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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뷰

[이리저리뷰] 순위는 거들 뿐, 역사가 된 참여의 기록

1988년, 동계올림픽 역사에서 가장 오래 회자되는 두 꼴찌가 캐나다 캘거리에 등장했습니다. 시력에 문제가 있는 영국 미장공과 열대 섬나라 군인들.

 

'독수리 에디'라는 별명이 더 유명한 영국 첼트넘 출신 미장공 마이클 에드워즈는 1984년 사라예보 동계올림픽에서 영국 활강스키 국가대표를 노리다가 무산되자, 비용이 덜 들고 자국 내 경쟁자도 없는 스키점프로 종목을 바꿉니다.

 

심한 원시였던 탓에 두꺼운 안경을 썼고 추운 경기장에서 안경에 김이 서려 착지점이 흐릿하게 보이는 날도 있었다죠. 캘거리에서 그는 바람대로 영국 사상 첫 동계올림픽 스키점프 선수가 됐으나 성적은 노멀힐(70m) 69.2점, 라지힐(90m) 57.5점에 그쳐 두 종목 모두 꼴찌였습니다. 두 종목을 석권한 핀란드의 마티 뉘카넨은 노멀힐 229.1점, 라지힐 224.0점을 받았고요.

 

 

하지만 당시 캘거리의 관중들은 뉘카넨이 아니라 에디에게 시선을 고정했습니다. 폐막식에서 조직위원장 프랭크 킹(Frank King)은 "이번 대회에서 어떤 선수는 금메달을 땄고, 어떤 선수는 기록을 깼으며, 일부는 독수리처럼 날기까지 했다"며 에디를 향한 헌사를 전했죠. 당시 화면을 본 분들은 아마 엄청난 헌사라는데 동감하실 겁니다. 독수리라고 하기에는 좀…

 

지난 2016년 영화 '독수리 에디'로 만방에 알려진 마이클 에드워즈의 얘기처럼 1993년 영화 '쿨 러닝' 덕에 유명세를 떨친 자메이카 봅슬레이 팀도 이 대회 올림픽촌에 있었습니다.

 

눈 구경하기 어려운 나라에서 봅슬레이를 제대로 본 적조차 없던 그들은 자메이카방위군에서 차출된 더들리 스톡스, 데번 해리스, 마이클 화이트, 그리고 형의 경기를 응원하러 캘거리에 왔다가 부상 선수 대신 첫 주행 사흘 전에 합류한 크리스 스톡스.

 

다른 나라 팀에서 장비를 빌려 우여곡절 끝에 경기에 나섰으나 2인승에서는 41개 팀 중 30위. 4인승에서는 3차 주행 도중 시속 137㎞로 벽에 부딪혀 썰매가 뒤집히는 바람에 걸어서 결승선을 통과했죠. 기록은 완주 실패였지만 관중은 기립박수로 그들을 배웅했습니다.

 


참가에 의의를 둔다는 것


"올림픽에서 중요한 것은 승리가 아니라 참가하는 것이다."

 

근대 올림픽의 아버지 피에르 드 쿠베르탱(Pierre de Coubertin)이 한 말로 알려졌지만 사실과 조금 다릅니다. 1908년 7월 19일, 런던 올림픽 기간에 미국 성공회 중부 펜실베이니아 교구 에셀버트 탤벗(Ethelbert Talbot) 주교가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올림픽 선수들을 위한 예배를 집전하던 중 "경기 그 자체가 경주의 승부나 상보다 값지다"는 내용의 설교를 했죠.

 

이 설교를 들은 쿠베르탱이 같은 달 24일, 그래프턴 갤러리 만찬 연설에서 "이 올림피아드에서 중요한 것은 이기는 게 아니라 참가하는 것으로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승리가 아니라 분투이며, 정복했느냐가 아니라 잘 싸웠느냐다"라고 탤벗의 말을 자신의 어투로 압축해 옮긴 거랍니다. 이 말은 훗날 올림픽 신조(Olympic Creed)로 자리 잡아 대회마다 되새기죠.

 

몇 해 전부터 들리기 시작한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마인드의 효시 격이지만 에디 등장 이후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상징적인 규정 하나를 만드는데요. 올림픽 출전 자격을 국제대회 상위 30% 또는 상위 50명 이내로 제한하는 통칭 '독수리 에디 규정(Eddie the Eagle Rule)'입니다.

 

물론 출전 자격의 문턱을 높인 규정 강화에 명분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안전 문제와 함께 일정 경기 수준을 유지해 다른 선수들의 성취가 가려지지 않게 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던 거죠. 실제로 국제스키연맹(FIS) 노르딕 부문 책임자 벵트에리크 벵트손(Bengt-Erik Bengtsson)은 에디를 '올림픽 관광객'이라 부르며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고요.

 

이제 선거 정국이 도래한 만큼 참가의 이웃 단어인 '참여'로 글머리를 돌리겠습니다. 스포츠에서의 참가가 올림픽 정신이라면 민주주의에서 동의어는 투표겠죠. 그리고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투표에서도 꼴찌와 기권의 차이는 까마득합니다.

 

더욱이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 투표율의 궤적은 메달 순위표만큼이나 드라마틱하죠. 1987년 직선제 부활 첫 대선인 13대는 89.2%였습니다. 이후 14대 81.9%, 15대 80.7%로 80%대를 이어가다가 16대에서 70.8%로 내려앉고, 2007년 17대 대선은 63.0%까지 떨어졌죠. 직선제 이후 최저치로 유권자 열 명 중 거의 네 명이 투표장에 가지 않은 겁니다.

 

시간이 흘러 2022년 20대 대선 투표율은 77.1%. 그 결과는 역대 대선 최소 격차인 0.73%포인트, 24만7077표 차이로 당락이 갈렸습니다. 투표하지 않은 1000만 명 남짓 가운데 극히 일부만 마음을 달리 먹었어도 결과가 뒤집힐 수 있었던 거죠.

 

그리고 2024년 12월 3일의 어이없는 고통을 겪은 후 지난해 6월 3일, 21대 대선의 투표율은 79.4%로 1997년 15대 이후 28년 만의 최고치였습니다. 꼴찌든 1등이든, 누구를 지지하고 싫어하든 참가 자체가 역사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네요.

 


기권, 방향을 바꾸는 최악의 선택


에디는 꼴찌지만 영국 스키점프 기록 보유자였습니다. 놀랍게도 그 기록은 1988년부터 2001년까지 13년간 깨지지 않았고요. 영국에 그 뒤를 이을 스키점프 선수가 없었으니까요.

 

자메이카 봅슬레이 팀은 완주조차 못 했지만, 이후로도 거듭 동계올림픽에 출전했습니다. 올해 2월 밀라노·코르티나 대회는 자메이카의 아홉 번째 올림픽 봅슬레이 무대였고, 이번엔 여자 모노봅과 2인승, 4인승까지 세 종목에 선수를 올렸죠.

 

1988년의 그 충돌이 없었다면 쿨 러닝도, 38년 뒤 코르티나의 자메이카 선수들도 없었을 겁니다. 또 에디가 도약대에 서지 않았다면 영국 스키점프의 역사는 언제 시작됐을지 알 수 없었을 테고요. 참가가 전통이 되고, 전통이 역사가 된 기분 좋은 사례입니다.

 

민주주의에서 기권은 스포츠와는 다른 결과를 낳습니다. 투표하지 않는 것은 의사를 표시하지 않는 게 아니라, 내 몫의 결정권을 버리는 일이죠. 경기에서 꼴찌를 해도 경기장에 들어선 사람은 기록을 남깁니다. 투표에서는 어느 쪽이 이기든 투표장에 간 사람은 자기 의사를 한 표의 기록으로 남기고요.

 

공교롭게도 달력은 묘하게 겹칩니다. 다시 한 번 나라의 방향을 바꾼 21대 대선이 2025년 6월 3일이었고,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꼭 1년 뒤인 2026년 6월 3일에 치러지네요. 같은 날짜에 다시 투표장이 열립니다. 

 

대선이 국가의 방향을 정하는 일이라면 지방선거는 우리 삶의 터전과 더욱 밀접한 곳곳을 살피는 일과도 같습니다.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칠 수도 있는 사람들을 뽑는 선거라서 오히려 한 표의 무게가 더 묵직할 수도 있죠. 

 

나 하나 빠진다고 달라지겠냐며 안일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지만 0.73%포인트로 갈렸던 선거를 회상하면 이 역시 위태로운 착각일 수 있습니다.

 

다시 떠올립니다. 에디는 안경에 서린 김을 닦으며 도약대에 섰고, 자메이카의 네 사람은 뒤집힌 썰매를 두고도 결승선까지 걸어갔습니다. 그들이 남긴 것은 금메달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었다는 기록이었고요. 투표장에 가는 일은 최대한 금메달에 가까운 정치인을 뽑기 위해 경기장에 들어서는 일입니다. 꼴찌를 뽑더라도 나의 신념은 표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슈에디코 정금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