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라 짬을 내 에어컨 필터를 세척하고 서늘한 곳에서 한나절 정도 건조한 뒤 작동시켰습니다. 습도가 워낙 높아 필터가 충분히 말랐을지 걱정도 됐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일단 시원하니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네요. 혼잣말로도 '시도 때도 없이 덥다'는 얘기를 읊조리게 되는 시기입니다.
갑자기 궁금증이 생기네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위와 추위 중 어느 것을 더 꺼릴까요? 지난 1998년 캐나다 맥길 대학교(McGill University) 치의학과, 생리학과, 마취학과의 공동 연구 결과를 보면 사람들은 더위보다 추위를 더 불편해한다고 합니다.
핵심만 추리자면, 사람들은 서늘한 공간에서 더 날카로운 모습을 보였다고 하네요. 추운 공간에 있으면 마음마저 얼어붙는 걸까요? 아, 그러고 보니 에어컨 온도도 너무 낮추지 말아야겠습니다. 냉방병도 조심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정확히 짚자면 냉방병은 질병을 지칭하는 의학적 진단명이 아니라 장시간 에어컨 바람에 노출될 경우 발생하는 자율신경계 이상, 면역 저하, 근육통, 복통 등 유사 증상의 여러 질환군을 통칭하는 증후군의 일종이죠.
이렇게 보니 에어컨과 관련한 이슈도 참 많습니다. 2022년 잡코리아와 알바몬의 공동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름철 사무실 내 여직원 불만 1위는 '에어컨 온도가 너무 낮다'였죠.
이는 남성보다 기초대사량(BMR)이 낮은 여성의 경우, 같은 실내온도라도 더 춥게 느끼는 경향이 있다는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대의 2015년 연구에서도 파악할 수 있고요.
그리고 에어컨 냉방기 소음 탓에 위험 경고를 놓친 사례들도 꽤 흔합니다. 냉난방공조(HVAC) 업계 블로그의 사고 사례 게시글을 보면 공장이나 백화점 등에서 냉방기, 환풍기 소음으로 작동 기계 경고음을 듣지 못하거나 소방벨이 울렸지만 에어컨 소리인 줄 알고 무시하다가 화재가 발생하기도 했다네요.
30년 전에도 이랬을까요? 1995년 오늘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발생한 날입니다. 건물 붕괴와 함께 생명이 무너진 502명은 고장 난 에어컨의 시원함 대신 죽음의 냉기를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사고 며칠 전부터 직원과 손님들은 소리와 진동, 균열을 수차례 느꼈다고 하죠. 문제를 제기한 직원은 물론 신고도 있었지만 에어컨 작동 체계 중 옥상 냉각탑 진동이니 크게 신경 쓸 것 없다는 경영진의 응대가 뒤따랐다니 기가 차기만 합니다.
애초에 부실공사도 부실공사지만 인근 아파트에서 에어컨 소음 민원을 제기하자 에어컨 냉각탑을 크레인이 아니라 롤러로 옮기며 붕괴를 앞당기기도 했지만요.
무시할 수 없는 신호들이 있습니다. 구조의 한계를 알리던 삼풍백화점의 소음과 진동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결과는 너무나도 참혹했죠. 그날의 소음과 진동은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끊임없이 다른 형태로 경보를 울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슈에디코 전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