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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사이] 유산균 한 알, 촌충 한 알…누구를 위해 삼키는가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4일까지 열렸던 CJ올리브영 '올영세일'에서 구매한 유산균 캡슐입니다. 이전 학계에서는 유산균의 장 건강에만 집중했는데 최근에는 면역력 강화, 뇌 기능 개선, 피부질환 완화 등 여러 기능을 한다는 유산균 연구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죠.

 

최근 올리브영은 뷰티 상품에서 더 나아가 유산균, 비타민, 마그네슘과 같은 필수 영양제부터 멜라토닌, 콜라젠, 글루타치, 이노시톨 등 여러 웰니스 상품 판매에 주력 중인데요. 이곳을 찾는 외국인 고객 역시 이런 카테고리를 많이들 찾는다고 합니다. 최근 올리브영에 따르면 올 1~5월 외국인 고객의 이너뷰티(Inner Beauty) 카테고리 매출은 전년 대비 55% 뛰었다고 하죠.

 

저도 올리브영에서 화장품 외 여러 제품을 잘 구입하는 편인데요. 때마침 먹던 유산균이 떨어져 세일하는 김에 살피던 중 이 상품의 키워드인 '다이어트'와 '비타민B'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 알만 챙겨 먹으면 유산균과 비타민B를 섭취할 수 있는 동시에 체지방 감소 효과가 있다니…… 남들에겐 우스갯소리로 들릴 수 있지만 다이어트가 필요한 저에겐 지나칠 수가 없더라고요. 이왕 먹을 유산균이라면 '뭐라도 하나 더 얻는 게 좋겠지' 하면서 말입니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속 안 유산균 알갱이들이 가득한데요. 이를 보자니 노르웨이 영화감독인 에밀리 블리치펠트의 데뷔작 '어글리 시스터'가 떠오릅니다. 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작품상과 관객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누구나 잘 아는 '신데렐라'를 차용한 작품인데요.

 

아버지가 재혼한 지 얼마 안 돼 세상을 떠나자 계모와 두 의붓자매에게 괴롭힘과 구박을 당하며 '재투성이(신데렐라)'란 이름으로 불리게 된 주인공. 그러나 밝고 착한 천성 덕분에 동물과 마술사의 도움을 받아 왕궁 무도회에 도착, 왕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죠.

 

그러나 12시가 지나면 모든 마법이 풀리기에 급하게 유리구두 한쪽만 두고 떠나지는데요. 이후 왕자가 방방곡곡 유리구두 주인을 찾으며 다시 재회해 행복한 결혼을 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정확한 원작은 찾을 수 없지만, 디즈니 이전 신데렐라 내용은 유리구두를 신기 위해 의붓자매가 발 일부분을 자른다던가, 신데렐라의 결혼 후 계모와 의붓자매들이 새들에게 쪼여 실명한다는 다소 잔혹한 부분이 있습니다.

 

영화는 이런 잔혹한 부분까지 야무지게 빌려왔는데요. 19세기 어느 한 유럽이 배경인 이 작품의 주인공은 의붓자매 중 한 명인 '엘비라'입니다. 한 귀족이 두 딸이 있는 미망인과 결혼하며 아름다운 '아그네스(동화 속 신데렐라)'와 엘비라는 자매라는 연을 맺죠.

 

재혼 당일 아그네스의 아버지는 식사 중 목숨을 잃는데, 계모는 죽은 남편의 재산이 사실 한 푼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분노합니다. 이런 엄마와 정반대의 성격인 엘비라는 저 먼 다른 나라에서 왕자가 직접 집필한 시집 한 권을 읽고 또 읽으며 본 적도 없는 왕자를 좋아하는 순박한 소녀로 등장합니다. 그런 딸을 보며 엄마는 "거울을 보라"며 무시하기 바쁘고요.

 

 

엄마는 남편이 죽은 후 막대한 돈과 명성을 얻기 위해 '엘비라와 왕자 결혼시키기' 프로젝트에 돌입하는데… '짜사이'가 짧은 콘텐츠인 만큼 영화 속 많은 얘기는 다루지는 못하지만, 그 프로젝트 과정이 정말 끔찍합니다. 엘비라는 예뻐지기 위해 성형외과에서 수술대에 오르는데, 앞서 말했듯 영화 속 시기는 19세기입니다. 예쁜 코를 갖기 위해 마취 없이 조각칼로 코를 쪼개고 길고 우아한 속눈썹을 위해 눈 밑을 바늘로 꿰매죠.

 

개인적으로 또 다른 보디 호러물 '서브스턴스'보다 이 영화 속 장면들을 보기 힘들더라고요. 젊은 나를 만들기 위해 척수를 뽑는 일보다 속눈썹 연장이나 코필러 수술이 만연한 시대에 살고 있어서일까요?

 

유산균 캡슐이 떠올랐던 건 다이어트를 위해 엘비라가 삼켰던 '촌충 알' 때문입니다. 그는 이 알 속 기생충이 배 안에서 자라 음식을 먹는 족족 모든 영양분을 빨아들인다는 학교 선생의 말을 듣고 거리낌 없이 알을 삼킵니다. 그런 엘비라를 보며 다이어트라는 키워드로 이 유산균을 고른 제 모습이 얼핏 보이더라고요(이 제품이 효능이 없다거나 부작용을 준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영화의 끝은 동화와 같습니다. 왕자는 뒤늦게 무도회에 등장한 아그네스에게 반하고, 남긴 구두를 통해 그녀를 수소문합니다. 엘비라는 너무도 사랑했던 왕자를 위해 도끼로 발가락을 자르는 고통까지 감내하지만 결국 왕자를 차지하지 못했죠. 끝내 흉측한 몰골이 된 엘비라는 동생 덕분에 기생충을 뱉어내고 다른 나라로 떠납니다.

 

슬프더라고요. 아름다움과 사랑을 원해 나의 외모를 바꿨을 뿐인데 차라리 죽음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참한 결말을 맞아야 하나?라는 의구심이 들어서입니다.

 

서브스턴스를 관람했을 때도 이런 비슷한 감정이 들었는데요. 서브스턴스를 연출한 코랄리 파르자 감독은 이런 지적에 대해 "젊고 아름답고, 섹시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며 계속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게 여성의 현실"이라며 "이런 현실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일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부연에도 저는 '러브 유어셀프(Love yourself, 너 자신을 사랑해)'하지 않는 사람들의 비참한 꼴을 보는 기분은 유쾌하지 않더라고요.

 

다만 어글리 시스터는 서브스턴스처럼 찝찝한 기분만 남겨주지 않습니다. 엘비라의 예뻐지려는 욕망의 근본은 '사랑'이었거든요. 이성이든 가족이든 대상을 불문하고 사랑하는 사람(왕자의 인성이 어쨌든)을 위해 비이성적인 일을 해본 경험, 누구든 한 번은 있지 않을까요?

 

또 자신을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게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엘비라가 동생과 다른 나라로 떠나는 모습도 감명 깊었습니다. 비록 많은 것을 잃었지만, 한층 더 성장한 그의 열린 결말은 왕자와 결혼 후 고생길이 뻔히 보이는 아그네스와 대조됐거든요.

 

유산균 한 알에서 시작된 이번 '짜사이'는 어글리 시스터 속 엘비라의 모습으로 이어졌습니다. 무엇을 삼키든 '누구를 위해 삼키는가'라는 주체성은 잃지 말아야겠죠. 삼키는 순간 찾아올 책임도 자신의 몫이고요. 그래서 왕자를 잃은 엘비라보다 자신을 잃지 않은 엘비라의 이야기가 더 오래 뇌리에 남는 듯합니다.

 

/이슈에디코 김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