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짜사이] "보라… 이 사무치게 아름다운 보라"

 

작은방 서랍장 옆 틈새 청소를 하다가 오래 열지 않았던 맨 아래 서랍을 보게 됐습니다. 제 보물창고더라고요. 필름 카메라, 초기 디지털 일안 반사식(DSLR·Digital Single-Lens Reflex) 카메라, 하이엔드급 카메라에다가 꼬꼬마 때 듣던 카세트 테이프 몇 개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중 제 시선이 고정됐던 테이프는 1990년 발매한 강수지 1집이었죠. 당시 초·중·고등학교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강수지 씨의 데뷔곡 '보랏빛 향기'가 수록된 이 앨범의 인기는 2집까지 이어져 그를 한동안 국내 가요계 정상에 있게 했습니다.

 

아쉽게도 보랏빛 향기가 풍기는 은은한 충격이 너무 강렬했던 탓인지 다른 곡은 떠오르질 않네요. 2집은 타이틀곡인 흩어진 나날들 외에도 시간 속의 향기, 하고 싶은 이야기, 잃어버린 표정 등 많은 노래를 아직까지 흥얼거릴 수 있는데 말이죠.

 

 

이후 색명이 제목에 들어간 노래가 또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보라색은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색이었습니다. 하여튼 보라색과 관련한 다른 얘기로 이번 편 마무리하려고요.

 

CSS(Cascading Style Sheet)라는 스타일 시트 언어가 있습니다. 자료 속성을 이용해 웹사이트 모양을 만드는 HTML(Hypertext Markup Language) 등의 마크업 언어로 작성된 문서가 사이트에 표현되는 방법을 정한 건데요.

 

스타일 속성을 아래로 퍼뜨리는 모습이 폭포수를 연상케 해 붙은 명칭인데 CSS 색명 중 유채색 계열에 '레베카퍼플(RebeccaPurple)'이라는 색이 있습니다. 헥스 코드 '#663399' 그리고 10진 코드 '102, 51, 153'에 해당하는 이 색에는 역시나 레베카와 엮인 얘기가 있죠.

 

웹 디자인 개발자로 여러 권의 CSS 연관 서적도 펴낸 에릭 메이어(Eric Meyer)와 부인 캐서린 마이어 사이에는 세 명의 입양 자녀가 있었는데 둘째 딸 레베카 앨리슨 마이어가 2014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것도 여섯 번째 생일에 뇌종양으로 말이죠. 레베카퍼플은 생전에 레베카가 좋아하던 색으로, 아이를 기리기 위해 'CSS Color Module Level 4' 목록에 이 색을 추가한 거고요.

 

에릭 마이어는 레베카가 뇌종양 진단을 받은 후 1년간 블로그에 일상을 기록하며 딸의 쾌유를 바랐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고통을 지켜본 많은 지인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사연을 알렸고 기업은 요청을 수락해 기존 색상목록에 새로운 보라색이 추가된 거죠.

 

이제 아이의 이름은 색으로 존재합니다. 잊히지 않는 이름이 된 레베카. 보랏빛으로 남은 레베카…. 사랑하는 사람을 남기고 먼저 세상을 떠난 많은 이들을 위한 각각의 색명이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슈에디코 전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