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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사이] 영턱스, 타인들이 정으로 엮였을 때…

 

이젠 어른이 다 된 큰 아이가 그나마 세상에서 자유롭던 몇 해 전 중학교 겨울방학 때 잠시 타던 스노보드입니다. 신문지에 싸여 보일러실에 방치된 와중에도 잊히고 싶지 않았다는 듯 제 빛깔을 내는 모습을 보니 공연히 미안한 마음이 드네요.

 

이번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서 국경을 초월해 이목을 모은 여고생 스노보더 최가온 선수가 식지 않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최가온은 부상 악재를 디딘 채 자신의 우상 클로이 김(미국)을 앞에 두고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에서 금메달을 이로 물었죠. 1, 2차 시기에서 잇따라 넘어지며 절망적 상황까지 몰렸지만 마지막 3차 시기에서 90.25점을 뽑아내 88.00점의 클로이 김에 앞서는 역전극을 펼쳤습니다.

 

더욱이 2008년 11월생인 최가온은 클로이 김이 2018년 평창에서 세웠던 하프파이프 최연소 올림픽 금메달 기록(17세 10개월)도 약 7개월 앞당긴 17세 3개월의 나이로 새 역사를 썼고요. 한국 설상 종목 사상 첫 금메달이라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각별합니다.

 

사실 이름만 귀에 익은 스노보드는 동계올림픽 종목 자체로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었죠. 그나마 1996년에 데뷔해 큰 인기를 끌었던 혼성그룹 영턱스클럽(Young Turks Club)의 멤버 송진아가 스노보드 국가대표로 발탁돼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송진아는 지난 2005년 제1회 버즈런배 스노보드 페스티벌 여자부 하프파이프에서 우승한 데 이어 2009년 스노보드 선수권 대회에서 국가대표(프리스타일/하프파이프 계열)로 선발됐었죠. 그러나 세부 세계 랭킹도 찾기 힘들뿐더러 세계대회 입상 기록까지는 남기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영턱스클럽에서 보여주었던 존재감만큼 세계무대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더라면, 최가온이 클로이 김 대신 송진아를 우상으로 여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네요.


정당하지 못했던 젊음의 반란


우리나라의 영턱스클럽이 '정'과 '타인' '아시나요' '못난이 콤플렉스' 등으로 당시 10대들의 우상 H.O.T.와 자웅을 겨뤘다면, 태국에는 엘리트들의 모임인 '영 턱스(Young Turks)'가 있습니다.

 

이들은 태국 육군 사관학교(Chulachomklao Royal Military Academy) 7기 졸업생 중심의 엘리트 장교 그룹으로,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 태국 정치에 깊이 개입하며 혼돈을 유발했죠.

 

영 턱스가 '젊은 개혁파 장교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명칭인 만큼 이들이 주도한 1981년 반란을 'Young Turk Rebellion'이라고도 지칭합니다. 군 내부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정치 개입을 시도했던 영 턱스는 두 차례의 반란을 시도했으나 모두 무위에 그쳤죠.

 

첫 번째는 1981년 4월 1일, 육군 장성 산 지탑티마(San Jitpathima)의 주도로 42개 대대를 동원한 쿠데타였으나, 왕실의 지지를 등에 업은 프렘 틴술라논다(Prem Tinsulanonda) 총리 측의 역쿠데타에 막혔습니다. 

 

1985년 9월 9일에는 영 터크스 계열 핵심 인물인 마눈크리트 룹카촌(Manoonkrit Roopkachorn) 형제가 재차 쿠데타를 시도했지만 동조 세력이 따라붙지 않아 당일 반란에 그치며 세력이 완전히 약화됐고요. 두 사건 모두 국익을 도모하려는 개혁보다 군 내부 권력투쟁에 기인한 쿠데타로 태국 현대사에서 군부 엘리트 사조직의 전형적인 흥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로부터 약 8년 뒤, 우리나라에서도…


1993년 오늘은 1차 하나회 숙청 사건이 일어난 날입니다. 당시 취임 11일째를 맞은 김영삼 대통령이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 모임인 하나회 출신의 김진영 육군참모총장과 서완수 기무사령관을 전격 경질하면서 1차 하나회 숙청이 시작됐죠. 군부 엘리트 사조직 하나회를 제때 걷어내지 못한 결과가 12·12 군사반란이었고 그 고통의 끝에 광주가 있었습니다. 

 

영 턱스의 악몽에 허덕인 태국은 2014년까지 쿠데타의 악순환을 끊지 못했죠. 타산지석의 심의(深意)를 가벼이 여겨서일까요? 32년 전 김영삼의 전격적인 숙군(肅軍)에도 다시 우리나라에서 어이없이 군화 소리가 울렸습니다. 당연하게도 법원은 12·3 비상계엄을 '위로부터의 내란' '친위 쿠데타'로 규정하며 1심은 내란 우두머리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죠.

 

김영삼의 용단이 32년 전,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원동력 중 하나가 됐지만 시간이 흐른 까닭인지 파헤치지 않은 탓인지 검찰의 기수 결속, 관료 사회의 보이지 않는 카르텔, 정치권의 계파 사조직 등 '하나회스러운' 적폐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잔존합니다.

 

태국의 영 턱스가 쿠데타 실패로 자멸했다면 하나회는 문민정부의 칼날 아래 해체되며 대한민국 민주주의 정립의 역사에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거름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회로 대변할 수 있는 적폐는 12·3 비상계엄의 그림자와도 맞닿아 여전히 과거처럼 무겁게 자리 잡고 있죠.

 

긍정적인 변화를 열망해야 하는 젊은이들의 사고가 일부 기성세대처럼 기득권 유지에 매몰된다면 한순간 쥐고 있는 젊음이 너무 애처롭지 않나요?

 

/이슈에디코 정금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