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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사이] 주걱, 퍼서 먹는 건 마찬가지?

 

점심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 후 찍은 주걱입니다. 숟가락이나 국자, 뒤집개 등 어떤 도구로 밥을 퍼도 주걱만큼 적합한 물건은 없을 겁니다.(단언컨대 주걱은 가장 완벽한 물질입니다) 숟가락, 국자, 뒤집개 등 우리 생활에 쓰이는 모든 도구들도 역시나 각각의 역할에 거의 완벽하게 부합하죠. 고마운 존재들입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문득 세계 최초의 주걱은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떻게 만들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역시나 아무리 관련 자료를 뒤져도 찾는 정보는 구할 수가 없네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결국 찾지 못했지만 세계 최초로 주걱을 닮은 기생충을 발견한 인물은 누군지 알고 있습니다.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장, 세계보건기구(WHO) 기생충학 자문교수 등을 역임한 국내 기생충학의 태두인 서병설 박사(1921. 11.13 ~ 1991. 6.11).

 

故 서병설 박사는 우리나라에만 서식하는 국내 토종 기생충으로 장흡충인 서울주걱흡충을 지난 1963년에 발견해 학계에 알렸습니다. 당시 서울대학교 교수였던 고인은 가난 탓에 하고자 하는 연구에 어려움을 겪다가 쥐에 기생하는 기생충이라도 살피고자 학교 정원에 살던 쥐를 잡아 장 주변을 해부하던 중 서울주걱흡충을 발견했는데요.

 

이때까지 학계에서 보지 못한 새로운 기생충을 찾아낸 후 서울주걱흡층(Neodiplostomum seoulense)이라고 명명했지만 쥐 기생충이라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20여 년의 시간이 흐른 1982년, 보신이 된다는 생각에 날것 상태의 뱀을 먹은 25세 남성이  응급실로 실려오게 됐고 대변을 검사하던 병원 측에서 처음 접하는 기생충을 발견해 서 교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 기생충이 바로 서울주걱흡충이었고 서 교수는 이 기생충의 생태를 파악해 다시 학계에 알리게 된 거죠. 이후 서 교수는 야생에서 훈련하는 사병들의 대변을 검사해 상당수의 서울주걱흡충을 발견하고 기생충 감염의 위험성을 알려 이때부터 군인들이 날것을 먹지 않게 됐다고 합니다.

 

대한기생충학회와 기생충박물관의 자료를 참고하면 주걱 또는 수저처럼 생긴 서울주걱흡충 성충은 크기가 1.5㎜ 정도로 제1중간숙주는 또아리물달팽이, 제2중간숙주는 뱀, 올챙이, 개구리 등이라고 하네요. 

 

이런 만큼 이미 기재한 대로 숙주가 되는 생물체를 익히지 않고 섭취하거나 제대로 익히지 않으면 감염 위험성이 높으니 조심해야겠습니다. 이 기생충은 위와 대장 사이에 있는 작은창자에 침투해 장내 점막을 손상시키며 속 쓰림, 심한 복통, 설사 등 위장관 증상을 유발한답니다.

 

한국기생충박멸협회 및 한국건강관리협회 회장이기도 했던 서병설 교수는 국가 차원의 기생충 관리사업을 담당하며 우리나라 장내 기생충 감염 퇴치의 선봉에 선 입지전적 인물입니다. 아울러 전술한 WHO 등 여러 국제회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개발도상국의 기생충퇴치사업에 큰 축이 됐고요.

 

한편 우리나라는 서울주걱흡충 외에도 인산주걱흡충, 채씨큰입흡충, 참굴큰입조충, 아시아조충 등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기생충을 세계 최초로 학계에 보고하며 기생충학 분야에서 업적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슈에디코 강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