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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덕지주 무작위 앨범 소개] Suffocation 'Pierced from Within'

[악덕 지주(극히 관적인) 무작위 명반 소개] 열여섯 번째는 1988년 미국 뉴욕 주 롱아일랜드 센터리치에서 뿌리를 심은 브루탈·테크니컬 데스 메탈 밴드 Suffocation(서포케이션)의 'Pierced from Within'.

 

브루탈 계열을 조명할 때 빼놓을 수 없을 만큼 1990년대 이후 익스트림 메탈씬에 큰 영향을 미친 이들은 특히 브레이크다운(breakdown)을 데스 메탈에 도입해 데스코어(Deathcore)라는 하위 장르 탄생에도 기여했죠.

 

브레이크다운은 그루브에 초점을 맞춘 하드코어 펑크 연주기법 중 하나인데 속도를 급속히 늦추며 극히 무거운 리듬으로 전환하는 섹션입니다. 기타는 낮은 튜닝 상태에서 단순하면서도 묵직한 팜 뮤트 리프를 반복하고 이 뒤를 베이스가 같은 리듬으로 받쳐 극도의 헤비함을 만들죠.

 

브레이크다운은 리스너에게 갑자기 내려앉는 듯한 느낌을 주며 다른 분위기에 몰입하게 만들어 익스트림 메탈 밴드들이 애용하는 기법이 됐습니다. 여기 더해 보컬리스트 프랭크 멀렌은 일명 '꿀꿀이(Pig Squeal)' 또는 '하수구 배수' 보컬의 원조로 브루탈 데스 보컬의 상징이 됐고요.

 

결성 이후 언더그라운드에서 이름을 알리던 이들은 1990년대 초반, 록·메탈 메이저 음반사 중 하나인 로드러너 레코드(Roadrunner Records)와 계약하며 메이저 무대를 휘저었으나 멤버들 간 갈등과 생계 및 레이블 문제, 음악 씬의 변화 탓에 1998년 EP 'Despise the Sun' 활동을 끝으로 해체 수순에 이릅니다.

 

그러다가 2002년에 재결성해 가장 최근인 2023년 11월, 아홉 번째 정규 앨범 'Hymns from the Apocrypha'를 발매하는 등 이 분야의 듬직한 가장 역할을 하며 정통 데스 메탈의 명맥을 잇고 있죠.

 

1990년 7월 첫 데모 이후 이듬해 10월 선보인 정규앨범 1집 'Effigy of the Forgotten'은 브루탈 데스 메탈의 밑그림을 완성한 데스 메탈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앨범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극찬의 저주인지 소포모어 징크스(Sophomore Jinx)인지 1993년 5월 발매한 정규 2집 'Breeding the Spawn'을 팬들이 외면한 후 정확히 2년이 지나 1995년 5월 내놓은 절치부심의 결과물 'Pierced from Within'.

 

앞서 언급한 꿀꿀이, 하수구 배수 등 깊고 극단적인 거터럴(Guttural) 보컬을 소화하는 브루탈 데스 보컬리스트의 표준 프랭크 멀렌(Frank Mullen)과 곡을 구상하는 핵심으로 줄기차게 리프를 뽑아내는 리드 기타의 테런스 홉스(Terrance Hobbs).

 

그리고 테런스 홉스와 찹쌀떡 같은 호흡을 만방에 알린 리듬 기타 담당 더그 세리토(Doug Cerrito), 이들과 견줘도 손색없는 기술적 역량으로 앨범의 완성도를 끌어올린 베이시스트 크리스 리처즈(Chris Richards)와 드러머 더그 본(Doug Bohn).

 

이 구성원들이 각각의 역량을 총동원해 뽑아낸 세 번째 정규 앨범은 역시나 기술적인 완성도가 극에 달한 명반이라는 평가를 끌어냈죠.

 

테런스 홉스와 더그 세리토는 복잡하고 난해한 리프에 속도감까지 놓치지 않았고 정규 앨범 중엔 3집에만 참여한 더그 본은 자신만의 정확한 블래스트 비트와 패턴으로 중심을 잡았습니다. 크리스 리처즈는 탄탄하고 복잡한 베이스 연주로 그루브와 무게감을 살렸고요.

 

고막에 달라붙을 것처럼 눅진대는 사운드로 메탈헤드들에게 정석의 가르침을 주는 'Pierced from Within' 앨범에 수록된 총 재생시간 45분 28초의 아홉 곡 전체를 살펴보겠습니다. 추천곡은 유튜브로 연결되는 'Pierced from Within'입니다.

 

 

인류의 타락과 폭력의 순환, 영혼의 파괴, 종교적 기만 등 어둡고 염세적인 내용을 담은 이 앨범의 타이틀 'Pierced from Within'은 3집 전체 분위기를 결정짓는 곡으로 인간 내면의 악, 폭력성에 의한 영혼의 파멸을 노래하죠. 긴장감 넘치는 리프와 폭력적인 브레이크다운으로 헤비니스의 기본을 제시합니다.

 

다음 곡 'Thrones of Blood'는 몰아치는 속도에 변주를 얹은 브루탈한 트랙으로 높은 점수를 매길 수 있으며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살육과 파괴가 통치의 유일한 수단이 되는 존재들을 묘사했고요.

 

3번 트랙 'Depths of Depravity'는 육중한 그루브와 기술적인 리프의 균형에 중점을 둘 수 있습니다. 구간 전환에 신경을 쓰면서 연주 난이도를 점차 높이는 구성을 탐지할 수 있죠. 악행을 저지르는 인간이 도덕적으로 타락을 거듭해 죄악이 쌓이는 상태를 표현한 곡입니다.

 

이어지는 'Suspended in Tribulation'은 3집에서 가장 긴 곡으로 다층적인 구조를 내세워 프로그레시브한 이미지를 풍기며 밴드의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고난에 매달려 벗어날 수 없는 비극적인 운명에 대한 가사가 멜로디와 하모니를 살린 솔로에 녹아드네요.

 

무게감 있는 인트로와 격렬한 전개로 귀를 당기는 5번 곡 'Torn into Enthrallment'는 자유 의지를 박탈당하고 타인에게 강제 복종하게 되는 상실감에 대한 노래로 더그 세리토의 기괴하고도 옹골찬 리프가 특징입니다. 이 앨범에서 가장 잊히지 않는 리프와 보컬 라인을 가진 곡 중 하나죠.

 

6번 트랙 'Invoking'은 역동적인 속도 변화에서 듣는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곡의 주제인 인간 통제를 벗어난 종말론적 재앙의 등장과도 같이 블래스트 비트에서 브레이크다운으로 떨어지는 구성이 두드러지고요.

 

1991년 EP판 'Human Waste' 수록곡의 재녹음 버전인 7번 트랙 'Synthetically Revived'는 더 깨끗하고 강력해지면서 극도로 응축된 초창기 서포케이션의 폭발력에 휘둘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죠. 가사는 인공적인 생명체의 한계와 인간의 오만에 대한 내용입니다.

 

여덟 번째 곡 'Brood of Hatred'는 압도적인 무게감과 리듬의 질감을 강조했으며 곡 중반부의 솔로는 나락의 절망감을 드리워 앨범의 어두운 분위기에 더 짙은 장막을 씌웁니다. 증오의 대물림이 야기할 수밖에 없는 집단적인 폭력과 파괴의 현장이 느껴집니다. 곡에 제대로 부합하는 적절한 제목이네요.

 

그야말로 대미를 장식하는 'Breeding the Spawn'은 전체적인 음향 문제가 있던 정규 2집 'Breeding the Spawn'의 타이틀을 재녹음한 트랙으로 팬들에게 선사하는 선물과도 같은 곡입니다.

 

블래스트 비트와 함께 복잡한 필인을 끊임없이 오가는 예측 불가의 리듬, 테크니컬 리프, 브레이크다운 등 서포케이션이 추구하는 음악의 정수를 되새기게 하며 앨범을 마무리하죠. 악의 재생산을 의미하는 제목도 규모에 맞게 거창합니다.

 

Pierced From Within                4:26


Thrones of Blood                5:15


Depths of Depravity                5:33


Suspended In Tribulation                6:31


Torn In Enthrallment                5:26


Invoking                4:37


Synthetically Revived                3:53


Brood of Hatred                4:36


Breeding the Spawn                5:10

 

/이슈에디코 정금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