슈에디코 김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