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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사이] 보여도 볼 수 없는… 명암의 터널 비전

 

10년 전쯤, 경기도 가평 소재의 한 테마파크에 가서 찍은 카페전시관 내부입니다. 영화에서 보던 오크통이 실물로 있으니 왠지 반갑더라고요. 왜 반가웠는지는 저도 잘…

 

에티몰로지 온라인(Etymology Online) 등의 어원 전문 사이트를 보면 큰 통이나 술통은 중세 라틴어로 'tunna'라고 불렀답니다. tunna는 무게 단위인 ton(톤)의 어원이기도 한데 와인 한 통 무게가 대략 1톤에 달했던 만큼 단어의 의미가 확장된 것으로 봐도 무방하겠죠.

 

이 단어의 축소형인 'tunnellus'는 작은 통을 의미하며 프랑스로 건너가 중세 프랑스어 'tonnelle'의 어원이 됐습니다. '아치형 덮개, 정원 차양'을 뜻하는 이 단어는 15세기 중반 영어권에 들어와 'tunnel'로 변형을 거쳐 17세기 무렵에는 광산이나 군사적 목적의 '땅속 통로'를 지칭하는 용어가 됐고요.

 

우리가 흔히 쓰는 터널은 tunnel의 음차어로 일제강점기 당시 철도 건설 과정에서 유입돼 지금까지 사용 중입니다. 일제 치하에서 터널을 만들기 위해 어떤 희생들을 감내해야 했을지 감히 짐작도 되지 않네요.

 

현대 역사학자들이 일제강점기 자료들과 피해자 증언들을 바탕으로 추정한 연구 결과를 보면 약 1.6km의 철도 건설에 평균 1~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터널 건설 과정에서는 더 큰 인명피해가 있었고요.

 

터널은 건설 작업자나 이용자 모두 안전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하는 곳입니다. 어제 오전 5시40분경 대구 군위군 군위읍 상주영천고속도로 상주방향 평호터널 안에서 화물차 3대가 잇따라 충돌해 1톤 화물차 60대 운전자가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났죠.

 

지난 2016년 7월에는 서울∼강릉 간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 진입 직후 5중 추돌사고로 42명의 사상자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봉평터널에서는 이 해에만 크고 작은 교통사고가 연달아 발생해 한동안 '마의 터널'이라는 오명에 시달렸고요.

 

42명 사상자가 생긴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졸음운전으로 밝혀졌지만, 사고가 터널 진입 직후 발생한 만큼 시야 확보 문제가 사고를 야기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문가 견해도 여럿 나왔습니다.


받아들이는 과정… 지나고 나면 다시 내 세상 


암순응(Dark Adaptation)은 밝은 곳에 있다가 갑자기 어두운 곳으로 이동했을 때,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사물을 식별하게 되는 현상입니다. 눈의 간상세포 활성화 때문에 생기는 이 현상은 '블랙홀 현상'이라고 부르며 시야가 극히 좁아지는 터널 비전(tunnel vision)이 일시적으로 발생하죠.

 

암순응과 대비되는 명순응(Light Adaptation)은 어두운 곳에 있다가 갑자기 밝은 곳으로 나왔을 때 처음에는 눈이 부시지만 곧 밝은 빛에 적응하여 시야를 회복하는 현상입니다. 눈의 원추세포가 활성화하면서 발생하며 블랙홀 현상과 반대인 '화이트홀 현상'이 나타나며 역시 터널 비전을 겪을 수 있다네요.

 

암순응과 명순응은 우리 눈이 주변 환경의 밝기 변화에 적응하는 생리적 과정이라면, 터널 비전은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각적 현상입니다.

 

터널 진입 시 암순응과 터널 내부 빛 반사, 긴 터널에서의 시야 피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사고가 나는 경우가 많죠. 터널 출구에서 강한 햇빛에 노출돼 짧은 순간이나마 명순응 상태가 될 때도 앞이 사고가 발생할 수 있고요.

 

터널 비전 또한 운전 중 사고의 주요 원인입니다. 시야가 극도로 좁아져 주변 상황을 놓친 채 특정 사물이나 목표, 한 가지 관점에만 집중하게 되는 현상인 터널 비전은 원래 의학 용어였으나 지금은 심리학 용어로도 사용하죠.

 

터널 비전은 녹내장, 망막색소변성증, 뇌졸중, 뇌 손상, 심각한 스트레스나 공포, 과도한 음주 등의 신체적 원인에 의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생각이나 목표에 대한 과몰입이나 집착 등 심리적 원인에 기인하기도 하는데 특히 경쟁, 갈등, 강박적인 목표 달성 등과 같은 상황에서 도파민이 과도하게 분비되면 터널 비전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하네요.

 

이렇게 시야가 극도로 좁아질 경우, 타인 의견에 공감하거나 현상을 직시하는 능력이 떨어져 불편한 상황을 겪을 수도 있고요. 실제로 경찰이나 검찰 수사 중 특정 용의자에게만 집중해 다른 가능성을 아예 없애고 오판하는 경우가 여기 해당합니다.

 

기업이 수익 창출에만 지나치게 집중해 소비자의 불만을 놓치는 사례나 입시 위주 교육으로 학생들의 잠재력이나 인성 교육처럼 더 큰 가치를 간과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죠.

 

터널은 그저 공간의 통로만이 아닙니다. 아직 완전한 빛도 어둠도 아닌 중간지대라는 점에서, 우리는 언제나 작은 터널들을 거치며 살아가는 거죠. 고통에 맞서는 순응 그리고 이후에 찾는 비전. 우리 삶의 명암이 존재하는 이유는 분명히 있습니다.

 

/이슈에디코 강민호 기자/

 

+플러스 생활정보

 

명순응과 암순응, 터널 비전으로 인한 운전 중 위험을 줄이려면 터널 진입 전 미리 속도를 줄여 암순응에 따른 시야 확보 불량 대비. 또 전조등을 켜서 차의 위치를 다른 운전자에게 알리는 동시에 선글라스 벗는 등 암순응 방해 요소 제거. 아울러 터널 안에서는 급정거에 대비해 앞차와의 간격을 충분히 확보하고 주간 주행등 또는 전조등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