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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영화제 : 이종필의 음악]① 음악 통해 완성한 추격극 '탈주'

지난해 7월. 경제 콘텐츠에 주력하던 제가 문화 쪽으로도 발을 담그기 시작할 무렵 썼던 초창기 기사가 있습니다. 바로 [이슈≤] '선구안' 또다시 증명 기업은행…영화 '탈주' 박스오피스 1위인데요.

 

당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영화 '탈주(감독 이종필)' 인기에 저도 편승하고자 탈주 투자사였던 IBK기업은행에 대한 취재를 간단히 곁들인 기사였습니다. 저는 보통 영화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앉아있는 편인데 탈주 관람 당시에도 크레딧에 걸린 투자사 IBK기업은행을 발견하고 기회를 포착했다가 썼던 기억이 나네요.

 

 

작년 7월3일 개봉한 이 작품은 내일을 꿈꾸는 북한병사 규남(이제훈 扮)과 현실에 안주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자 규남을 쫓는 보위부 장교 현상(구교환 扮)의 치열한 추격전을 그렸는데요. 최종 관객 수는 손익분기점 200만 명을 거뜬히 넘긴 256만 명을 기록하며 지난해 영화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탈주는 비무장지대(DMZ)에 근접한 북한 병사에게 남한 노래가 들려온다는 설정이 담긴 권세휘 작가의 시나리오에서 시작됐다고 하죠. 북한과 탈북이 주된 배경이지만 다큐멘터리 같은 얘기 대신 가슴 깊이 품은 꿈을 위해 나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을 그려냈습니다.

 

영화 속 규남이 즐겨듣는 남한 노래는 자이언티의 '양화대교'인데요. 아버지와의 추억을 담은 이 곡이 어린시절 아버지를 잃은 규남에게 큰 자극이 됐죠. 또 현상이 극 중에서 연주하는 곡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전주곡 5번 G단조로 권위적이고 박력 있는 캐릭터의 모습을 한층 살렸습니다.

 

이 밖에도 극 중간마다 앰비언트 뮤직(신시사이저를 비롯한 전자악기를 활용해 공간과 분위기 조성에 집중하는 음악 장르로 특정 멜로디나 리듬보다 음색과 분위기에 중점을 두는 특징을 지님)과 어쿠스틱 및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배치해 관객들의 몰입도를 한층 높였고요.

 

이처럼 탈주에서 음악은 처음부터 끝까지 엄청난 장치로 다가옵니다. 모두가 이를 공감하듯 탈주라는 하나의 연주회를 지휘한 달파란 음악감독은 지난해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음악상을 수상하기도 했고요.

 

또 아시아 유일의 음악영화제인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올해 경쟁 부문에 신설된 '뮤직인사이트' 본선 진출작 7개 가운데 탈주가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기성 영화음악가의 창작물의 예술적 가치를 조명하고 국내 영화음악의 현재와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해 만들어진 경쟁 부문이죠.

 

이슈에디코에서는 이번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탈주를 연출한 이종필 감독과 만나

음악과 영화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인터뷰는 1, 2편으로 구성했는데요. 1편에서는 탈주를 집중적으로, 2편에서는 그의 영화 속 음악을 짚었습니다.

 

Q. 올해 신설된 '뮤직인사이트' 경쟁작에 탈주가 꼽혀 이 자리에 오게 됐다. 처음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어땠는지 소감 한마디 부탁한다.

 

A. 처음에는 단순한 상영작으로 뽑힌 줄 알았는데, 경쟁작에 들었다고 해서 놀랐다. 나는 영화가 감독의 것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는 소위 종합예술문화라고 말하는데, 정말 한 편을 위해 여러 감독이 창작에 나선다.

 

그런데 이번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영화 안에서 주된 소재가 음악이 아니더라도 음악이 중요하고 적절하게 쓰인 작품을 재조명해 줘서 기뻤다. 이 기회를 필두로 음악과 음악감독이 영화산업 안에서 더욱 주목받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Q. 탈주에서 이종필 감독과 달파란 음악감독의 세심한 음악 연출은 앞서 많은 인터뷰나 기사에서 알려졌다. 실제 편집이나 연출 과정에서 음악 때문에 원래 구상했던 방향을 꺾어 수정한 부분이 있다면?

 

A. 음악 관련해서는 어느 정도 틀을 탄탄하게 잡고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이제 달파란 감독이 "이런 것도 있다"며 여러 제안을 해줘 더 깊게 들어갔던 연출도 있다.

 

 

영화 속 클래식 음악의 경우 달파란 감독이 이민휘 감독을 소개해 주면서 함께 완성할 수 있었다. 원래 구교환 씨가 피아노를 쳐야 하는 장면이 있어 이 감독이 피아노 선생으로 오게 됐는데, 극 중 피아노곡을 같이 의논하며 더 좋은 쪽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됐다. 나중에 이민휘 감독은 나의 드라마 작품인 '박하경 여행기'와 차기작 '파반느'의 음악감독으로도 함께한다.

 

Q. 이벤트로 나눠줬던 콘티북에서 공개됐던 리현상의 마지막 부분도 관객들 사이에서 화제였다. 영화 엔딩은 현상이 떠난 규남의 소지품 중 어린시절 규남에게 생일선물로 준 '탐험가 아문센'을 펼치는데, 그 안에 "죽음이 아닌 의미없는 삶을 두려워하라. 생일 축하한다"는 '피아노 형'으로서 자신이 적었던 글귀를 보며 웃고 끝이 난다.

 

그러나 콘티북을 보면 이 장면에서 더 나아가 먼 훗날 샹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에서 독주 연주회를 펼치며 웃음을 찾는 리현상이 독극물 테러로 숨지게 된다. 이 부분도 음악과의 조화를 찾던 중 수정된 부분일까?

 

A. 콘티대로라면 현상은 과거 자신이 남긴 메시지 덕분에 꿈을 향해 나아갔지만, 행복과 동시에 죽음이 맞이하는 엔딩이었다. 그런데 촬영 전 찾아보니 구교환 씨가 여러 작품 속에서 많이 죽었더라. 팬들 역시 이번엔 안 죽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길래 엔딩을 틀게 됐다.

 


 

인터뷰 이후 이달 8일 제천영화제에서 탈주 상영 후 열린 GV(게스트와의 대화)를 보게 됐는데요. 웬만한 탈주 관련 이야기는 탈주 개봉 당시 여러 인터뷰에서 다뤄졌다고 생각했는데, 영화 팬들의 심도 있는 질문들에 감탄하고 반성했습니다. 그래서 GV 속 질의응답 중 일부를 간략하게 정리했습니다.

 

Q. 여러 악기 중 피아노를 현상의 악기로 택한 이유는?

 

A. 현상은 총을 잘 다루는 사람이다 보니, 손으로 또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생각했더니 총과 대조되는 피아노였다. 그래서 그를 피아니스트로 설정했다.

 

Q. 감독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A. 규남과 현상이 재회하는 장면 중 현상이 "규남아, 너 탈주범을 때려잡은 영웅이잖아, 그렇디?"라고 묻자, 규남이 "예"라고 답하는 부분이 있다. 여기서 나오는 미묘한 배경음악이 좋았다.

 

또 이 장면 전에 현상이 규남과의 어린시절을 얘기한다. 그러면서 규남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아이야~"하며 안타까움을 드러내는데, 이때 함께 나오는 음악과 대사 톤이 홍콩영화같이 오묘하게 느껴졌다.

 

-2편에서 계속-

 

/이슈에디코 김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