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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덕지주 무작위 앨범 소개] Cult of Fire 'Čtvrtá symfonie ohně'

[악덕 지주(극히 관적인) 무작위 음반 소개] 열여덟 번째는 2010년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음산한 기운을 퍼뜨리기 시작한 블랙·아토모스페릭 블랙 메탈 밴드 Cult of Fire(컬트 오브 파이어)의 'Čtvrtá symfonie ohně'(츠프트르타 심포니에 오흐네: 네 번째 불의 교향곡)'.

 

하나의 콘셉트에 머무르지 않고 주요 앨범마다 검은 변화를 추구하는 컬트 오브 파이어는 종교와 관념을 초월한 의식의 기저를 표현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밴드입니다.

 

블래스트 비트와 트레몰로 리프를 기본으로 깔고 동서양이 혼합된 멜로디 라인을 끌어올리는 이들의 음악은 블랙 장르로도 얼마든지 클래식한 예술성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죠. 현대 블랙 메탈 씬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고요.

 

초기 블랙 메탈에 키보드와 시타르 등 동양 악기를 엮어 서사적이고 웅장한 분위기를 극대화한 이들의 음악은 밴드 결성 당시 밀교(esotericism)에 초점을 맞추다가 2013년 정규 2집 이후로는 힌두교, 베다 의식, 불교로 주제를 돌렸습니다.

 

기타와 같은 인도의 발현악기인 시타르와 탬버라, 젬베 등 타악기에 동양적 찬트(Chant, 단순하고 반복적인 멜로디나 리듬이 있는 노래, 구호)를 곡에 넣어 신비롭고 장엄한 분위기를 만들며 종교 의식과도 같은 음악적 연출을 완성하죠. 

 

밴드의 창단 멤버이자 중심축인 인퍼널 블라드(Infernal Vlad·Vladimír Pavelka)가 새 앨범 작업 시마다 인도를 찾아 신들에게 공물을 바치고 명상하며 영감을 얻는다는 얘기는 꽤 널리 알려졌습니다.

 

인퍼널 블라드가 드럼을 제외한 나머지 악기 연주와 작곡을 담당하고 창단 멤버지만 현재는 볼 수 없는 보컬리스트 데빌리시(Devilish·Vojtěch Holub), 드러머 톰 코로너(Tom Coroner) 조합으로 2014년 12월 8일 선보인 'Čtvrtá symfonie ohně'.

 

이 앨범은 인도 장례의식과 칼리 여신을 다루며 힌두교 콘셉트를 확립한 2013년 정규 2집 'मृत्यु का तापसी अनुध्यान(므리튜 카 타파시 아누드얀: 죽음의 금욕적 명상)' 발매 후 1년이 지나 내놓은 EP(Extended Play, 싱글과 정규 앨범 중간 정도 수의 곡이 수록된 미니 앨범)입니다.

 

기존 콘셉트에서 잠시 벗어나 밴드의 모국인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문화유산에 경의를 표하는 특별한 프로젝트로 체코 국민 악파의 선구자인 베드르지흐 스메타나(Bedřich Smetana)와 블타바강, 바흐강을 기리죠. 앨범 표지 역시 스메타나의 초상화로 보컬이 없는 단 두 곡의 연주곡을 수록했습니다.

 

공격적인 기타 리프에도 키보드를 적절하게 활용하면 멜로디 라인에 어떤 느낌을 줄 수 있는지 알려주는 총 재생시간 12분53초로 실린 두 곡 살펴보면서 이번 편 마무리하겠습니다.

 

 

첫 번째 트랙 '블타바(Vltava)'는 스메타나의 교향시 연작 '나의 조국(Má Vlast)' 중 두 번째이자 가장 유명한 동명의 곡을 블랙 메탈로 재해석했죠. 스메타나는 프라하를 가로질러 흐르는 상징적인 볼타바강이 흐르는 모습과 주변 풍경을 음악으로 묘사했는데 컬트 오브 파이어 또한 원곡의 장엄하면서도 승리감 넘치는 이미지를 충실하게 살리려고 노력했습니다.

 

당연하게도 장르적 전환은 있지만 이질감은 느끼기 힘들고요. 블래스트 비트와 디스토션이 터지는 사운드로 변하는 와중에도 기타 멜로디가 현란하게 사운드를 이끌며 서사적 분위기를 끝까지 지킵니다.

 

다음 곡 '바흐(Váh)'는 슬로바키아를 흐르는 바흐강을 주제 삼은 밴드 자작곡으로 블타바보다 더 내성적인 우울함을 느끼게 하죠. 강물이 흐르는 소리와 서정적인 기타 리프는 강의 장엄함과 평화로움은 물론, 영적인 천상의 분위기까지 선사합니다.

 

팀파니와 금관악기를 연상시키는 도입부에 여러 멜로디의 결합과 건반악기의 활용으로 강물의 역동성을 살렸고요. 컬트 오브 파이어 특유의 블래스트 비트와 트레몰로 피킹이 이질감은커녕 더욱 환상적인 하모니를 꾸밉니다.

 

기존 헤비니스에 귀가 멍했던 메탈헤드라면 블랙의 격렬함과 에픽한 웅장함을 합친 이 앨범으로 메탈이 구현할 수 있는 숭고하고 신비로운 예술성을 경험하며 소음의 과잉이 괴롭힌 청각에 사색적인 휴식을 선사할 수 있을 겁니다.

 

  Vltava                     5:59

 

  Vàh                      6:54

 

 

 

 

 

 

 

 

/이슈에디코 정금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