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를 좋아하는 김수경의 영화·씨네필 관련 이모저모 이야기' |
일본 다큐멘터리 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 얘기에 앞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먼저 꺼내보고 싶습니다.
제게 학창시절을 함께 한 친구가 있었는데요. 졸업 후 서로 타 지역의 대학을 다니는 바람에 연락이 뜸해진 무렵, 예정된 여행 당일에 '누가 날 감금하고 있어 못 가게 됐다'는 문자를 받게 됩니다.
이 사실을 즉각 집에 알린 저와 제 친구들은 그의 소식만을 기다리던 가운데 한참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친구가 단체 채팅방에 자신이 누군가에게 착취당하는 중이며 이 대화조차 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다는 식의 횡설수설을 늘어놨습니다. 곧이어 저와 친구들에게 폭언이 이어졌는데, 이후 비슷한 연락이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닿았다는 소문이 들렸습니다.
결국 친구는 지난 2016년 수소문 끝에 연락이 닿은 친척 손에 이끌려 정신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렇게 잊고 지내던 중 10년이 흐른 올해, 친구에게 온갖 욕설이 담긴 연락이 또다시 날아왔습니다. 네. 그는 10년째 망상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이달 29일 개봉하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의 큰 틀은 후지노 토모아키 감독의 누나가 조현병에 걸린 이후의 가정사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 조현병을 조명하는 작품이 아닙니다. 후지노 감독도 "이 영화는 누나의 조현병 발병 후 부모님, 그리고 내가 어떻게 행동했는가에 대한 기록이지, 조현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담담히 고백했죠.
지난 1983년, 다정하고 촉망받던 의대생 24살 누나에게 조현병 증상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당시 드물게 모두 고등교육을 받은 엘리트이자, 의사였던 어머니와 아버지는 병원에 누나를 데려가지 않습니다.
의사이자 연구자였던 부모에게는 딸의 병을 남의 손에 맡긴다는 것 자체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실제 이들은 카메라 앞에서 꾸준하게 딸에겐 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아버지의 경우 딸의 병은 국가고시 불합격으로 생겼다며 매년 국가고시 문제집을 사옵니다. '자신이 얼마나 우수한 사람'인지 알리는 딸이 보낸 수십 통의 편지가 이를 방증한다면서요.
이 와중에 누나는 내 탓이 아니라는 확신을 얻기 위해 점성술과 사이비 집단에 빠져들었고, 부모 몰래 연금보험을 해약해 미국으로 그들을 만나러 떠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그것 역시 나름의 활동이라 믿었죠. 더불어 지인 의사의 '100% 정상' 소견에 기대어 딸의 상태를 계속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누나의 증상은 심해졌고, 현관문에 채워지는 자물쇠는 늘어났습니다. 그렇게 닫힌 문 안에서 20여 년간 침묵을 일관하는 부모 앞에, 감독은 직접 카메라를 들고 그 침묵 속으로 들어가게 됐고요.
"어떻게 해야 했을까?"
이 근본적인 질문은 누나와 부모에게, 자기 자신에게 묻는 말입니다.
감독의 긴 설득 끝에 누나는 2008년에야 정신과 진료를 받고 3개월 만에 호전합니다. 효과를 본 항정신병 약물은 1996년부터 시판된 약이었는데요. 12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그냥 흘러갔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엄마 역시 조현병으로 보이는 증상(영화 속에서는 치매로 언급됩니다.)을 겪게 됩니다. 도둑이 몰래 들어온다며 감시해야 한다고 소리친다거나, 잠든 누나를 일부러 깨워 설탕물을 약이라며 먹이는 장면에 이르면 이 가족이 얼마나 오랫동안 서로를 붙든 채 가라앉고 있었는지 느껴집니다.
이 영화가 더 아픈 이유는 무지가 아닌, 사랑과 두려움이 뒤엉켜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입니다. 조현병은 결코 드문 병이 아닙니다. 국가정신건강정보포털에 따르면 평생 유병률은 약 1%, 국내에서도 약 50만 명이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런데도 왜곡된 인식과 낙인은 치료 시기를 늦추고 그 시간만큼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키우죠.
감독은 이 작품이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는 영화가 아니라면서 부모님도 당시로선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말합니다. 당시 치료법의 한계, 정신질환을 둘러싼 사회적 편견, 당신들이 직접 치료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을 테죠.
이 영화는 '그들은 왜 그렇게 했을까'를 묻는 데서 멈추지 않고 '만약 나라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라는 질문을 전달합니다.
"만약 내가 그 친구를 계속 만났더라면? 수소문을 통해서라도 그의 근황을 찾았더라면?"
여담으로 누나는 폐암으로 죽기 전, 서툴지만 집안일을 하고 여행도 다니면서 틈틈히 복권 구입과 점 보기를 즐겨했습니다. 그러면서 남동생이 카메라를 들 때마다 손으로 브이 사인을 짓는데요. 아마도 아주 오래전 누군가에게 칭찬받았던 기억에서 비롯된 습관일 겁니다. 그 작은 손짓 하나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이슈에디코 김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