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6월6일은 우리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 순국선열, 참전용사, 전몰장병, 순직 공무원 등 모든 호국영령의 넋을 기리고 희생과 충절을 추모하는 국가적 추모일이자 법정공휴일인 현충일(顯忠日)이죠.
나라사랑의 마음을 새롭게 다지는 현충일은 1956년 6월6일 처음 제정됐는데 6·25전쟁이 발발한 달이자, 과거 망종(芒種) 무렵 조정에서 병사들의 유해를 매장하고 제사를 지내는 등 예를 갖췄던 전통을 반영해 이 날짜로 정했답니다. 고려 현종 5년인 1014년, 망종 날이면 전쟁에서 죽은 장병의 뼈를 집으로 보내 제사를 지내게 했다는 기록도 있고요
이날은 대통령을 위시한 정부 주요 인사와 국민은 국립묘지 등에서 참배하고 오전 10시에는 전국적으로 1분간 묵념을 하며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명복을 빕니다. 아울러 조의를 표하는 의미를 담아 태극기를 깃대 끝까지 올린 뒤, 깃면 너비만큼 내려서 다는 조기(弔旗)로 게양하죠.
관공서는 오전 7시부터 자정, 일반 가정은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게양하는 게 통상적이며 비, 강풍 등 악천후에 국기 존엄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을 때는 게양하지 않거나 날씨가 갠 후 다시 게양합니다.
이와 함께 경사스러운 날이 아니므로 거리용 가로기는 게양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며 다른 깃발과 함께 게양할 때는 모두 조기 게양하고 태극기를 가장 높은 위치로 올려야 하죠.
이처럼 우리의 국기를 떠올리는 순간은 대개 국가적 추모일이나 경건한 의례가 있는 날에 한정되지만,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전 국민이 매일매일 태극기를 바라보며 일상을 멈추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1989년 1월20일 이전 우리나라에서는 하절기 오후 6시, 동절기 오후 5시면 전국에서 국기하강식(國旗下降式)을 거행했었죠.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애국가가 나오면 모든 국민은 장소 상관없이 하던 일을 멈추고 국기를 바라보며 가슴에 손을 얹었습니다.
하루 동안 게양했던 국기를 내리는 이 의식은 국기에 대한 존경과 예를 표하고, 국가적 상징물의 위엄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절차였으나 현재는 군부대와 일부 기관, 특별한 행사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됐죠.
전 국민이 함께 움직이던 국기하강식을 폐지한 이유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국가·병영·획일주의에 대한 비판과 개인의 자유 침해라는 사회적 인식변화가 강해졌기 때문입니다.
불과 40년도 지나지 않은 과거엔 1979년 부마항쟁 및 10·26 사건과 엮인 비상계엄,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하려던 비상계엄 등의 시퍼런 서슬이 국가주의적 강제를 만들며 개인의 자유를 침해했던 거죠.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참 많았습니다.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처럼 부부싸움 중에도 국기하강식이 시작되면 다툼을 멈추고 함께 국기를 바라보며 예를 갖추는 일 정도는 항다반사였고요.
기차역에서는 하강식으로 열차를 놓치는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단체 달리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1981년 11대 국회의원 선거 때는 한 후보가 마감 직전 선거관리위원회에 도착했으나, 국기하강식이 시작되는 바람에 접수 시간을 넘겨 출마하지 못한 사례도 있었죠.
이렇듯 과거 한때의 국기하강식은 단순한 의례가 아니라 하루의 일부를 멈추는 집단적 체험이자 우리 현대사의 강제된 추억이기도 했습니다.
/이슈에디코 전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