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이리저리뷰

[이리저리뷰] '얼 담긴 시구' 절씨구 좋구나

2023 메이저리그(MLB) 월드시리즈(WS) 5차전에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홈 구장인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체이스필드로 원정을 떠난 텍사스 레인저스가 홈팀에 5-0 승리, 시리즈 전적 4승1패의 성적을 거둬 창단 62년 만에 첫 WS 정상에 올랐습니다. 

 

현지시각으로 이달 1일 열린 5차전 경기에는 경찰학교를 졸업한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현장에서 총격을 당하고 죽음의 문턱에서 구사일생 살아 돌아온 피닉스의 경찰 타일러 몰도반이 시구(始球)를 맡아 감동을 전했습니다. 

 

2차전은 텍사스와 애리조나의 전설급 선수들인 아드리안 벨트레, 퍼거슨 젠킨스, 3차전은 랜디 존슨, 루이스 곤잘레스가 각각 시구와 시포에 나섰습니다. 4차전은 애리조나 주립대학교 출신 유명 골퍼 욘 람이 시구했고요.

 

1차전은 1989년부터 1994년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주를 역임하는 등 야구광으로 유명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01년 9·11 테러 발생 한 달이 지나 뉴욕 양키스와 애리조나의 WS 3차전에서 시구한 후 22년 만에 마운드에 서며 특별한 이벤트를 선사했습니다.

 

이렇듯 야구경기 시작 전 유명인이 나와 공을 던지는 식전 행사 시구는 우리나라에서도 역사가 깊습니다. 기록상으로는 지난 1920년 11월4일부터 사흘간 경기도 경성부(지금 서울) 배제고등보통학교 교정에서 '전조선 야구대회'라는 이름으로 처음 개최된 행사 중 독립운동가 월남 이상재 선생이 시구를 했습니다. 우리나라 야구 역사상 첫 시구였던 거죠. 

 

 

1920년 6월1일, 일제강점기 때 사회지도층에 속하던 고원훈, 김규면, 윤기현, 변봉현 등 47명의 전형위원들은 건강한 육체에 민족정신이 깃든 독립의식을 확보하고자 ‘건민(健民)과 저항’을 기치 삼아 장두현을 초대회장으로 세우고 조선체육회를 창설했습니다. 이들의 첫 사업이 전조선 야구대회였고요.

 

당시 이 대회는 한반도 최초 유료 입장객을 모았던 대회이자 제1회 전국체전 격입니다. 이로부터 5년 경과 후 1925년부터 이 대회는 야구뿐 아니라 많은 종목의 자웅을 겨루는 종합 스포츠대회로 탈바꿈했고요. 

 

미국에서는 1910년 4월14일 워싱턴 홈 개막전 당시 윌리엄 태프트 대통령의 시구가 최초 사례입니다. 다만 이때는 관중석에서 공을 던졌고 마운드 시구는 1984년 4월 볼티모어 홈 개막전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처음이고요.

 

이제 오는 7일 한국시리즈가 열리는 만큼 이 대회에 초점을 맞춰 글을 이어가자면, 한국시리즈 모든 경기에 시구자 이벤트를 마련한 건 1996년부터입니다. 포스트시즌 출전 구단이 시구자를 뽑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한국시리즈 시구자는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 선정하고요.

 

이런 이유로 연예인, 정치인, 스포츠 스타 등 기존 유명인보다는 공익적이든 화제성이 있든 사회적 사연이 있는 인물들이 공을 던지는 경우가 많죠. 과거와 비교하면 상당히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 시즌 한국시리즈에서는 1, 4차전에 시구 행사를 전개했는데 역대 첫 시구의 주인공은 유흥수 충남도지사였습니다. 지금 두산의 전신 OB의 연고지가 대전이었던 까닭이죠. 4차전 시구자는 다소 의외의 인물로 한국 야구에 관심이 많던 피터 오말리 당시 LA 다저스 구단주였습니다.

 

유 지사 이후 어지간한 시구는 경기가 열리는 해당 지방자치단체장 등 정치인들이 릴레이로 담당하는 행사처럼 여겼고요. 이들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미스코리아와 연예인들이 채웠고 어쩌다 대통령도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전두환은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에서 시구했고 한국시리즈 최초 시구 대통령 타이틀이 있는 인물은 1994년 LG 트윈스와 태평양 돌핀스 경기에 공을 잡았던 故 김영삼 전 대통령인데요. 부시 정도는 아닐지언정 야구 명문 경남고를 나와서 그런지 우리나라 대통령 중에서는 야구에 관심이 컸다고 합니다.

 

이후 20년 가까이 대통령의 마운드 방문은 잠잠했으나 지난 2003년 올스타전에서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시구한데 이어 2013년 한국시리즈 3차전 박근혜, 2017년 문재인 전 대통령이 한국시리즈 개막전 마운드에서 야구 팬들과 함께 했고요. 윤석열 대통령은 올 4월 정규시즌 개막전 시구자로 나왔네요.

 

연예인으로 한국시리즈 첫 시구를 맡은 인물은 1992년 5차전의 故 최진실 씨입니다. 그러다가 2014년부터 추세에 큰 변화가 생겨 안중근 의사 증손자 안도용 씨, 드라마 오징어게임 '깐부 할아버지' 오영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자원봉사자 이연숙·김경자 씨, KBO 전설급 선수 등 각자의 사연으로 울림을 주는 인물들이 마음이 담긴 공을 포수 미트를 향해 뿌리고 있습니다. 

 

/이슈에디코 전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