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어른이 다 된 큰 아이가 그나마 세상에서 자유롭던 몇 해 전 중학교 겨울방학 때 잠시 타던 스노보드입니다. 신문지에 싸여 보일러실에 방치된 와중에도 잊히고 싶지 않았다는 듯 제 빛깔을 내는 모습을 보니 공연히 미안한 마음이 드네요. 이번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서 국경을 초월해 이목을 모은 여고생 스노보더 최가온 선수가 식지 않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최가온은 부상 악재를 디딘 채 자신의 우상 클로이 김(미국)을 앞에 두고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에서 금메달을 이로 물었죠. 1, 2차 시기에서 잇따라 넘어지며 절망적 상황까지 몰렸지만 마지막 3차 시기에서 90.25점을 뽑아내 88.00점의 클로이 김에 앞서는 역전극을 펼쳤습니다. 더욱이 2008년 11월생인 최가온은 클로이 김이 2018년 평창에서 세웠던 하프파이프 최연소 올림픽 금메달 기록(17세 10개월)도 약 7개월 앞당긴 17세 3개월의 나이로 새 역사를 썼고요. 한국 설상 종목 사상 첫 금메달이라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각별합니다. 사실 이름만 귀에 익은 스노보드는 동계올림픽 종목 자체로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었죠. 그나마 1996년에 데뷔해 큰 인기를 끌었던 혼성그룹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경칩이 지나 이제 곧 봄이 다가오는데요. 아직 조금은 쌀쌀해도 날이 점점 풀리자 전국 방방곡곡 여러 산에 등산객이 붐비고 있습니다. 이 사진은 지난해 4월쯤 올랐던 관악산인데요. 맑은 하늘 아래 푸릇한 내음이 가득한 탁 트인 곳을 보니 올라오며 흘린 땀이 아깝지 않은 기분이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등산 맛집'으로 유명한 관악산에 올해는 더 많은 등산객이 몰리는 중이라고 합니다. 정상인 '연주대'에 향하는 산길에는 대기줄이 생길 정도라는데요. 직접 가지 않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유튜브를 통해 실시간 관악산 전경을 봐도 매일 사람이 바글바글합니다. 이 열풍의 배경에는 지난 1월 28일, CJ ENM의 종합 버라이어티 채널 tvN에서 방송된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역술가 박성준 씨의 영향도 있습니다. 이날 방송에서 그는 운이 안 풀릴 때 활용할 수 있는 여러 개운법(開運法)에 대해 얘기했는데요. 그중 하나가 관악산 등산이었습니다. 박 씨는 관악산이 서울에서 화기(火氣)와 정기(精氣)가 좋은 산이라며, 연주대에서 같은 소원을 세 번 빌면 좋다고 언급했습니다. 이 방송을 접한 시청자들이 관악산을 찾기 시작한
연달아 비슷한 이미지로 '짜사이'를 작성하는 건 처음이네요. 얼마 전, 퇴근 후 유리창에 반사된 태양을 휴대전화 카메라에 담아봤습니다. 하나인 태양이 둘로 보이는 순간, 떠오른 건 이달 초 여의도에서 터진 말 한마디였죠. 지난 2일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같은 당 정청래 대표를 향해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있을 수 없다"면서 날선 태도를 감추지 않았습니다. 정 대표가 조국혁신당과의 합당을 제안하자 당내 갈등이 불거졌고, 이 최고위원은 이를 "2인자, 3인자들의 당권·대권 욕망 표출"이라 규정하며 정면으로 맞섰죠. 이 같은 정치적 요동은 마치 태양 표면의 흑점을 떠오르게 합니다. 흑점은 주변보다 온도가 낮아 검게 보이지만, 사실 태양에서 가장 강력한 자기장 에너지가 응축돼 언제든 거대한 폭발을 일으킬 수 있죠. 이번 민주당의 내홍을 보니 조직 내부의 분란은 단순히 묻거나 지워야 할 결점이 아니라 쌓였던 역동적 에너지가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알리는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늘한 고사의 무게 '하늘에 두 해가 없고, 백성에게 두 임금이 없다(天無二日 民無二王).' 이 최고위원이 인용한 표현의 뿌리는 깊습니다. '예기
설 연휴를 앞두고 계란 한 판을 포함해 이런저런 식자재를 사러 동네 마트에 들렀다가 손을 놓아버렸습니다. 특란 30개 가격이 7000원을 훌쩍 넘어선 걸 보고 온라인 마트 할인혜택을 노리며 그냥 돌아섰죠. 이달 카드 사용액을 보고 절망에 빠져 빈손으로 마트를 나서며 알알이 맺힌 눈물. 올 겨울도 설을 앞두고 아프리카돼지열병(ASF·African Swine Fever)과 구제역이 전국으로 퍼지는 와중에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Avian Influenza)까지 기승을 부립니다. 산란계 농장에서만 432만 마리 이상이 살처분됐고 그 영향은 고스란히 소비자 장바구니로 옮겨왔죠. 정부는 급한 불을 끄려고 미국산 신선란 224만 개를 긴급 수입했는데 지난달 23일 첫 물량이 인천공항에 도착해 30일부터 대형마트에 풀렸습니다. 대형마트 기준으로 한 판 6000원 정도의 가격이지만 이런저런 논란은 여전하네요. 알 권리를 위한 열 자리 국내 계란 껍데기에는 10자리 숫자가 찍혀 있습니다. 맨 앞 4자리는 닭이 알을 낳은 날짜, 그다음 5자리는 생산농가 고유번호, 마지막 1자리는 사육환경을 표기하죠. 0205M3FDS2라면 2월 5일에 낳은 알이고, M3FDS 농장, 닭
작년 성탄절에 먹은 양념치킨의 광택이 다시 입맛을 다시게 합니다. 단맛과 매운맛이 천상의 조화처럼 단짝을 이뤄 모처럼 기억에 남은 맛이었죠. 이런 양념치킨의 개발자로 불리던 맥시칸치킨 설립자 윤종계 옹의 별세 소식이 이달 8일 유족에 의해 뒤늦게 전해졌는데요. 고인은 지난해 12월 30일 오전 5시쯤 경상북도 청도 소재 자택에서 향년 75세로 지병 탓에 영원히 눈을 감았습니다. 다시 한 번 모니터 화면을 통해 진심으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방송 출연이 많지 않던 고인과 달리 방송을 진심 즐기는 듯한 국민 MC 유재석을 지금의 위치로 격상시킨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2013년 6월 1일 방송된 MBC 무한도전-무한상사 편에서 유재석은 가상의 치킨 브랜드 음 치킨을 팔기 위해 온갖 효능을 붙여가며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음 치킨을 먹으면 몸매가 좋아지고 얼굴이 작아지는 것은 물론 괴력까지 생긴다는 등 말도 안 되는 멘트가 쏟아졌죠. 텔레비전 속 유머는 화면 속에 고정되는 경우가 다반사지만 가끔은 현실로 활동공간을 이동해 우리네 삶 속으로 파고드는 때도 있습니다. 실제 제품으로 판매한 영화나 애니메이션, 예능 속 음식 또는 브랜드들을 알아봤습니다.
지지난밤, 올 겨울 들어 처음으로 소복이 내려앉은 눈이 아침 햇살을 만나 새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제설작업 탓에 불편을 호소하는 분위기가 강했지만 일터에서 한숨 돌리며 도심 설경을 살피니 흰색이 주는 순수함이 마음을 들뜨게 하더군요. 눈의 결정들로 뭉친 백색 융단이 떠오르는 태양의 빛을 고스란히 끌어안고는 수많은 프리즘처럼 사방으로 퍼집니다. 이 찬란한 반사가 만드는 백색의 경이는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경고를 품고 있죠. 아래 이미지는 집 주변의 풍경인데 제가 본 눈부심이 제대로 담기지 않아 너무 아쉽네요. 지표면의 눈이 반사하는 강렬한 빛은 때때로 단순한 눈부심을 넘어 우리 눈 건강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는데, 이것이 바로 '설맹증(雪盲症, Snow Blindness)'입니다. 의학적으로 광각막염(Photokeratitis)이라고 부르는 설맹증은 눈이 강한 자외선에 과도하게 노출돼 각막 표면에 일시적 화상이나 손상이 생겨 시력 장애를 일으키는 현상입니다. 눈(雪)이 많이 쌓인 환경에서 주로 발생하는 만큼 설맹증이라는 이름이 붙었고요. 설맹증의 핵심 원인은 극도로 높은 자외선 반사율입니다. 새로 쌓인 눈은 태양광 속 자외선의 약
이달 초, 낚시를 무척 좋아하는 친구가 보내준 사진입니다. 전라남도 최북단에 위치한 영광군 낙월면 소재 최대의 섬 안마도에서 찍었다고 하네요. 친구는 오늘 저녁도 출조 예정이라고 합니다. 어느 곳으로 나설지 묻지는 않았지만 그곳이 어디든 마냥 부럽기만 합니다. 어쩌면 이리도 황금빛일까요. 저 바다가 진짜 금이라면 물결을 따라 잔잔히 일렁이는 빛만 손으로 걷어 올려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사우디 금맥'과 관련한 이슈가 부상했습니다. 여러 게시물에서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링크를 따라가 보니 국내 한 인터넷 신문사에서 이달 25일 작성한 기획기사를 볼 수 있었죠.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광산기업 마덴(Maaden)이 메카 인근 만수라-마사라 지역 남쪽에서 125㎞에 달하는 초대형 금광 지대를 발견했다는 내용이었고요. 기사대로라면 이 금광에서 발견된 금의 품위는 톤당 10.4g, 20.6g인데 세계적으로도 매우 높은 등급(평균 1~4g/t)이라고 합니다. 이번 발견 덕에 미개발 광물자원 추정치가 기존 1조3000억 달러에서 2조5000억 달러(한화 약 3674조 원)로 상향 조정된 사우디는 금, 희토류 등을 활용해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길고도 뜨거운 여름철의 포항을 찾아 시원하게 즐겼던 물회입니다. 몇 해 전인지 기억은 확실치 않지만 얼음장 같은 육수, 갓 잡은 싱싱한 횟감, 매운 양념과 뒤섞인 날것 그대로의 시원한 강렬함은 뇌리에 여전하네요. 열기에 맞서 냉기를 찾는 억척스러운 역동성은 포항이라는 도시의 기질을 고스란히 닮았습니다. 겨울의 문턱에 서서 올해의 마지막 불씨를 차분하게 지킬 11월, 남은 두 달의 여백을 바닥에 깔고 내년의 새 걸음을 준비해야 할 이 시기에 포항에는 유독 큰 이슈들이 많았죠. 지난 1990년 11월 10일, 축구전용구장 하나 없는 나라가 월드컵에 출전한다는 이탈리아 언론의 조롱에 무척 화가 난 당시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의 주도로 관중석과 경기장이 가까운 형태의 우리나라 첫 축구전용구장(지금 포항스틸야드)을 준공했습니다. 포항은 대한민국 산업 역사에서 꽤 많은 최초의 의의를 새긴 곳이기도 하죠. 그 중심에는 포항제철소(지금 포스코)가 있고요. 1973년 6월 9일, 이곳 제1고로에서 우리나라 최초 근대적 일관제철소의 쇳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철광석 투입부터 최종 제품 생산까지 전 공정을 한 곳에서 처리하는 이 체계는 1960년대 당시 한국 경제의 무게추를 경공
잠시나마 쉬어갈 수 있는 토요일. 구독 중인 동영상 스트리밍서비스 넷플릭스를 통해 영화 한 편을 다시 시청했습니다. 아리 애스터(Ari Aster) 감독의 영화 '유전'을 보면 주인공 가족의 집을 디오라마 시점에서 비추며 화면 전환을 통해 통제된 운명에 갇힌 인형극적 공간 구성으로 공포의 미장센을 보여주죠. 감독이 시청자를 위해 대놓고 설계한 인상적인 연출기법이라 흔쾌히 눈에 새기며 보게 됐습니다. 주인공 피터(Peter)의 어머니인 애니 그레이엄(Annie Graham)도 영화상 직업이 디오라마(미니어처) 조형사라 소품으로 집을 제작하죠. 영화 자체도 찝찝함이 남지만 태양빛 아래에서도 이질감이 도는 것 같은 집 자체의 괴이하고도 은근한 서늘함이 기억에 남더라고요. 오늘의 이미지는 OpenAI에서 개발한 GPT(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 자연어 처리용 딥 러닝 기반 언어 생성 모델)를 기반으로 하는 대화형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 서비스인 ChatGPT가 그린 유전 속 주인공의 집입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외침은 적어도 이 영화 속 저주받은 집안에는 해당하지
10년 전쯤, 경기도 가평 소재의 한 테마파크에 가서 찍은 카페전시관 내부입니다. 영화에서 보던 오크통이 실물로 있으니 왠지 반갑더라고요. 왜 반가웠는지는 저도 잘… 에티몰로지 온라인(Etymology Online) 등의 어원 전문 사이트를 보면 큰 통이나 술통은 중세 라틴어로 'tunna'라고 불렀답니다. tunna는 무게 단위인 ton(톤)의 어원이기도 한데 와인 한 통 무게가 대략 1톤에 달했던 만큼 단어의 의미가 확장된 것으로 봐도 무방하겠죠. 이 단어의 축소형인 'tunnellus'는 작은 통을 의미하며 프랑스로 건너가 중세 프랑스어 'tonnelle'의 어원이 됐습니다. '아치형 덮개, 정원 차양'을 뜻하는 이 단어는 15세기 중반 영어권에 들어와 'tunnel'로 변형을 거쳐 17세기 무렵에는 광산이나 군사적 목적의 '땅속 통로'를 지칭하는 용어가 됐고요. 우리가 흔히 쓰는 터널은 tunnel의 음차어로 일제강점기 당시 철도 건설 과정에서 유입돼 지금까지 사용 중입니다. 일제 치하에서 터널을 만들기 위해 어떤 희생들을 감내해야 했을지 감히 짐작도 되지 않네요. 현대 역사학자들이 일제강점기 자료들과 피해자 증언들을 바탕으로 추정한 연구 결과를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