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덕 지주(지극히 주관적인) 무작위 명반 소개] 열일곱 번째는 1986년 노르웨이 오슬로 근교 콜봇(Kolbotn)에서 그림자를 드리운 블랙 메탈 밴드 Darkthrone(다크쓰론)의 'A Blaze in the Northern Sky'.
Venom(베놈), Celtic Frost(켈틱 프로스트)를 위시한 1세대의 뒤를 이어 1990년대 초부터 노르웨이 블랙 메탈 씬을 잡아끈 2세대 핵심 밴드 중 하나로 상업적인 성공보다는 추구하는 음악에 대한 진실성과 언더그라운드 정신을 내세워 골수팬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다크쓰론.
결성 당시 1년 정도 블랙 데스(Black Death)라는 이름의 데스 메탈 밴드였던 이들은 1991년 앨범 작업을 기점 삼아 블랙 메탈로 장르를 전환하며 원초적이고 미니멀한 사운드를 들려줬죠. 여기 그치지 않고 2000년대 이후에는 하드코어 펑크에 정통 헤비메탈과 둠 메탈 요소를 섞은 '블랙큰롤(Black 'n' Roll)'이나 트래시 메탈 색채를 덧입히는 등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합니다.
밴드의 사상적 지주로 작사와 작곡, 드럼, 백킹보컬을 맡는 펜리즈(Fenriz)와 1991년부터 지금까지 함께 하는 보컬, 리드 기타, 작곡 담당 녹터노 쿨토(Nocturno Culto).
여기에 다크쓰론의 초기 멤버 제피러스(Zephyrous)가 리듬 기타를 책임지는 동시에 작곡에 힘을 더하고 역시 초기 멤버였으나 세션 베이시스트로 이 앨범에 참여한 닥 닐센(Dag Nilsen)의 끈덕진 끈끈함이 검게 빚은 역작 'A Blaze in the Northern Sky'.
1988년 3월 첫 데모 이후 1991년 1월 정규 1집 'Soulside Journey'를 내놓은 이듬해 2월 말경 발매한 2집 'A Blaze in the Northern Sky'는 블랙 메탈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앨범 중 하나로 꼽히는데요.
데스에서 블랙 메탈로 선회하는 동안 이들은 메이헴(Mayhem)의 유로니무스(Euronymous) 등과 교류하며 순수 블랙의 토대를 세운 것도 모자라 로우 블랙 메탈(Raw Black Metal) 사운드의 원형을 선보였습니다.
거친 저음질(Lo-Fi)의 사운드를 의도적으로 사용해 음산한 분위기를 극대화하면서 블래스트 비트, 트레몰로 피킹 리프, 스크리밍 보컬 등에 사악하면서도 반복적인 속도감을 줘 블랙 메탈의 청사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후대의 동류 밴드들에게 크디큰 영향을 미쳤죠.
진흙 같은 보컬, 저주스러운 반복, 위압적인 분위기 고조, 창조적 실험이 붕괴시키는 장르의 경계… 총 재생시간 42분4초로 2집에 실린 여섯 곡 전체 살펴보면서 이번 편 마무리하겠습니다. 유튜브로 연결되는 추천곡은 본 앨범의 정수를 응축한 트랙이자 다크쓰론의 음악적 지표를 규정한 선언문 같은 'In the Shadow of the Horns'입니다.
첫 타이틀 'Kathaarian Life Code'는 앨범 전체에서 가장 길면서도 구조가 복잡한 곡으로 수도승의 성가가 깔린 묵직하고 불안정한 인트로가 특징이죠. 이후 바뀌는 속도와 리듬은 데스와 둠의 이미지를 보이면서도 블랙의 색채를 놓치지 않습니다.
데스 리프를 블랙 방식으로 연주하려 한 작곡자의 시도가 돋보이는 이 곡은 인간과 신 사이의 허상을 끊고 암흑의 본질을 찾는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요.
2집에서 가장 역동적인 리듬 변화가 있는 다음 곡 'In the Shadow of the Horns'는 정석(?)의 편안한 박자로 시작해 고속 트레몰로 리프, 묵직한 중속, 여유 있는 펑크함이 그치지 않고 뒤섞이며 냉혹한 파괴력을 전달합니다.
곡 후반에는 예상치 못한 어쿠스틱 기타 파트가 나와 은근히 충격적인 대비감까지 선사하는 이 곡은 뿔의 그림자 아래에서 새로 탄생하는 세상을 표현하는데, 해방된 어둠의 군주인 새벽의 왕들이 지배하는 영원한 어둠의 통치에 대한 찬양으로 풀이할 수 있겠네요.
이어지는 3번 트랙 'Paragon Belial'은 복잡한 구조를 벗어던진 직관적인 느낌의 곡입니다. 단순하면서도 귀에 박히는 곡으로 악마 벨리알(Belial)의 분노, 지옥에서의 권능을 숭배하며 순수한 악의 힘을 찬양하는 내용이죠.
다음 곡 'Where Cold Winds Blow'는 펜리즈가 데스의 잔재 없이 순수 블랙을 지향하며 작곡했다고 밝힌 곡으로 뾰족한 트레몰로 피킹이 연출하는 불협화음과 날카롭고도 긴 고통의 단말마 같은 스크리밍이 고막에 꽂힙니다.
속도와 그루브를 유지하는 리듬에 차가운 멜로디 라인, 혼란스러운 솔로 파트가 북유럽의 냉소적인 감성을 대변하는 듯한 곡입니다. 세속적 가치에 얽매이지 않고 이교도적인 고독 속에서 진정한 어둠의 영혼을 추구하는 모습을 묘사했고요.
앨범의 정체성을 담은 5번 트랙 'A Blaze in the Northern Sky'는 2집에서 가장 에너지가 넘치는 곡으로 군더더기를 줄인 연주 대신 악기 같은 보컬과 저음의 내레이션 같은 의식적 선언문을 넣어 임팩트를 더합니다. 본 앨범의 음악적 비전인 '북녘의 불길'을 사운드로 구현한 곡인 만큼 구시대의 붕괴 이후 새로운 어둠의 시대를 맞이한다는 내용을 담았고요.
마무리 트랙 'The Pagan Winter'는 지긋하게 누르는 둠 메탈적 웅장함과 달릴 때는 달리는 블랙 메탈의 서슬 퍼런 냉혹함을 모두 챙겼습니다.
오랜 얘기를 들려주는 것 같은 곡 전개가 이어지는 와중에 다소 애상적(哀傷的)인 기타 솔로는 흐름을 잡고 장엄한 분위기를 조성하다가 다시 붕괴와 잠식을 번갈며 대미를 장식하죠. 앨범의 끝인지라 이교도의 겨울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우중충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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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thaarian Life Code 10:39
In the Shadow of the Horns 7:02
Paragon Belial 5:26
Where Cold Winds Blow 7:24
A Blaze in the Northern Sky 4:58
The Pagan Winter 6:35 |
/이슈에디코 정금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