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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영화제 : 이종필의 음악]② '불을 지펴라'부터 '파반느'까지

 

올해 제천음악영화제에 이종필 감독은 '탈주'의 연출자 자격으로 참석했지만, 이전부터 그는 음악과 영화를 매우 사랑해 대학 재학 때부터 연출 시절까지 제천을 줄곧 찾았답니다.

 

이런 그의 애정은 데뷔작 '불을 지펴라'로 시작해 지난 2014년 '전국노래자랑'을 내세워 상업영화에 발을 딛게 도와줬죠. 이후 국내 최초 다큐멘터리 클래식 음악영화인 '앙상블'과 조선 후기 여류 판소리꾼의 일화를 그린 '도리화가' 등 여러 음악영화를 만들게 됐습니다.

 

Q. 데뷔작부터 '전국노래자랑' '도리화가'와 같은 음악이 주된 영화와 '탈주'와 '박하경 여행기'처럼 음악적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까지 이종필 필모그래피에서 음악은 캐릭터의 감정선을 잘 보여주는 언어로 자리 잡은 느낌일 뿐더러 주무기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런 접근과 연출은 어떻게 시작됐는지?

 

A. 특별한 계기는 없지만, 음악과 영화를 많이 좋아한다. 그래서 제전음악영화제도 학생 때부터 자주 왔는데 한 번은 김홍중 감독의 '정글 스토리'를 보려고 찾은 적도 있다.

 

기사 속 막간 정보: 정글 스토리(1996년 作)

 

록커의 꿈을 안고 상경한 도현(윤도현 扮)은 낙원상가에 취직, 이곳에서 나이트클럽 밴드에서 일하는 록밴드 '이지 라이더' 멤버 대영과 친분을 쌓으며 서울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클럽에서 공연을 하던 도현을 유심히 본 지우(김창완 扮)가 매니저가 되겠다는 제안을 하자 도현은 곧 있을 라이브 콘서트 멤버 모집을 위해 고향에 내려간다. 지우의 지휘 아래 도현 밴드는 비닐 하우스에서 맹연습을 하고 도현의 라이브 콘서트가 시작된다. 이는 우리나라 현대음악의 시초로 꼽힌다.

 

아무튼 예전부터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면 꼭 OST를 들으며 집에 오곤 했는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나도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키우게 됐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화 시나리오를 구상하거나 실제 연출할 때 이런 음악이 나오고 이런 식의 리듬감이 형성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Q. 언제부터, 어떤 음악을 계기로 이렇게 음악을 사랑하게 됐는지에 대한 당신의 일대기도 궁금하다.

 

A. 내 기억에는 17살부터였다. 중학교 때도 영화 보고 음악 듣는 것을 좋아했지만, 본격적으로 빠지게 된 것은 '도어스(The Doors)'라는 미국 록 밴드 앨범을 들었을 때다. 우연히 들었는데, 음악이나 멜로디 없이 어떤 사운드만으로 한 부분을 채우는 등 앨범이 하나의 서사를 갖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기사 속 막간 정보: 도어스

 

도어스는 1960년대 미국 록 밴드로 베이시스트 없이 키보드 베이스를 연주해 다소 독특한 사운드를 냈으며 이를 바탕 삼아 사이키델릭한 록, 블루스 등 장르가 어울린다는 특징을 지녔다.

 

특히 밴드 핵심인 보컬 '짐 모리슨'은 가사를 시처럼 쓰기도 하지만, 무대 퍼포먼스가 반항적이고도 철학적이라 당시 한 때 젊은이들의 아이콘으로 불리기도. 1970년대 초반 20대에 요절해서 더 이름을 알리기도. 대표곡은 'Light My Fire'와 'Riders on the Storm'.

 

Q. 현재 즐겨 듣는 음악 장르나 아티스트가 있는지 궁금하다. 또 그 취향이 작품에 반영된 부분이 있다면?

 

A. 이제는 록, 재즈 등 장르불문으로 다 좋아한다. 또 영화를 찍을 때마다 당시 취향이 반영된 사례는 많은데, 대표적인 예가 내 첫 단편작인 '불을 지펴라'다.

 

기사 속 막간 정보: 이종필 감독 데뷔작 '불을 지펴라'

 

 

2007년 나온 이 작품은 북한에서 록 음악(특히 짐 모리슨)을 동경한 리경록은 어느 날 집에서 나와 중국 주재 한국 대사관의 담을 넘어 대한민국에 온다. 이후 탈북자 교육기관에서 록음악을 하고 싶다는 의견을 내비쳤지만, 목공을 권유받고 마석 가구공단의 노동자가 된다. 

 

그 영화를 연출할 때 10대 때 즐겨듣던 음악을 차용했다. 이후에도 어떤 영화를 할 때마다 그 영화에 관련된 음악들이 떠오른다.

 

예를 들면 탈주는 에너지 넘치는 빠른 작품이다 보니 람슈타인(Rammstein)이나 뮤즈(Muse), 마를린 맨슨(Marilyn Manson) 등을 자주 들으며 어떤 템포로 작품을 끌고 가야 하는지 자주 생각했다. 다른 작품 때도 매번 음악을 들으며 연출을 구상한다.

 

기사 속 막간 정보: 람슈타인

 

 

독일 인더스트리얼 메탈 밴드로 '노이에 도이체 헤르테(Neue Deutsche Härte, 새로운 독일의 강인함)'라는 장르를 발전시킨 람슈타인. 보컬 '틸 린데만'의 저음과 강렬한 독일어 발음이 해당 장르 발전에 큰 공이 됐다.

 

이 밴드는 라이브 퍼포먼스가 매우 유명. 틸 린데만은 화염방사기 자격증도 소유해 화염방사기를 활용한 무대를 연출하기도, 대표곡은 'Du hast' 'Sonne' 'Feuer frei!'. (팁 작성 기자의 추천 곡은 'Mein Herz brennt'.)

 

기사 속 막간 정보: 뮤즈

 

이들은 영국 밴드로 얼터너티브, 프로그레시브, 일렉트로닉 록 등 장르 구분하지 않고 여러 종류의 락 음악을 선보이기로 유명하다. 특히 보컬이자 기타리스트, 키보디스트인 '매튜 벨라미'가 가장 눈에 띄는 멤버로 꼽힌다.

 

처음 이 밴드가 등장했을 때는 라디오헤드 표절그룹이라며 비난을 샀는데, 2집부터 흥행에 성공, 전 세계적인 그룹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음역대가 매우 넓은 매튜 벨라미 외에도 모든 멤버들 역시 라이브가 훌륭하다는 찬사를 받기도. 

 

대표곡은 SKY 휴대폰 광고에도 나왔던 'Time is Running Out'과 'Hysteria' 'Starlight'. (팁 작성 기자의 추천 곡은 'Stockholm Syndrome' 'Plug In Baby'.)

 

기사 속 막간 정보: 마릴린 맨슨

 

인더스트리얼 메탈에 속하면서 글램 록, 쇼크 록을 결합한 미국 가수. 음악도 음악인데 비주얼로도 유명해 노래는 몰라도 앨범 커버는 대부분 알 정도다.

 

마릴린 맨슨이라는 이름 역시 아름다움과 추악함을 동시에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세계적인 배우 '마릴린 먼로'에 살인마 '찰스 맨슨'을 합친 가명이다.

 

다만 퍼포먼스가 기괴하고 폭행 관련 소송도 걸린 적 있어 세간의 비난을 받기도 한다. 대표곡은 'Rock Is Dead' 'Sweet Dreams' 'The Beautiful People'.


Q. 여러 음악 작업을 했는데, 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음악은?

 

A. 박하경 여행기에서 '워킹 더 포레스트'라는 곡이 있다. 1화 에피소드에서 마음을 비우고자 해남의 한 절로 템플스테이를 떠난 박하경(이나영 扮)이 묵언수행 중인 보살 정아(선우정아 扮)와 숲길을 거닐 때 이 음악이 나온다.

 

 

나는 이 곡을 '치트키' 음악이라고 부르는데, 곡이 나오면 모든 감정이 무장 해제되는 느낌을 받기 때문. 차기작 파반느에서는 이 곡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음악감독이 박하경 여행기와 같은 이민휘 음악감독이이서 가이드 음악으로 계속 이 곡을 깔아놓고 편집하곤 했다.

 

또 7화가 제주도 빵 편에서는 내가 그냥 "빵빵빵빵"이러는 음악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민휘 감독한테 말했는데, 그가 모차르트의 곡을 빵으로 바꿔서 작업해 좋은 결과물을 주기도 했다.

 

Q. 제천음악영화제에서 인터뷰 중인데 때마침 차기작 '파반느' 역시 모리스 라벨의 피아노곡과 동명의 박민규 작가 소설이 원작인 작품이다. 이 작품을 연출하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와 작품을 소개하자면.

 

A. 파반느는 지난 2009년 발표된 박민규 작가의 동명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원작인 정통 멜로 영화다. 나는 박민규 작가 소설을 좋아해서 매번 그의 작품을 읽었는데, 이 작품은 특히 내가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친근했다.

 

그러던 중 나한테 이 영화를 연출할 기회가 주어져서 오랫동안 시나리오를 작성했으며 현재 촬영을 마치고 후반 작업도 거의 다 끝난 상태다.

 

파반느는 제목 그대로 모리스 라벨의 죽은 악녀를 위한 파반느가 중요하게 사용되는 음악이며 이 외 여러 클래식 음악이 곳곳에 배치됐다. 또 옛 가요와 록 음악도 조금씩 나온다.

 

Q. 곧 있을 부산국제영화제(부국제)에서 공개되는 단편 '침팬지'에서는 어떤 음악적 배치를 고민했나?

 

A. 예술영화관 '씨네큐브' 25주년 기념 프로젝트 '극장의 시간들' 중에서 나는 '침팬지'라는 연출작을 내놨다.

 

기사 속 막간 정보: 씨네큐브

 

서울 종로구 흥국생명빌딩 지하 2층에 위치한 이 영화관은 지난 2000년 개관해 현재까지 가장 오래된 예술영화관.

 

원래 수입배급사 백두대간이 운영했지만, 지난 2010년부터 태광그룹 미디어 계열사 티캐스트가 이를 맡아 우리나라 영화문화의 질적 성장과 다양성 증진을 목표로 한다. 상영관은 두 개며 1관은 293석, 2관은 72석.

 

25주년 기념작 극장의 시간들은 티캐스트가 처음 제작한 엔솔로지 작품이며 이종필 감독 '침팬지'와 '우리들' '우리집'을 연출한 윤가은 감독의 연출작 '자연스럽게'가 함께 상영한다.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2000년도 대학교 재학 당시 나는 어떤 침팬지를 알게 된 경험이 있다. 더 많은 얘기는 스포일러라 할 수 없지만, 이 침팬지 얘기를 언제든 어떤 방식으로든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품고 있는 상태에서 이번 제안을 받아 여기서 이를 풀어내게 됐다.

 

 

이 단편은 2000년과 2025년이 배경인데, 2000년도에서는 어떤 무언가를 꿈꾸는 시절을 담다 보니 여러 음악을 구성했다. 그러나 2025년 현재는 도회적이고 팍팍한 현실을 그려야 해 음악이 잘 나오지 않는다.

 

Q. 앞으로 함께 작업하고 싶은 뮤지션이 있다면?

 

A. 아예 없다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사심으로 접근해 작업하지 않으려고 한다. 다만 무언갈 하고 있을 때 종종 마주치곤 한다. 예를 들면 뭐 박하경 이야기에는 음악가 선우정아가 나오는데, 처음부터 이를 의도하지 않았다. 그저 이 장면에서 자신만의 세계가 있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속내를 쉽게 알 수는 없는 사람이 누가 있으면 좋을까? 고심하고 논의한 결과 출연 제의를 부탁하게 된 것이다.

사실 좋아하는 음악가를 만나고 싶은 꿈은 이미 이뤘다. 나는 에이치투오(H2O)나 시나위, 휘파람 별 등 달파란 감독의 모든 음악을 좋아하고 앨범을 구매한 팬인데, 삼진그룹 영어토익반과 탈주 작업을 같이했지 않았는가.

 

보통 연출감독이 음악감독 작업실에 음악을 확인하러 가는데 나는 항상 "내 생각대로 음악이 나왔을까? 아니면 어떡하지?" 이런 근심을 품고 간다. 달파란 감독 작업실도 그런 마음을 갖고 갔는데, 곡을 듣자마자 "내가 연출한 영화를 위해 이 좋은 음악을 만들어줬다"는 감격만 하게 되더라. 또 그가 만든 음악을 내가 제일 먼저 듣고 있다는 기쁨도 만끽했다.

 

Q. 정답이 없는 질문이긴 한데 음악과 영화, 두 예술의 경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 그런 나만의 철학을 앞으로 작품에 어떤 식으로 담아내고 싶은지 궁금하다.

 

A.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항상 이 영화가 많은 사람 마음 깊숙한 곳에 다가가길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다. 이 목표를 위해서는 스토리도 중요하지만, 가장 크게 돕는 것은 음악인 것 같다.

 

단순하게 보면 음악은 보이지 않는 것, 영화는 보이는 것이다. 음악은 보이지 않아서 무한한데 그것을 영화라는 매체에 배치해 보여줄 때, 그것만으로도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시너지가 매우 크다.

 

그렇기에 영화에서 음악은 세심하게 써야 한다. 과하게 쓰거나 매우 동떨어져도 안 되는 게 음악이다.

 

Q. 이번 영화제를 찾은 분이나 음악영화를 사랑하는 분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A. 내가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싶긴 한데, 제천영화제에 온 분들한테는 '잘 왔다'는 인사를 건네고 싶다. 더불어 가려다가 못 온 분들에게는 '내년에는 꼭 오길 바란다'는 말을 전하련다.

 

 

자주 왔지만, 제천이라는 도시에서 느낄 수 있는 영화제는 어떤 여유와 아름다움이 있다. 특히 이 영화제가 음악영화를 상영한다는 점에서 더 그러한 것 같다. 음악 영화 대부분은 즐거운 축에 속하는데, 이런 영화를 관람하면서 휴식처럼 보낼 수 있는 영화제다.

 

더불어 영화음악 산업에 도전하는 분들도, 하는 분들도 많은데 이런 자리를 통해 나도 그들을 만나보고 싶고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길 바란다.

 


 

인터뷰 말미에 저는 이 감독에게 뮤직인사이트 경쟁작 일곱 편은 중 가장 재밌는 작품은 무엇인지, 가볍게 물었는데요. 이에 대해 그는 ▲대도시의 사랑법 ▲빅토리 ▲아메바 소녀들의 학교괴담: 개교기념일 ▲소방관 ▲탈주 ▲하얼빈 등 모든 경쟁작을 다 재밌게 관람했지만, '음악은 탈주'라는 유쾌한 농담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하네요.

 

인터뷰 후 발표된 올해 뮤직인사이트 대상에 파묘의 김태성 음악감독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지만, 그는 크게 개의치 않았을 듯합니다. 영화와 음악이 서로를 비추며 함께 자라는 이 순간을 이미 만끽하는 모습이었거든요.

 

그의 다음 공식 일정은 부국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섹션 참석에 이어 미쟝센단편영화제인데요. 이곳에서 '질투는 나의 힘' 경쟁부문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며 단순 로맨스나 멜로드라마의 경계를 넘어 다양한 감정선을 각기 다른 시선으로 탐색한 작품을 심사할 예정입니다. 또 차기작 파반느도 올 하반기 또는 내년 상반기께 개봉합니다.

 

연출자, 심사위원 등 바쁜 행보 속에서 도어즈의 앨범처럼 자신만의 서사를 쌓아가는 그의 다음 트랙이 관객에게 또 어떤 울림을 선사할지 기대해도 좋을 듯합니다.

 

/이슈에디코 김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