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전 세계적인 오페라 디바 '마리아 칼라스'의 마지막 일주일을 그린 전기 영화 '마리아'가 국내 개봉했습니다. 감독은 파블로 라라인이 맡았고 안젤리나 졸리가 마리아 칼라스 역으로 열연했고요.
지난해 개최됐던 제81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으로 1970년대 중후반경 파리에서 은둔하던 그의 말년을 섬세하게 짚어냈다고 합니다. 화려했던 마리아 칼라스가 고뇌했던 예술가적 고뇌와 성찰, 인간적 방황과 고독을 안젤리나 졸리가 표현한다니 한 번은 꼭 보고 싶네요.
마리아 칼라스는 아버지와 나이가 같은 28세 연상의 이탈리아의 사업가 조반니 바티스타 메네기니와 1949년 4월 결혼해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경력을 쌓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957년 그리스의 선박왕이던 세졔적인 거물 사업가 아리스토틀 오나시스와 만나 동거에 들어갔고 이혼을 원하지 않던 메네기니와 갈등을 빚었죠.
오페라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소프라노 중 한 명이지만 사적인 면에서는 흠집이 있던 마리아 칼라스와 어찌 보면 유사점이 있는 또 다른 마리아도 있습니다. 이 둘은 각기 다른 시공간에서 영욕이라는 공통 주제로 연결됩니다.
남다른 출세욕과 명예욕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을 위해 동분서주했던 이 여성은 유창한 영어 구사능력 덕에 이승만 전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 도너 리와 친분을 쌓아 남편이 정계에 발을 딛게 했죠.
이승만의 비서로 활동하며 정치적 야욕을 갖게 된 마리아의 남편은 제3-4대 서울특별시장, 제3대 국방부장관, 제3~4대 전반기 대한민국 국회의장을 지낸 정치인 이기붕입니다. 이승만 정부의 2인자로 알려진 이기붕은 선교사의 조력을 받아 떠난 미국 유학에서 신민회 집회 중 박마리아를 만나 결혼하게 됐죠.
다 아시겠지만 1960년, 2.28 학생민주의거, 3.15 부정선거 규탄 시위를 위시해 들불처럼 일어난 4.19 혁명은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부패에 맞선 거의 우리나라 모든 국민의 항거로, 이 중심에 있던 인물이 이기붕이죠.
독재와 다를 바 없는 정권 유지를 목적 삼아 금품 선거운동, 투표용지 조작, 무력 겁박, 대리투표 등 부정선거에서 볼 수 있는 온갖 불법을 자행해 이승만과 이기붕이 득표율 90% 압승을 거두자 4.19 혁명으로 국민이 정권 심판이라는 역사적 장을 연 겁니다.
이승만 정권의 붕괴에 정신이 무너졌던 건지 이기붕의 장남인 당시 육군 소위 이강석은 같은 해 4월28일 새벽 5시20분경 이기붕, 박마리아를 포함한 가족 모두를 권총 살해 후 자신도 같은 길을 향한 것으로 알려졌고요.
결이 다른 부창부수라고 해야 할지 박마리아는 이화여자전문학교(지금 이화여대) 교수로 지식인의 행보를 보이다가 김활란, 노천명 등과 1942년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라는 친일 단체를 조직해 매국행위에 앞장서며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리게 되죠.
1960년 혁명의 불길이 하늘까지 치솟은 날, 이기붕 일가에 파멸을 가져온 4월19일은 공교롭게도 1906년 당시 지명 강원도 강릉군에서 박마리아가 태어난 날입니다. 억센 과거를 딛고 태어난 후대를 위해 준비한 역사의 차가운 농담일까요?
/이슈에디코 전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