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금요일만이 줄 수 있는 여유를 최대한 만끽하기 위해 OTT(Over-the-top,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업체 한 곳을 골라 한석규, 전도연 주연의 영화 '접속'을 봤습니다.
1990년대, PC통신 정서가 가득한 영화 전체는 서툴러서 더욱 감성적이던 당시 청춘의 단면이 담겨 알고도 빠져드는 설렘을 느끼기에 충분했죠.
그때 우리나라 PC통신은 모뎀과 전화선을 통해 중앙 서버와 연결한 PC(Personal Computer, 개인용 컴퓨터)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익명의 개인들과 소통했습니다. 촬영한 피사체는 버릴까 말까 망설이다가 보관하기로 결정한 당시 PC통신 서비스업체 중 하나였던 유니텔의 설치 CD입니다.
업체들의 서비스가 대부분 문자 중심이었던지라 게시판, 채팅, 전자우편,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꾸려졌죠. 흔히 동호회라 부르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익명성을 내세워 자유롭게 정보와 자료를 공유하고 얘기를 나누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상상도 못할 느린 속도와 비싼 이용료(전화요금), 동영상은커녕 이미지도 보기 힘든 문자 위주 서비스 등이 단점이었고요.
1994년 초고속 인터넷 상용화와 함께 쇠락을 시작한 PC통신 문화는 결국 여러 온라인 콘텐츠 문화의 시초가 된 채 사라졌습니다. '접속'의 주인공들인 라디오 PD 동현(한석규 扮)과 홈쇼핑 판매원 수현(전도연 扮)은 한 곡의 음악을 계기로 유니텔 채팅방에서 만나게 돼 결국 서로를 알아보고 행복한 결말을 맺지만요.
두 사람을 이어주는 곡은 1964년 미국 뉴욕에서 결성한 록 밴드 'Velvet Underground(벨벳 언더그라운드)'가 1969년 발매한 정규 3집에 실린 'Pale Blue Eyes(창백한 푸른 눈동자)'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정작 널리 알려진 노래는 두 사람이 실제 마주하게 되는 마지막 장면에서 흐른 미국 재즈 가수 'Sarah Vaughan(사라 본)'의 'A Lover’s Concerto(연인의 협주곡)'로 하이라이트를 더욱 밝히는 상징적인 역할을 하죠.
이 곡은 1965년, 역시 미국의 여성 팝그룹 'the Toys(더 토이즈)'가 '미뉴에트 G장조'를 팝 발라드 형식으로 각색해 처음 발표했습니다. 이후 사라 본 등 많은 뮤지션들이 여러 버전으로 리메이크하면서 더욱 유명세를 떨치게 됐고요.
바로크 시대 독일의 오르간 연주자 겸 작곡가 Christian Petzold(크리스티안 페촐트)가 작곡한 것으로 알려진 미뉴에트 G장조(Minuet in G major, BWV Anh. 114)는 1725년 Johann Sebastian Bach(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두 번째 아내 안나 막달레나에게 헌정한 음악노트에 수록됐습니다.
당시 원본에는 작곡자명이 표기되지 않아 대중은 한동안 바흐의 작품으로 알았지만, 20세기 중반 음악학자들은 연구를 통해 실제 작곡자가 페촐트라는 사실을 밝혔죠. 그럼에도 여전히 ‘바흐의 미뉴에트’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처럼 오해가 퍼져 오리지널을 그림자로 덮은 사례는 더 찾을 수 있는데요.
'알비노니의 아다지오(Adagio in G minor)'는 1950년대 이탈리아 음악학자 Rem Giazotto(레모 지아자토)가 1945년경 독일 드레스덴 도서관에서 찾은 바로크 시대 전설적 작곡가 Tomaso Albinoni(토마소 알비노니)의 바소 콘티누오(베이스라인) 등의 조각 악보를 바탕으로 사실상 새롭게 작곡한 곡입니다.
곡을 내놓고 출판하며 알비노니의 음악을 바탕 삼아 재구성했다는 문구를 넣었는데 사람들이 멋대로 오해한 거라고 하죠.
여기 더해 Robert Schumann(로베르트 슈만)의 대표곡 중 하나인 'Carnaval(카니발)' 가운데 일부 악장이 Franz Liszt(프란츠 리스트)의 곡으로 오인된 채 무분별하게 퍼졌던 전례도 있습니다.
1990년대 온라인에서 MIDI(Musical Instrument Digital Interface) 파일 유통 시 어이없이 리스트 명의로 잘못된 태그가 붙었던 거라고 하네요.
아울러 'G선상의 아리아(Air on the G String)'는 19세기 독일 바이올리니스트 August Wilhelmj(아우구스트 빌헬미)가 바이올린의 G현 하나로만 연주 가능하게 편곡하면서 붙인 곡명입니다.
원곡은 바흐의 '칸타타 BWV 1068' 제2악장 'Air'로 바이올린과 여러 악기가 협주하는 오케스트라용 악장이고요. 편곡명이 원곡명보다 더 많이 불리는 드문 경우이기도 하죠.
이와 함께 '토카타와 푸가 D단조(BWV 565)'는 바흐의 작품으로 분류되나 화성 전개, 대위법적 구조 등에서 그의 방식과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또한 이 작품의 최초 필사본은 그의 자필이 아닌 바흐 사후에 만들어진 Johannes Ringk(요하네스 링크)의 필사본이 가장 오래된 자료라서 의문부호가 더욱 커졌죠.
이런 이유로 일부 학자들은 작곡자 미상이거나 바흐의 제자 Johann Ludwig Krebs(요한 루트비히 크렙스)의 곡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했지만 지금도 바흐의 작품이라는 견해에 무게가 실립니다.
쓴 대로, 만든 대로 전하고픈 원작자의 외침보다 본 대로, 들은 대로 퍼뜨리는 대중의 한마디가 더 무거운 세상이죠. 느리면 느린 대로 고지식하게 소통하던 한때의 과거가 그리워지는 요즘입니다.
/이슈에디코 정금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