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좋아하는 김수경의 영화·씨네필 관련 이모저모 이야기'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주의) 지난달 24일 개봉한 영화 '눈동자'가 전날 기준 143만1216명의 관객 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원작의 결을 살리되,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싸이코' 오마주들로 영화의 큰 비중을 채우며 서사를 쌓았죠. 이 외에도 ▲샤이닝(감독 스탠리 큐브릭) ▲죠스(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셔터(감독 반종 피산다나쿤) ▲링(감독 나카타 히데오) 등 스릴러 명작을 재해석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지난 5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미저리, 인셉션, 황금광시대, 중경삼림 등 무성영화 시대부터 최근작까지 수십 편의 영화를 끌어안은 작품 '러닝타임은 77분'이 생각났습니다. 눈동자가 장르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동일한 장르의 작품을 정교하게 배치했다면, 이 영화는 수십 편의 오마주 그 자체를 통해 '영화를 사랑한다는 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정말 영화를 사랑하는가. 아니면 그렇다고 믿는 것인가. 첫 단편으로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이후 10년째 영화를 못 찍는 감독 '연화(이윤지 扮)'에게 어느 날 첫 단편의 주인공이 정령(홍수현 扮)으로 나타나 "네가 영화를 안 찍어서 내가 늙고 있다"며 영화를 찍을 것을 종용하는데요. 이 장면에서는 정령이 알리스 기-블라쉐 감독의 '양배추 요정'을 언급하며 주방에 놓인 양배추 덕분에 자신이 나올 수 있다고 말합니다. 결국 연화는 사비로 77분짜리 장편을 찍기 위해 자신의 첫 단편영화 주연이었던 '조아영(홍수현 扮)'을 찾아나서죠. 이 과정에서 급기야 '영화의 신(神)'까지 등장하며 '왜 나는 영화를 사랑하게 됐을까'라는 본질적인 물음에 닿게 됩니다. 누워서 휴대폰 속 숏폼을 들여다보는 주인공에게 영화의 신은 네가 매일 자신(영화)을 생각하는지, 날 좋아하는 게 맞는지와 같은 질문을 던지죠. 이는 영화 내내 '영화를 사랑하는 게 아닌, 영화 속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게 아닐까?'라는 연화의 불안감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세상은 네게 영화 보는 것만 허락해." 이 대사는 현실과 마주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던지는 질문처럼 들립니다. 실제 이 장면 이후 영화는 '미저리'를 오마주한 시퀀스로 넘어가는데 "모든 사람이 미워지지 않아?"라는 대사가 겹쳐지면서 그 질문은 더 날카로워집니다. 숏폼이 앗아간 것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연화에게만 향하지 않습니다. 연화가 극 중에서 계속 휴대폰을 보는 장면은 현실의 공백을 견디지 못해 도피처를 찾는 모습으로 보이는데요. 영화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현실과 마주할 시간을 벌고자 영상 속으로 숨어든 셈이죠. 영화 밖 대다수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이 우리에게 잠깐의 침묵이나 공백을 요구할 때 우리는 그 틈을 견디지 못해 반사적으로 휴대전화를 꺼내 들어 알고리즘에 몸을 맡긴 채 짧은 영상 속 자극을 끊임없이 밀어넣죠. 이 과정에서 '본다'는 행위가 '소비한다'는 행위로 바뀐 것이고요. 짧은 영상을 즐겨찾는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입니다. 일례로 영화 한 편을 끝내기 위해서는 쌓이는 인물의 감정 속 무르익은 갈등이 터지는 순간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이와 달리, 숏폼은 기다림 자체를 삭제, 결과만 보여주죠. 그 결과 우리는 감정을 '경험'하는 대신 감정을 '확인'하는 데 익숙해졌습니다. 컨슈머인사이트가 지난해 315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를 보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통해 숏폼 한 편을 보기 시작하면 평균 21분을 시청하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에서는 최근 한 달 내 숏폼을 이용 중인 Z세대 91.9%가 평일과 주말 각각 평균 126.6분, 139분을 숏폼 시청에 소비한다는 보고서도 내놨고요. 숏폼이 집중력에 미치는 연구 결과도 무섭습니다. 호주 그리피스대 심리학과 연구팀이 수행한 연구를 보면 숏폼 소비가 집중력과 충동을 억제하는 능력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이 같은 현상은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에게도 발생한다고 합니다. 숏폼 시대에도 영화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앞서 언급한 수치들을 바라보면 이 작품에서 77분이 굳이 제목에서부터 시간을 못 박아 둔 이유가 다시 보입니다. 이 영화는 그 흐름을 거스르겠다고 선언한 셈이니까요. 정하린 감독은 러닝타임을 제목으로 내세운 이유에 대해 "러닝타임은 77분은 원래 가제였지만, 이보다 더 좋은 게 없었고 영화의 처음과 끝을 얘기해 주는 느낌을 받았다"고 설명했죠. 이처럼 15초, 30초 단위의 숏폼이 대세인 시대에 이 영화는 오히려 제목부터 대놓고 시간을 요구합니다. 영화를 사랑한다면 77분만큼은 기꺼이 함께해 달라고. 또 그는 영화를 한 단어로 '사랑'이라고 정의합니다. 정말이지 영화는 사랑과 많이 닮았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의 대사처럼 영화와 사랑은 정의하기 어려운 데다, 돈과 시간이 많이 들고 누구나 꿈꾸지만 아무나 오래 이어가지 못합니다. 연애를 자주 하는 사람이 계속 연애를 하듯, 영화도 항상 만드는 사람만 만들죠. 러닝타임은 77분은 언뜻 씨네필을 위한 작품처럼 보입니다. 수십 편의 영화가 오마주되면서 영화를 많이 아는 관객일수록 더 많이 웃을 수 있는 장치들로 가득하죠. 하지만 영화가 끝까지 남겨두는 질문은 다소 의외입니다. 무언가를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가. 숏폼은 시간을 잘게 쪼갰고 우리는 그 시간에 익숙해졌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15초가 익숙해진 시대에서 우리가 여전히 무언가를 끝까지 바라보고 사랑할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어쩌면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 앞에 오래 머물러 보라는 제안이었는지도요. /이슈에디코 김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