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여름은 기록으로 남을 참입니다. 폭염은 8월 들어서도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아 입추인 어제도 서울 일부 지역의 기온이 40도를 넘어섰고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이어졌죠. 밤에도 열기가 가시지 않는 열대야가 곳곳에서 계속되는 가운데 온열질환 위험 역시 여전히 높습니다. 지치는 건 사람만이 아니죠. 스스로 그늘을 찾아 자리를 옮길 수 없는 동물원 식구들에게 이런 여름은 더 혹독할 겁니다. 사육사들은 우리마다 얼음을 들이고 물을 뿌리며 얼린 과일을 넣어 주느라 더욱 바쁜 일과를 보내죠. 북극곰 앞에는 얼음덩이, 코끼리 앞에는 언 수박이 놓이고 사막을 고향으로 둔 낙타에게는 연신 물을 끼얹습니다. 사막 더위에도 끄떡없는 낙타조차 올여름만큼은 울고 싶은 심정 아닐까요? 따로 울지 않는 낙타, 정말? 지금으로부터 35년 전 이맘때인 1991년 8월 10일 대한극장에서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영화를 개봉했습니다. 훗날 정치인이 된 김한길 작가가 1989년 발표한 원작을 이석기 감독이 미국 현지에서 옮겼고 이윤택, 김미정, 지상학 씨가 각본을 맡았죠. 영화는 아메리칸드림의 뒷면을 훑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카지노에서 마약과 도박에 찌들어 삶을 탕진하던 전직 고위층 자제 준(손창민 扮)과 그를 사랑하게 된 우희(이혜숙 扮)가 라스베이거스로 향하지만, 준은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서 끝내 스스로를 놓아버리죠. 이역에서 방향을 잃은 삶의 초상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남긴 슬픈 초상은 스크린 밖에도 있었죠. 누가 될까 싶어 언급하기 망설여지는 각본가 지상학 씨의 외동딸 얘기입니다. 영화가 걸리고 이듬해 여름인 1992년 오늘, 서울 송파구 문정동의 한 아파트에서 초등학교 6학년이던 한별 양이 미술학원에 간다며 집을 나섰다가 돌아오지 않았죠. 그 여름의 부재는 34년이 지난 지금도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영화 제목의 낙타는 무리와 떨어져도 소리 내지 않는 짐승, 슬픔을 홀로 삼키는 존재라는 통념을 떠올리게 하죠. 그런데 낙타를 오래 지켜본 이들의 설명은 조금 다릅니다. 몽골 초원에는 전통 현악기 마두금(모린후르)에 얽힌 오랜 풍습이 있는데요. 어미 낙타가 갓 낳은 새끼를 밀어내고 젖을 물리지 않을 때, 그 앞에서 마두금을 켜면서 낮은 노래를 불러 주면 어미가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새끼를 품는답니다. 이 풍습은 유엔 교육·과학·문화 기구인 유네스코가 지난 2015년 무형문화유산 긴급보호목록에 넣은 '새끼 낙타를 위한 달래기 의식(Ботго авахуулах зан үйл)'이죠. 2003년에는 이 풍경을 담은 독일의 다큐멘터리 영화 '낙타의 눈물'이 제작돼 세계의 눈길을 끌기도 했고요. 낙타는 새끼를 잃은 자리를 잊지 않는다는 구전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낙타가 따로 울지 않는다는 말은 울음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언제나 슬픔과 함께 해서 눈물을 안으로 삼키고 있다는 의미겠죠. 죽음에는 끝이 있지만… 끝이 아닌 빈자리 아주 멍청한 비교를 하자면 실종이 죽음보다 모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일단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죽음은 그 자체의 매듭이 있습니다. 슬퍼할 대상과 슬픔의 시작점이 정해지고, 남은 이들은 그 자리에서부터 더디게나마 걸어 나오죠. 그러나 실종에는 그 매듭이 없습니다. 떠난 것도 머문 것도 아닌 사람을 보낼 수도 붙잡을 수도 없죠. 빈방을 치우면 포기가 되고, 그대로 두면 매일이 형벌과도 같은 일상… 지 씨는 그 감당할 수 없는 시간을 자기 방식으로 붙들었습니다. 딸이 사라지고 두 해 뒤, 그는 '한별이의 빈방'이라는 제목의 드라마를 직접 썼습니다. 평생 남의 얘기를 지은 각본가가 이번엔 자기 집 가장 깊은 곳의 슬픔을 원고지에 옮긴 거죠. 한별 양은 1980년생입니다. 어디선가 살아있다면 올해 마흔다섯이 됩니다. 실종은 이렇게 슬픔과 희망을 같은 저울에 매단 채 사랑하는 사람을 붙들어 둡니다. 항상 슬픈 낙타는 따로 울지 않습니다. 낙타에게 사막이 주는 고통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삶 자체인 만큼 슬플 때 따로 멈춰 서서 울 필요조차 없으니까요. 이미 젖은 눈으로 자기 몫의 인생을 그냥 살아가죠. 34년 전 여름에 멈춘 한 아버지의 시간도 그렇게 흘렀을 겁니다. 며칠 뒤면 밤하늘에 페르세우스자리 유성우가 쏟아집니다. 8월 12일에서 13일로 넘어가는 밤이 절정으로, 올해는 달빛마저 옅어 별똥별을 세기 좋다고 하죠. 그 짧은 빛줄기에 저마다의 소원을 얹는 이들이 올여름도 밤을 지킬 겁니다. 무수한 소원 가운데 하나쯤은, 34년 전 여름에 진 별 하나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기를. 한별, 이름부터 별이었던 그 아이가 어느 밤 아버지의 빈방에 다시 불을 켜기를 바랍니다. /이슈에디코 정금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