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E 사회] 심야에 요리주점에서 긁은 법인카드, 소속도 아닌 대학병원 의사에게 보낸 축하 화환, 지역 사찰 상량식에 걸린 기관장 명의 화환….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가 28일 공개한 공직유관단체 실태점검 결과에 담긴 장면들이다.
권익위가 28일 배포한 '공직자로서의 인식제고를 위한 행동강령 운영·이행 실태점검 실시'라는 제하의 보도자료를 보면 지난 2022년 공직유관단체로 지정돼 올해 3년 차를 맞은 50개 기관 중 정원 기준 상위 30%인 15곳을 골라 공직자 행동강령 운영과 이행을 살폈다. 이 결과 예산을 부적정하게 집행한 사례 2145건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공직유관단체는 정부·지방자치단체의 출자·출연·보조를 받거나 업무를 위탁받는 등의 기관·단체 중 법령에 따라 지정되는 곳으로 임직원은 공직자 행동강령 적용 대상이다. 지정 3년 차는 제도가 자리 잡았는지 가늠하는 시점이다.
적발… 그 다음은?
지적은 크게 예산 오남용에 몰렸다. 6개 기관 1593건은 업무추진비를 쓰면서 클린카드를 사용하지 않거나 증빙에 집행 인원을 빠뜨리는 등 절차를 어겼다. 클린카드는 유흥주점과 피부미용실, 사우나, 안마시술소, 골프연습장, 노래방, 오락실 등 제한업종에서는 결제가 막히는 공공구매카드다.
5개 기관 24건은 밤 11시 이후나 공휴일에 요리주점·제과점 등에서 업무추진비를 쓰고도 왜 그 시간에 써야 했는지 소명하지 못했다. 3개 기관 8건은 직원이 아닌 대학병원 정형외과 의사의 인사이동을 축하하는 화환이나 직무와 무관한 지역 사찰 상량식에 보낸 기관장 명의 화환 등 경조사비를 부적정하게 집행했다.
국외 출장 여비도 새어 나갔다. 7개 기관 517건은 예산으로 차량을 빌려 현지에서 쓰면 개인이 받는 일비를 절반 삭감해야 하는데도 그대로 지급하거나 출장 국가·도시별 기준을 어겨 여비를 과다 지급했다. 이와 별개로 5개 기관은 행동강령 준수 여부를 스스로 점검하거나 교육하는 절차 자체를 건너뛰었다.
문제는 적발 이후다. 권익위는 점검 결과를 각 기관에 통보해 제도개선을 권고하고 예산의 사적 사용은 자체 조사를 거쳐 징계·환수·재발방지교육 등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했다. 다만 행동강령 위반에 따른 징계의 종류와 절차, 효력은 공직자가 속한 기관의 징계 규정을 따른다. 적발과 권고는 권익위가 하되 실제 징계와 환수는 소속 기관의 몫이라는 뜻이다.
한편,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공직윤리를 세우려면 공직자가 행동강령을 지키도록 사전 점검 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향후에도 공직유관단체의 행동강령이 현장에서 충실히 작동하도록 지원하겠다는 게 정일연 권익위원장의 제언이다.
청렴 수준 가르는 사후 처분
이 구조는 해외에서도 낯설지 않다. 미국 정부윤리청(OGE)은 연방 행정부의 윤리제도를 감독하지만 개인의 비위 신고를 직접 조사·기소하지 않는다. 필요하면 소속 기관에 조사나 시정·징계를 권고할 수 있으며 실제 직원 징계는 각 부처와 기관이 맡는다. 중앙 윤리기구가 감독하고 소속 기관이 실제 처분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우리와 닮은 부분이 있다.
공금 오남용 방지는 어느 나라나 되풀이되는 숙제다. 지난해 12월 호주에서는 애니카 웰스 통신·스포츠 장관의 뉴욕 국제연합(UN) 출장비와 가족 동반 여행비 등이 논란이 돼 독립 의회지출감독기구(IPEA) 감사로 이어졌다.
올해 5월 감사 결과 지적 대상이던 뉴욕 출장은 규정에 부합한 것으로 판단됐지만 다른 여행 4건의 일부 비용은 규정을 충족하지 못해 웰스 장관이 해당 비용과 25% 가산금을 합친 1만116호주달러(998만 원 정도)를 상환했다.
미국 회계감사원(GAO)은 해마다 잘못 지급된 예산을 집계하는데 2025 회계연도에 15개 연방기관이 64개 프로그램에서 보고한 부적정 지급 추정액은 약 1860억 달러(255조2700억 원가량)에 이른다. 2003 회계연도 이후 누적 추정액만 약 3조 달러(약 4117조2000억 원)에 이르는 만큼 적발·관리 체계가 있다고 해서 환수와 근절이 저절로 따라오지는 않는다.
제도의 밑그림은 이미 촘촘하다. OECD의 재작년 공공조달 조사에서 40개 응답국 중 38개국은 공공조달 담당자의 사적 이해가 조달 결정에 부당한 영향을 주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을 뒀고, 34개국은 공공조달 인력의 청렴 원칙을 관련 규정이나 행동강령 등에 명시했다. 규범의 유무보다 어긴 뒤 무엇이 뒤따르는지가 청렴의 수준을 가른다.
적발된 2145건은 그 자체로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누구도 듣지 않는 일방 통보라는 쓴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적발 건수 몇 건이라는 수치보다 그중 얼마가 실제 징계와 환수로 이어졌는지 다음 점검에서 확인이 필요하다.
/이슈에디코 정금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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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유관단체는 정부·지방자치단체의 출자·출연·보조를 받거나 업무를 위탁받는 등의 기관·단체 중 법령에 따라 지정되는 곳으로 임직원은 공직자 행동강령 적용 대상.
공직자의 행동강령 위반은 누구든 권익위 청렴포털(https://www.clean.go.kr/index.es?sid=a1)과 행동강령과(044-200-7670)로 신고·문의 가능. 기명 신고가 원칙이지만 익명도 내용이 구체적이고 사실 확인이 가능하면 자체 확인 및 조치를 취할 수 있으며 정식 신고자는 비밀·신분 보호 대상. 기관의 업무추진비 집행 내역은 기관별 공개 기준에 따라 누리집에서 확인하거나 정보공개청구로 요청 가능하며 공개 범위는 관련 규정과 기관에 따라 차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