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다시 돌아온 '미쟝센단편영화제'가 지난 16일부터 이어진 닷새간의 일정을 마쳤는데요.
21일 업계에 따르면 제21회 미쟝센단편영화제는 전날 오후 네이버1784에서 열린 폐막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지난 2002년 등장한 국내 최대 단편영화제로, 2021년 운영 어려움의 이유 탓에 중단됐다가 장재현, 한준희, 윤가은, 이상근, 이옥섭, 조성희 등 여러 영화감독이 4년 만에 집행부를 구성해 부활했습니다.
올해 영화제에서는 역대 최다인 1891편이 출품돼 이 가운데 심사를 통과한 65편을 5일 동안 상영했는데요. 이 밖에도 다채로운 행사가 열렸는데, 일례로 지난 18일 열린 '창작자 토크'는 예매 당일 매진될 만큼 인기를 끌었답니다. 특별상영 섹션이었던 '극장의 시간들' 상영 후 영화 '엑시트'를 연출한 이상근 감독 진행으로 이종필, 윤가은, 장건재 감독이 참여한 프로그램이었고요.
'극장의 시간들'은 25주년을 맞은 예술영화관 씨네큐브를 기념해 태광 티브로드에서 준비한 작품으로 이종필 감독 '침팬지', 윤가은 감독 '자연스럽게', 장건재 감독 '영화의 시간' 이렇게 세 개의 단편을 묶은 엔솔로지 영화입니다.
씨네큐브는 지난 2000년 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개관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예술영화관으로, 광화문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만큼 서울 시내 대표 명소 중 한 곳이죠.
이날 저도 이 영화를 볼 수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우리 모두 저마다 하나씩 갖고 있던 영화관의 추억을 되새겨주는 기분 좋은 영화더라고요. 이 작품은 다음 달 27일부터 12월 5일까지 열리는 제51회 서울독립영화제나 내년 상반기 여러 극장에서 관람 가능하니 한 번쯤 보는 걸 추천합니다.
영화 상영 이후 이어진 창작자 토크에서는 이들 감독은 각자 가졌던 극장의 추억들을 공유했는데요. 세 감독 모두 돈 없이 감독에 대한 꿈을 그리던 시절 찾았던 영화관을 떠올리더라고요.
이종필 감독의 경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입시에 실패했던 당시 서울 종로에 있던 영화관 '씨네코아'에서 '황혼에서 새벽까지'를 포함해 하루 종일 상영작을 봤던 기억을 가장 먼저 되새겼습니다.
윤가은 감독 역시 방황하던 20대 시절 찾던 '스타식스 정동(지금 서울아트시네마)'을 언급했는데요. 학생이라 돈이 부족했던 당시 출근하다시피 아침에 이곳을 찾아 오랫동안 영화를 보고 또 봤던 추억이 있다고 합니다. 장건재 감독도 극장 안에서 담배 피우던 시절에 종로 파고다극장이나 시네마테크에서 저렴하게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하고요.
이 세 감독이 말한 영화관들은 현재는 볼 수 없는 추억의 장소인데요. 씨네코아는 지난 1997년 종로구에서 4개 관을 갖추고 관람객을 맞이하던 영화관으로 지난 2006년 6월 영업을 종료한 곳입니다.
스타식스 정동은 2000년 시작한 뒤 2007년 경향신문이 인수, 시네마정동으로 영업을 이어간 복합멀티플렉스였지만 지난 2010년 10월 폐관했습니다. 1960년 낙원극장이라는 간판을 달고 문을 열었다가 1966년 간판을 바꾼 파고다극장은 1989년 기형도 시인이 숨진 곳으로 알려졌는데 2002년 긴 역사를 마감했죠.
이들 영화관에서는 대형 멀티플렉스처럼 상업영화도 내걸었지만, 예술영화나 고전이나 독립영화도 상영하며 씨네필들의 발길을 이끌었는데요. 현재 서울에서 이들 영화관을 대체할 수 있는 곳들로는 앞서 언급한 씨네큐브 외에도 아트나인, 에무시네마, 아트하우스 모모, 아리랑시네센터 등이 있습니다.
대형 멀티플렉스에서도 이런 영화관을 제공하는데요. 롯데시네마 '아르떼', 메가박스 '필름소사이어티관', CGV '아트하우스'가 바로 그 예인데, CGV 아트하우스는 아르떼와 필름소사이어티관에 비해 열리는 진행전이 많습니다. 이 중에서도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는 국내 최초 영화 전문 도서관과 아트하우스를 갖춘 문화공간이죠. 여러 평론가의 게스트와의 대화(GV)나 영화행사가 자주 열려 씨네필들에게 '명씨네'란 애칭도 받았고요.
이런 와중에 최근 명씨네의 영업 종료 소식을 접했습니다. 이 같은 소식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상영 기회가 적은 영화나 예술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던 명씨네와 추억을 하나둘씩 떠올리며 아쉬움을 전하는 글들이 많이 보입니다.
명씨네 폐점에 대해 CGV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이어진 어려움 속에서 복합적인 요인을 고려했다고 설명하네요. 이곳에 보관 중인 영화 서적 1만여 권의 향방은 아직 논의 중이라고 합니다. 또 '한국영화인 헌전 프로젝트'의 일환 삼아 2018년 개관한 '김기영관'은 타 지점으로 이동할 계획이고요.
이처럼 모두의 추억이 담긴 영화관은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지만, 동시에 자신의 이야기를 스크린을 통해 표출하려는 영화인과 이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미쟝센단편영화제에는 다시 불이 켜졌습니다. 사라진 극장들의 빈자리를 그들이 만든 영화가 채워가듯, 공간은 사라져도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과 얘기는 여전히 남아있다는 방증인 셈이죠.
날이 상당히 쌀쌀해졌는데요. 이런 날 몸을 녹일 수 있는 아늑한 극장에 앉아 따뜻한 영화 한 편은 어떨까요? 어쩌면 미래의 어느 날, 오늘 본 영화 그리고 영화관의 추억이 당신의 하루를 평안과 위로로 감싸주는 안식처가 될지도 모릅니다.
/이슈에디코 김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