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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뷰

[이리저리뷰] 벽장, 치우거나 나오거나

독자 여러분, 추석 연휴 잘 보내셨나요? 휴식의 여운을 강제 삭제한 채 시월의 일상으로 복귀한 분들은 아마도 저처럼 인지력 둔화와 무기력증 탓에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시간을 보내실 테죠. 난 누구? 여긴 어디?

 

전 업무 감각을 되살리기 위해 최근 기사를 훑고 있는데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와 에미넴(Eminem)의 소식이 눈에 띕니다. 현지 날짜로 이달 2일 피플 등 외신에 따르면 둘 사이 오랜 불화가 다시 화제라고 합니다.

 

머라이어 캐리가 최근 미국의 한 텔레비전 심야 토크쇼에 출연해 에미넴이 자전적 영화 '8마일'에 자신의 엄마 역할을 제안했다는 소문이 어느 정도는 진실이라면서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는 게 기사 내용이었고요. 

 

내용을 보태자면 각각 69년 3월, 72년 10월로 만 4년 차이도 나지 않는 연하 에미넴의 제안으로 두 사람의 불화가 시작됐고 수년째 불편한 관계가 이어졌답니다. 에미넴은 과거 반년간 연인관계였던 머라이어 캐리와 성격 차이로 헤어졌다고 밝혔으나 크리스마스의 여왕은 네 차례 함께 했을 뿐 데이트한 적은 없다면서 그의 발언을 부인했다네요.

 

1972년 10월17일 미국 미주리 주 세인트조지프에서 태어난 래퍼이자 배우 겸 프로듀서, 작곡가, 사업가인 에미넴(Eminem)의 본명은 마셜 브루스 매더스 3세(Marshall Bruce Mathers III)입니다. 예명 에미넴은 본명 이니셜 'M&M'을 발음대로 표기한 것에서 유래했고요.

 

백인 래퍼로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두며 힙합 장르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영향력 있는 래퍼 중 한 명이 된 에미넴이 불안정한 유년기를 보낸 건 영화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특히 일찌감치 가정을 버린 아버지와 자식을 제대로 양육하지 못한 어머니를 향한 분노를 랩으로 거칠게 쏟아내 문제가 되기도 했죠.

 

2002년 발매한 네 번째 정규 앨범 'The Eminem Show'의 4번 트랙이자 두 번째 싱글인 'Cleanin' Out My Closet'은 에미넴이 자신의 어머니 데비 매더스(Debbie Mathers)에게 쌓인 분노와 원망을 표출한 곡입니다. 벽장 속을 청소한다는 폭로, 발산, 고해의 뜻이 담긴 제목처럼 자신의 어둡고도 사적인 과거를 대중에게 드러내고 해소하려는 의도였죠.

 

이 노래 후렴구는 'I'm sorry mama, I never meant to hurt you, I never meant to make you cry. But tonight, I'm cleaning out my closet, one more time(엄마 미안해요, 상처 주려던 건 아니었어요, 울게 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오늘 밤, 난 내 벽장을 청소할 거예요, 다시 한 번)'이라는 가사입니다. 

 

겉으로는 사과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어머니에게 상처를 주는 내용으로 채운 날이 선 반어와 냉소였고요. 이미 2000년에 내놓은 'The Marshall Mathers LP'의 수록곡 'Kill You' 등에서 자신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던 모친과의 관계는 'Cleanin' Out My Closet' 발표 이후 더욱 악화됐습니다.

 

 

그러다가 에미넴은 2013년 'The Marshall Mathers LP 2' 수록곡 'Headlights'를 통해 어머니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며 화해한 이후 더는 'Cleanin' Out My Closet'을 부르지 않는다고 하네요. 다만 안타깝게도 에미넴의 어머니는 지난해 12월 향년 69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애증 서린 사연의 직접적인 단초가 된 노래 'Cleanin' Out My Closet'과 얼핏 유사한 문장구조 같지만 큰 맥에서 차이가 있는 표현으로 'coming out of the closet'을 언급할 수 있죠.

 

벽장에서 나온다는 이 표현의 기원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경 영국과 미국에서 상류층 젊은 여성이 성인 자격으로 공식석상에 처음 나오는 것을 의미하는 'coming out into society'였습니다. 'coming out party'는 사교계에 정식으로 등장하는 데뷔 파티를 지칭했고요.

 

이처럼 사회에 자신을 드러내고 인정받는 과정으로 사용하던 커밍아웃은 1960~70년대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은폐와 억압의 은유인 'closet'과 연결돼 성적 지향이나 성정체성에 대한 공개 선언을 통칭하게 된 겁니다.

 

지금은 여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공개하는 행위 전반을 포괄하는 커밍아웃은 결국 에미넴의 고백과 마찬가지로 더 이상 숨지 않겠다는 선언이라는 점에서 맥이 같죠.

 

매년 10월11일, 오늘은 '커밍아웃의 날'. 커밍아웃한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LGBT) 등 성소수자의 인식 제고가 목적인 기념일로 1987년 워싱턴에서 열린 게이·레즈비언 권리 행진을 기려 제정했습니다. 미국 인권운동가 로버트 아이슈브르(Robert Eichberg)와 장 올릴리(Jean O'Leary)가 이듬해인 1988년 공식 제안했고요.

 

커밍아웃은 사회 구성원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보편적 표현입니다. 우리가 감춘 진실과 억압의 표상인 벽장에서 벗어나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과 마주하는 거죠. 세상에는 언젠가 드러내야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불편하고 어수선한 벽장을 정리하거나 빠져나와야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는 거죠.

 

/이슈에디코 정금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