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덕 지주(지극히 주관적인) 무작위 명반 소개] 열아홉 번째는 2013년 영국 와이트 섬(Isle of Wight)의 해안도시 라이드(Ryde)에서 고고한 어둠을 발산하며 모습을 드러낸 Joe Hawker(조 하커)의 1인 프로젝트 Ethereal Shroud(이서리얼 슈라우드)의 'Trisagion(트리사기온: 세 번 거룩한)'. 2013년 10월 첫 데모 발매 후 2015년 2월 정규 1집 'They Became the Falling Ash'로 저온숙성한 검은 이스트 같은 장르적 이미지를 굳힌 조 하커에게 이서리얼 슈라우드는 음악적 비전 그 자체입니다. 조 하커는 이 원맨밴드에서 보컬, 기타, 작곡, 작사, 편곡 등 음악 제작의 주된 분야를 홀로 담당하면서 일반 뮤지션들과 달리 자신에 대한 정보를 대중에게 노출하지 않는 신비주의적 익명성을 유지하죠. 다소 고립된 환경에서 자란 까닭인지 그의 음악적 주제인 고립감, 우울함, 광활함을 자신의 음악에 담아 감정에 기반을 둔 철학 공유를 제시합니다. 이 감정들은 개인적 트라우마의 자극제 역할을 하며 탐욕으로 무너지는 세상에 대한 분노, 반파시즘 등 비판적이고 내성(內省)적인 주제와 직결되고요. 자신의 온전한 감
'영화를 좋아하는 김수경의 영화·씨네필 관련 이모저모 이야기'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주의. 가장 최근 '수영씨 이야기'가 올해 7월 29일이더라고요. 저는 기껏 해봤자 두 달 정도 지나겠거니 생각했는데 다섯 달이나 흘렀다는 점에 무척 놀랐습니다. 그동안 영화를 안 본 것도 아닌데 말이죠. 마지막 콘텐츠 작성 이후부터 계산해 보니 단편영화를 포함해 대략 50여 개를 감상했더라고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봤던 제품을 제외하고 영화관에서 감상했던 작품들은 30개 정도가 되겠네요. 감상하면서 수영씨든 어떤 콘텐츠로 소감 한마디를 남기고픈 작품들을 꼽자면 디첸 로더 감독의 '나와 그녀'와 에밀리 블리치펠트 감독의 '어글리 시스터(이 작품은 짜사이로 작성했습니다.)', 연상호 감독의 '얼굴'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미 너무 훌륭한 글들이 많아 저까지 덧붙이기엔 오히려 쑥스럽더군요.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는 원작 소설까지 읽을 정도로 기대했는데, 막상 쓰려니 마음이 크게 움직이진 않아 몇 줄 쓰다 멈췄습니다. 그러다 아무 사전 정보 없이, 그저 배우 한 명을 보기 위해 들어간 극장에서 올해 최고의 영화를 만났는데요. 바로 '프랑켄슈타인'입니다
[악덕 지주(지극히 주관적인) 무작위 음반 소개] 열여덟 번째는 2010년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음산한 기운을 퍼뜨리기 시작한 블랙·애트모스페릭 블랙 메탈 밴드 Cult of Fire(컬트 오브 파이어)의 'Čtvrtá symfonie ohně'(츠프트르타 심포니에 오흐네: 네 번째 불의 교향곡)'. 하나의 콘셉트에 머무르지 않고 주요 앨범마다 검은 변화를 추구하는 컬트 오브 파이어는 종교와 관념을 초월한 의식의 기저를 표현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밴드입니다. 블래스트 비트와 트레몰로 리프를 기본으로 깔고 동서양이 혼합된 멜로디 라인을 끌어올리는 이들의 음악은 블랙 장르로도 얼마든지 클래식한 예술성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죠. 현대 블랙 메탈 씬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고요. 초기 블랙 메탈에 키보드와 시타르 등 동양 악기를 엮어 서사적이고 웅장한 분위기를 극대화한 이들의 음악은 밴드 결성 당시 밀교(esotericism)에 초점을 맞추다가 2013년 정규 2집 이후로는 힌두교, 베다 의식, 불교로 주제를 돌렸습니다. 기타와 같은 인도의 발현악기인 시타르와 탬버라, 젬베 등 타악기에 동양적 찬트(Chant, 단순하고 반복적인 멜
주말의 여유를 좀 더 길게 만끽하기 위해 오전 잠을 줄이고 일찍 일어나 구독 중인 동영상 스트리밍서비스 넷플릭스를 통해 2007년 작품 '복면 달호'를 다시 감상했습니다. 역시 이 영화의 감상 포인트는 주인공 봉달호(차태현 扮)가 부르는 히트곡이자, 영화의 핵심 줄거리를 이끌어가는 노래 '이차선 다리'였던 거죠. 누구든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도 한참 이차선 다리를 흥얼거리는 자신을 보게 될 겁니다.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근대 이후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소규모 교량이던 2차선 다리는 우리나라에서 언제 어느 곳에 처음 모습을 보였는지 궁금해졌습니다. 하지만 온갖 종류의 문헌과 온라인을 검색해도 다리와 관련한 역사적 기록은 규모와 양식 등에서 두드러진 교량만 찾을 수 있더라고요. 대신 찾은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차량과 사람이 통행하는 근대적 교량으로 처음 기록된 것은 1917년 준공한 한강대교(옛 제1한강교 또는 한강인도교)입니다. 개통 당시 폭은 18m, 노면 4차선에 차도 13.6m와 보도 4.4m였다는 기록을 봐선 애초부터 4차선 이상으로 설계했다는 추측이 가능하죠. 또 특정 재료를 활용해 국내 기술로 만든 최초의 2차선 다리에 대한 정보도 파악할 수 있
1989년 11월 9일, 분단의 상징이 무너졌습니다. 동서 냉전의 상징이던 독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자 사람들은 망치와 정을 들고 달려들며 억압을 넘어선 인류의 자유를 향한 열망, 그 자체를 보여줬죠. 당시 우리 국민은 독일이 할 수 있으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으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지난달 20일 나온 통일연구원의 '통일의식조사 2025' 발표 자료를 보면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이 51%에 달했다고 하네요. 이 발표 자료는 한국리서치가 올 7월 10일부터 8월 13일까지 전국 성인 1000명을 대면 면접 조사한 결과로 만들었습니다. 연령대가 낮을수록 '평화적 공존'을 선호했다는데 젊은이들은 통일보다 지속 가능한 평화공존을 더 현실적이고 우선적인 목표로 본다는 거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마자 망치와 정을 들고 달려들며 분단 극복의 기쁨을 표출하던 독일인들의 모습을 우리나라에서도 볼 날이 있을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김상중 씨가 떠올라도 참으셔야 합니다. 망치와 정을 들고 달려들던 사람들 중에는 단순 감정의 발로가 아니라 냉철한 시장 논리를 계산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장벽의 잔해는 순식간에 '자유의 상징'이라는 이름의 상품
[악덕 지주(지극히 주관적인) 무작위 명반 소개] 열일곱 번째는 1986년 노르웨이 오슬로 근교 콜봇(Kolbotn)에서 그림자를 드리운 블랙 메탈 밴드 Darkthrone(다크쓰론)의 'A Blaze in the Northern Sky'. Venom(베놈), Celtic Frost(켈틱 프로스트)를 위시한 1세대의 뒤를 이어 1990년대 초부터 노르웨이 블랙 메탈 씬을 잡아끈 2세대 핵심 밴드 중 하나로 상업적인 성공보다는 추구하는 음악에 대한 진실성과 언더그라운드 정신을 내세워 골수팬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다크쓰론. 결성 당시 1년 정도 블랙 데스(Black Death)라는 이름의 데스 메탈 밴드였던 이들은 1991년 앨범 작업을 기점 삼아 블랙 메탈로 장르를 전환하며 원초적이고 미니멀한 사운드를 들려줬죠. 여기 그치지 않고 2000년대 이후에는 하드코어 펑크에 정통 헤비메탈과 둠 메탈 요소를 섞은 '블랙큰롤(Black 'n' Roll)'이나 트래시 메탈 색채를 덧입히는 등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합니다. 밴드의 사상적 지주로 작사와 작곡, 드럼, 백킹보컬을 맡는 펜리즈(Fenriz)와 1991년부터 지금까지 함께 하는 보컬, 리드 기타, 작곡 담당 녹터노
독자 여러분, 추석 연휴 잘 보내셨나요? 휴식의 여운을 강제 삭제한 채 시월의 일상으로 복귀한 분들은 아마도 저처럼 인지력 둔화와 무기력증 탓에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시간을 보내실 테죠. 난 누구? 여긴 어디? 전 업무 감각을 되살리기 위해 최근 기사를 훑고 있는데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와 에미넴(Eminem)의 소식이 눈에 띕니다. 현지 날짜로 이달 2일 피플 등 외신에 따르면 둘 사이 오랜 불화가 다시 화제라고 합니다. 머라이어 캐리가 최근 미국의 한 텔레비전 심야 토크쇼에 출연해 에미넴이 자전적 영화 '8마일'에 자신의 엄마 역할을 제안했다는 소문이 어느 정도는 진실이라면서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는 게 기사 내용이었고요. 내용을 보태자면 각각 69년 3월, 72년 10월로 만 4년 차이도 나지 않는 연하 에미넴의 제안으로 두 사람의 불화가 시작됐고 수년째 불편한 관계가 이어졌답니다. 에미넴은 과거 반년간 연인관계였던 머라이어 캐리와 성격 차이로 헤어졌다고 밝혔으나 크리스마스의 여왕은 네 차례 함께 했을 뿐 데이트한 적은 없다면서 그의 발언을 부인했다네요. 1972년 10월17일 미국 미주리 주 세인트조지프에서 태어난 래퍼이자 배
주스페인 한국 대사관이 그제 마드리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양국 수교 75주년을 계기로 한 국경일 행사를 열었습니다. 스페인 정부를 비롯한 각계 인사들과 우리 동포 등 400여 명이 참석한 이 행사에서 임수석 대사는 환영사를 통해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친구이자 전략적 동반자로 양국의 긴밀한 협조를 강조했고요. 그러면서 스페인과 우리나라가 마치 쌍둥이 같이 닮은 면이 많다고 제언했죠. 실제 스페인은 1970년대 중반까지 프랑코 독재 정권을 겪고 1970년대 후반부터 민주화 과정을 거치며 국민의 오랜 민주화 운동 끝에 현재의 민주주의를 이룩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죠. 또 약 50만 ㎢에 이르는 스페인의 국토 면적은 우리나라에 많이 앞서지만 인구는 4800만 명으로 우리나라의 5170만 명과 비슷한 규모입니다. 아울러 우리나라가 지난 1997년 외환위기(IMF)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듯 스페인 역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심각한 경제 침체에 허덕였으나 무사히 회복하고 유로존을 이끄는 주요 경제국 중 하나가 됐죠. 여기 더해 두 나라 모두 반도 국가라는 지리적 특성이 있으며 스페인 국민 역시 우리 국민처럼 열정적이면서도 다혈질인 성향이 강
[악덕 지주(지극히 주관적인) 무작위 명반 소개] 열여섯 번째는 1988년 미국 뉴욕 주 롱아일랜드 센터리치에서 뿌리를 심은 브루탈·테크니컬 데스 메탈 밴드 Suffocation(서포케이션)의 'Pierced from Within'. 브루탈 계열을 조명할 때 빼놓을 수 없을 만큼 1990년대 이후 익스트림 메탈씬에 큰 영향을 미친 서포케이션은 특히 브레이크다운(breakdown)을 데스 메탈에 도입해 데스코어(Deathcore)라는 하위 장르 탄생에도 기여했죠. 브레이크다운은 그루브에 초점을 맞춘 하드코어 펑크 연주기법 중 하나인데 속도를 급속히 늦추며 극히 무거운 리듬으로 전환하는 섹션입니다. 기타는 낮은 튜닝 상태에서 단순하면서도 묵직한 팜 뮤트 리프를 반복하고 이 뒤를 베이스가 같은 리듬으로 받쳐 극도의 헤비함을 만들죠. 브레이크다운은 리스너에게 갑자기 내려앉는 듯한 느낌을 주며 다른 분위기에 몰입하게 만들어 익스트림 메탈 밴드들이 애용하는 기법이 됐습니다. 여기 더해 보컬리스트 프랭크 멀렌은 일명 '꿀꿀이(Pig Squeal)' 또는 '하수구 배수' 보컬의 원조로 브루탈 데스 보컬의 상징이 됐고요. 결성 이후 언더그라운드에서 이름을 알리던 이들은 19
연중 내내 가요계 대전이 벌어지는 와중에 걸그룹 NMIXX(엔믹스)가 어제 정규 1집 트레일러 영상을 전격 공개했습니다. 내달 13일 첫 정규 앨범과 동명 타이틀곡 ‘Blue Valentine(블루 밸런타인)'을 발매하고 컴백하는 엔믹스의 이번 트레일러는 단편 영화와 패션 필름을 믹스한 것 같은 영상미를 내세워 팬들의 이목을 잡아끈다는 게 소속사인 JYP엔터테인먼트의 설명이고요. 수록곡은 'Blue Valentine'을 위시해 'SPINNIN’ ON IT' 'Phoenix' 'Reality Hurts' 등 모두 12곡이 실렸다는데 이 중에서도 마지막 두 곡인 'O.O Part 1(Baila)'와 'O.O Part 2(Superhero)'에 가장 큰 관심이 쏠립니다. 엔믹스는 지난 2022년 2월22일 내놓은 데뷔 싱글 앨범 'AD MARE'의 타이틀곡인 'O.O'를 통해 자신들만의 시그니처 장르인 'MIXX POP(믹스 팝)'을 처음 선보였거든요. 이 곡은 JYP엔터테인먼트의 새로운 실험이라고 할 만큼 파격적인 곡 전환으로 눈길을 끌었는데 이 시도가 다소 과했던 건지 대중적인 호응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멤버들의 뛰어난 보컬과 퍼포먼스 실력은 확실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