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취재가 여의치 않아 사흘간 매달렸던 기사를 마감한 후 저도 모르게 두 팔을 번쩍 들며 '만세'를 외쳤습니다. 영어권에서는 'Hooray', 러시아에서는 '우라(Ура)', 같은 한자를 쓰는 일본은 '반자이'를 일상적 환호로 쓰지만, 역사적 무게는 우리의 만세와 완전히 다르죠.
"대한 독립 만세!"
오늘은 삼일절인 만큼 '만세'의 여정을 따라가 보려 합니다. 만세의 뿌리는 약 2100년 전 중국에서 찾을 수 있었죠.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따르면 기원전 110년, 한나라 무제가 중국 오악(五岳·유명한 다섯 개의 산) 중 하나인 숭산(嵩山)의 태실산에 올랐을 때 수행 관리들이 산 아래에서 만세를 세 번 외치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이를 상서로운 징조라고 여긴 무제는 태실산 아래 300가구를 숭고읍(崇高邑·숭고는 숭산의 다른 명칭)으로 봉했고, 이 얘기는 산호만세(山呼萬歲)의 기원이 됐습니다.
만세(萬歲)라는 한자를 풀이하면 '만 년을 살라'는 의미로 황제의 무병장수와 제국의 영원을 기원하는 권위를 내포했죠. 예법과 관례상 만세는 황제에게만 쓰는 것이 원칙이었고, 황태자나 왕에게는 한 단계 낮춘 '천세(千歲)'를 권장했답니다.
내부적으로 황제국을 자처한 고려의 주요 국가 행사였던 팔관회 때는 '성수만세(聖壽萬歲·성스러운 임금의 수명이 만 년간 이어지라는 뜻)'라는 글자가 내걸렸고, 신하들은 발을 구르며 만세를 외쳤죠. 특히 몽골 침략에 맞서 강화도에서 결사항전하던 시절, 만세는 황제의 권위가 아니라 나라를 지키겠다는 의지 그 자체였고요.
그러나 1275년 원나라의 간섭기가 시작되자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팔관회의 성수만세는 경사로운 달력이 천 년을 이어지라는 의미의 '경력천추(慶曆千秋)', 만세 구호 역시 천세로 격하됐죠.
그런데도 고려 조정은 내부적으로 만세를 놓지 못했고 1300년, 원의 내정간섭 기구인 정동행성은 이를 황제에게 일러바쳤죠. '고려 국왕이 큰 모임에서 만세 부르기를 중국 조정에서 하듯 하니 분수에 넘침이 극에 달한다'는 치욕스러운 고발에 충렬왕은 "예전에 강화도에 있을 때는 만세를 불렀으나 그 뒤로는 천세를 불렀다"며 씁쓸하게 변명했다고 하네요.
조선 역시 중국과의 관계에서 제후국을 자처했던지라 국왕에게는 공식적으로 천세를 올리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러다가 1897년, 고종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서 이 관례가 바뀐 거죠.
이런 가운데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를 보면 일제가 나라를 침탈하기 전인 1905년에는 궁내대신 이재극이 일본 공사관 연회에서 축배를 들고 '천황 폐하 만세'를 세 번이나 외쳤다는 소식을 접한 고종황제가 격노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만세가 아니라 반자이라고 했다며 말장난 같은 해명을 내놓은 이재극은 어쩌면 당연하게도 훗날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이름을 올렸죠.

시대가 바뀌면서 서서히 민중의 입에 내려앉은 만세의 변천사는 백범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에서도 접할 수 있습니다. 귀향한 그를 맞이하러 나온 군수가 "김구 선생 만세"를 선창하자 일동이 따라 외쳤고 당황한 김구 선생이 군수의 입을 막았다는 일화죠. 개화시대에는 친구 송영(送迎)에도 만세를 부르는 법이니 안심하라는 게 군수의 응대였고요.
이후 1919년 3월 1일,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서 경신학교 출신 독립운동가 정재용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군중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며 외친 "대한 독립 만세!".
만세를 부르짖던 초기에는 '조선 독립 만세'와 혼용했지만 3·1운동을 기점 삼아 독립운동의 목표가 옛 조선왕조 부활이 아닌 새 민주공화국의 건국으로 바뀌자 우리 임시정부가 채택한 공식 구호가 '대한 독립 만세'였죠.
이때부터 빼앗긴 나라의 독립을 열망하는 외침으로 탈바꿈한 만세는 특정인물의 안녕과 장수를 비는 수동적 축원이 아니라 능동적 저항의 언어가 됐습니다. 그리고 이 함성의 가치를 고스란히 담은 독립선언서가 고종 장례식에 참관차 상경했다 귀향하는 이들, 5일장 장터를 도는 행상 등에게 전달되며 사람들이 모인 후 반드시 만세를 삼창하는 시위가 시작된 거고요.
일제의 총칼 앞에서도 멈추지 않았던 만세는 독립선언서의 엄숙한 활자를 인파의 생동감으로 치환해 터뜨리는 의지의 상징이었던 겁니다. 거리에 울려 퍼진 그 강단 있는 음절이 모여 임시정부 수립의 동력을 만들었고, 오늘날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강하게 박힌 법통의 근간이 됐죠.
삼일절, 우리가 외친 만세에는 107년 전 그날의 온기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억눌렸던 감정이 한꺼번에 터지는 해방감, 고난을 끝내 거쳤다는 안도감을 응축한 이 두 글자.
우리의 만세 삼창은 영원할 겁니다. 또한 지금까지처럼 가장 기쁜 순간에 가장 먼저 입술을 벌리고 외치게 될 겁니다.
/이슈에디코 김수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