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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뷰

[이리저리뷰] 목숨 걸고 모은 100엔, 자유를 잇는 815원

'이슈에디코'의 알짜 생활정보 시리즈 중 하나인 [적금 돋보기] 이번 편을 보니 우리은행이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10만 좌 한도로 특별 금융상품을 판매하네요. 이 상품은 1인 1계좌 가입 가능한 12개월 만기 자유적립식으로 월 최대 30만 원까지 납입할 수 있습니다.

 

기본금리 연 2.0%에 국가유공자, 독립유공자 및 그 유족에게는 4.15%포인트(p), 최근 6개월간 우리은행 예·적금 상품에 가입하지 않은 고객에게는 2.0%p 우대금리가 더해져 최고 연 8.15% 금리를 받을 수 있고요.

 

특히 사회공헌형 금융상품으로 고객이 적금에 가입할 때마다 국가보훈부가 운영 중인 국민 기부 온라인 플랫폼 '모두의 보훈드림'에 우리은행이 좌당 815원씩 기부한답니다.

 

하나은행도 '대한민국만세 80주년 적금'을 내놨는데요. 우리은행과 마찬가지로 최고 연 8.15%의 우대 금리를 제공하며, 가입 시마다 815원을 독립 유공자 지원에 자동 기부합니다. 또 태극기 게양, 나라사랑 실천 서약 등 특정 조건을 충족하면 우대 금리가 붙고요.

 

보기엔 그저 훈훈하게만 느껴지는 금융상품이지만 사회 일각의 비판도 따릅니다. 쓴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역사적 기념일의 상업화, 애국심의 오용, 상품 판매 수익률과 사회적 기여의 불균형 때문이고요. 그래도 어쨌든 선의를 바탕에 둔 상품들인 만큼 너무 큰 의미를 두고 왈가왈부 과해석하는 것도 그리 바람직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광복을 주제로 한 금융상품이 나오기까지 감히 상상도 못할 고초를 겪었을 대한의 독립운동가들에게 무한 존경과 감사를 보내도 모자랄 판국에, 그들의 은혜를 입은 후손들이 광복 특별 금융상품과 엮인 이해관계로 마찰을 빚는 건 보기 좋은 일이 아니죠.

 

두 눈 멀쩡히 뜨고도 인두겁의 악마들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 다시 지키기 위해 그야말로 목숨 값처럼 활동자금을 모아 사투를 벌였을 독립운동가들의 행적을 막연하게 짐작해도 가슴이 저미는 걸요.

 

그나저나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들이 일제의 치밀한 압박과 감시를 뚫고 어떻게 활동자금을 마련했는지 혹시 아시나요?

 


편지로 전한 불굴의 의지, 답장에 실은 불변의 격려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가 발행한 한국독립운동사연구와 국사편찬위원회의 우리역사넷, 공훈전자사료관, 독립기념관 홈페이지 내 콘텐츠 자료들을 참고하면 이들의 활동자금을 마련한 방법은 다방면에서 체계적으로 이뤄졌습니다.

 

우선, 학교와 종교단체, 기업, 상점 등에서 은밀하게 자금을 모아 전달하는 한편 비밀모금 활동을 전개했고요. 만주, 상하이, 미주 지역 등지의 한인 동포들도 조직적인 모금 활동 등으로 자금을 지원했습니다.

 

이와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미주 지역에서 애국금 모금을 실시하는 동시에 인구세(人口稅) 형태의 독립공채를 발행했죠. 인구세는 독립운동 자금 마련을 위해 도입한 세금으로 20세 이상 모든 한국인에게 1년에 금화 1원(해외는 1달러)을 걷었습니다.

 

또한 임시정부가 같은 해 국내 도, 군, 면 단위로 조직한 연통제(聯通制)라는 비밀 행정연락망을 통해 일제의 감시를 피하며 독립운동 관련 정보를 공유하면서 자금을 관리했다고 하네요. 무엇보다 기억해야 할 것은 거의 모든 독립운동가들이 자신의 재산을 바치고 생활비를 아껴 독립운동을 이어갔다는 사실입니다.

 

활동자금과 관련한 사료 중에서는 1931년 12월24일, 중국 상하이의 김구 선생에게 의거자금을 요청한 이봉창 의사의 친필 편지가 유명하죠. 이 의사는 이 편지에서 '물품이 팔린다'라는 암호로 의거자금을 요청했고 나흘 뒤인 28일, 김구 선생이 100엔을 보내며 일왕 히로히토 저격 의거를 지원했습니다.

 

다음 해 1월8일, 도쿄 경시청 앞에서 히로히토에게 수류탄을 던져 암살하려던 이 의사의 계획은 결국 미수에 그쳤지만요. 아울러 이봉창 의사는 일본에서 상점 점원, 철공소 직공, 잡역부 등으로 일하며 경제적 자립을 도모한 것은 물론, 김구 선생이 군자금을 모집하는 동안 조력자 역할도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한인애국단의 제1호 단원이자 의열투쟁가로 히로히토 암살에 실패해 체포된 후 사형 선고를 받고 1932년 10월10일 향년 30세에 순국한 이봉창 의사. 이 의사의 의거는 윤봉길 의사의 의거와 함께 광복 의지에 다시 불을 붙이는 도화선이자 대한의 독립운동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습니다.

 

8월10일, 오늘은 이봉창 의사가 태어나신 날입니다. 1901년생이시니 만약 살아계신다면 오늘로 딱 125세가 되셨겠네요. 이봉창 의사가 방송국 광복 특집 프로그램에 최장수 독립운동가로 출연해 과거의 일화들을 회상하듯 풀어놓는 모습을 그리며, 이번 '이리저리뷰'는 이만 마치겠습니다.

 

/이슈에디코 전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