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먹고살 길을 고심하기 시작하던 1990년대에도 토익 열기가 뜨거웠는데 아직 그 쓰임새는 사그라지지 않았나 봅니다.
YBM 산하 한국TOEIC위원회가 최근 3년간(2023~2025년) 토익(TOEIC)과 토익스피킹(TOEIC Speaking) 정기시험에 접수한 군인 수험자 현황을 분석했더니 3년째 증가세랍니다. 진급, 장기복무 전환, 전역 후 취업 및 진학 준비를 위해 공인 영어 성적을 확보하려는 수요가 꾸준히 늘어난 영향이라는 게 전일 이 자료를 배포한 곳의 진단이고요.
군인 접수 인원은 2024~2025년에 각각 전년보다 10.8%, 7.0% 늘어난 와중에 작년 계급별 접수 비율은 대위가 22.1%로 최고치였답니다. 차순위는 중위(13.5%), 병장(12.7%), 상병(9.2%) 순이었고요.
이왕 토익 이슈를 언급했으니 지난 2020년 개봉한 이종필 감독의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얘기도 꺼내보렵니다. 제목만 떠올려도 미소가 번질 만큼 기분 좋게 본 기억이 생생한 영화거든요. 1995년을 배경으로, 토익 600점을 넘기면 대리 진급이 가능하다는 말에 모여든 입사 8년차 동기인 고졸 말단 직원 3인이 회사의 비리를 파헤치는 줄거리입니다.
공장 앞 하천에서 떼죽음당한 물고기를 보게 된 주인공 이자영(고아성 扮)이 회사가 몰래 흘려보낸 페놀 폐수의 흔적을 좇으며 내용이 흘러가죠. 이 영화의 모티프는 우리나라 환경사에서 최악의 오점으로 꼽히는 사건 중 하나인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이고요.
감추려다 두 번 더럽혀진 낙동강
1991년 3월 14일 밤, 경북 구미공업단지의 두산전자 공장에서 페놀 원액 저장탱크 파이프가 터졌습니다. 이튿날 새벽까지 옥계천을 타고 낙동강에 흘러든 약 30톤의 페놀 원액은 대구의 상수원인 다사취수장으로 유입됐는데 이곳에서 악취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지 않은 채 염소를 다량 투입했죠.
페놀과 염소가 만나 독성이 훨씬 강한 클로로페놀로 바뀌며 사태는 더 악화했습니다. 수돗물을 마신 대구 시민들은 두통과 구토에 시달렸고 인과관계를 명확히 가리기 어려운 가운데 임산부들의 유산 피해 사례까지 뒤따랐죠.

검찰 수사 결과, 두산전자는 소각 처리해야 할 페놀 폐수를 1990년부터 다섯 달 넘게 무려 370톤가량 무단 방류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런데도 당국의 처벌은 턱없이 약했고 두산전자는 조업정지 20일 만에 공장을 다시 돌렸습니다. 그리고…
재개 며칠 만인 4월 22일, 부실 보수 탓에 파이프 이음새가 또 파열돼 페놀 원액 약 1.3톤이 다시 낙동강으로 새나갔죠. 결국 두산그룹 박용곤 회장 사퇴, 관계자 13명 구속에 이어 환경범죄처벌특별법이 만들어졌습니다.
페놀 유출 은폐는 물론 페놀 수치 조작까지 놓치지 않고 진실을 담으려 한 영화는 실제 사건과 같은 냄새를 풍기죠. 감추려고 할수록 유출되는 진실의 냄새입니다.
들통난 성적에 생채기 난 학교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시점으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2025년 7월 4일 새벽. 경북 안동의 한 여자고등학교 교무실에 전직 기간제 교사와 학부모가 기말고사 시험지를 노리고 침입했습니다.
이들은 3년에 걸쳐 열한 차례 학교에 드나들며 이 중 일곱 차례 시험지를 빼돌렸다죠. 교사가 다른 학교로 옮긴 뒤에는 학교 행정실장이 출입문 비밀번호와 열쇠를 내주며 침입을 도왔고요. 교사, 학부모, 내부 관계자가 얽힌 삼각 공모로 학부모의 자녀는 빼돌린 시험지 덕에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다가 유출 없이 치른 기말고사에서는 수학 40점을 받았습니다.
올 1월 14일, 법원은 학부모와 행정실장에게 각각 징역 4년 6개월, 징역 1년 6개월을 판시했죠. 교사는 징역 5년과 추징금 3150만 원을 선고받았고 자녀는 징역형의 집행유예, 퇴학 처분과 함께 3년간의 시험 성적 모두 0점 처리됐습니다.
앞서 2018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숙명여고 사건도 마찬가지였죠. 학교 교무부장이던 아버지가 시험 답안을 빼돌려 쌍둥이 딸들에게 건넸고, 중하위권이던 자매의 성적은 문·이과 전교 1등으로 뛰어올랐습니다. 이들에게 내린 재판부의 유죄 확정 판결에도 이후 다른 지역 몇몇 고교에서 유사 의혹이 불거져 악취가 남았죠.
페놀이든 시험지든 은폐로 급급하게 덮는 진실은 새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본디의 성질과 성적은 급하게 바꿀 수 없기 때문이죠. 오히려 감출수록 더 또렷한 흔적을 남기듯 반대쪽으로는 새는 틈을 만들 겁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흔적이 남기 마련입니다.
/이슈에디코 정금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