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짜사이] 생각보다 생각이 깊어지는 굴비이야기

 

휴대전화 알람을 살피다 보면 가끔씩 네이버 'MY BOX(마이박스)'라는 클라우드 서비스에서 'n년 전 오늘을 확인하세요'라는 문구를 볼 수 있는데요.

 

몇 년 전 나만의 추억을 다시금 살펴볼 수 있어 항상 마이박스 알람을 켜두곤 합니다. 어제도 이 알람이 울렸길래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애플리케이션(앱)을 실행했는데요.

 

 

당시 본가에서 찍은 주렁주렁 매달린 굴비 사진을 볼 수 있었습니다. 왜 찍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통통한 굴비를 보자니 없던 입맛이 돌아오는 동시에 '자린고비'가 떠올랐죠.

 

모두 알다시피 충청북도 충주(또는 음성)에서 손꼽히는 부자라던 자린고비는 천장에 매달아놓은 굴비를 눈으로만 즐기며 밥을 먹기로 소문난 일명 '짠돌이'입니다. 또 그의 부인은 장터에서 생선을 만져본 뒤 생선을 만진 손을 솥에 씻어 국을 끓였다는 얘기도 있고요. 

 

자린고비의 모델은 조륵이라는 사람이며 별명의 유래는 다양한데요. 제사에 쓸 지방도 아까워 한 번 쓴 뒤 기름에 절여 다음 번 제사에 썼다고 해서 붙여진 '결은 고비'에서 유래됐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건에 기름을 묻힌다는 '겯다'에서 파생된 '결은'과 돌아가신 부모님 제사 지방에 쓰는 고비(考妃)가 합쳐졌다는 건데, 부모님 제사에 종이 하나 태우는 것도 아까워하는 사람이라는 결은 고비가 자린고비로 변했다는 거죠. 

 

아울러 이렇게 절약한 재물을 힘든 시기에 내놔 사람들이 '자인고(資仁考)'라는 이름의 비(碑)'를 세운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고요. 그의 절약정신은 사람들의 입과 입을 통해 다양하게 퍼졌지만, 매번 아낀 돈을 기부해 굶주린 백성들을 구할 수 있었다는 게 자린고비 얘기의 한결같은 결론입니다. 실제 조륵도 모은 재산을 모두 흉년에 베풀어 백성 약 1만 명을 구제했다고 하네요. 

 

이런 얘기를 경기도 이천 출신인 직장동료와 나누던 중 이곳에도 자린고비와 비슷한 인물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요.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디지털 아카이브로 보유 중인 경기도 디지털 문화역사관 '경기도 메모리'에서 이와 관련한 사료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옛날옛적 이천에 사는 천지꼽재기가 밥을 먹던 중 파리가 간장 그릇에 빠졌다가 날아갔는데요. 간장을 먹을 수 없게 된 천지꼽재기가 화를 참지 못해 파리 뒤를 쫒았다고 합니다.

 

이천 안흥동 구만리라는 동네부터 호법면 유산리를 거쳐 용인시 양지, 김량장리를 지나 끊임없이 걷던 그는 어떤 개울가에서 파리를 놓쳤는데요. 그 개울가의 이름은 천지꼽재기가 어정거렸다고 해서 '어정개'가 됐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수원과 여주는 잇는 수여선에 어정역이 있었는데요. 수여선은 1972년 폐선됐지만, 어정역은 현재 용인 경전철이 지나치는 역 중 하나가 됐습니다. 하지만 천지꼽재기가 자린고비처럼 선행에 앞장 섰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네요.

/이슈에디코 김지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