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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뷰

[이리저리뷰] '공공성 대 수익성' 보통의 다리를 잇는 여정

주말의 여유를 좀 더 길게 만끽하기 위해 오전 잠을 줄이고 일찍 일어나 구독 중인 동영상 스트리밍서비스 넷플릭스를 통해 2007년 작품 '복면 달호'를 다시 감상했습니다.

 

역시 이 영화의 감상 포인트는 주인공 봉달호(차태현 扮)가 부르는 히트곡이자, 영화의 핵심 줄거리를 이끌어가는 노래 '이차선 다리'였던 거죠. 누구든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도 한참 이차선 다리를 흥얼거리는 자신을 보게 될 겁니다.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근대 이후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소규모 교량이던 2차선 다리는 우리나라에서 언제 어느 곳에 처음 모습을 보였는지 궁금해졌습니다. 하지만 온갖 종류의 문헌과 온라인을 검색해도 다리와 관련한 역사적 기록은 규모와 양식 등에서 두드러진 교량만 찾을 수 있더라고요.

 

대신 찾은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차량과 사람이 통행하는 근대적 교량으로 처음 기록된 것은 1917년 준공한 한강대교(옛 제1한강교 또는 한강인도교)입니다. 개통 당시 폭은 18m, 노면 4차선에 차도 13.6m와 보도 4.4m였다는 기록을 봐선 애초부터 4차선 이상으로 설계했다는 추측이 가능하죠.

 

또 특정 재료를 활용해 국내 기술로 만든 최초의 2차선 다리에 대한 정보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2013년 국립산림과학원이 개발한 한아름교는 국산 목재를 사용한 국내 최초의 목조 교량이라네요. 강원도 양양군 미천골휴양림에 준공한 길이 30m, 폭 8.7m의 왕복 2차선 다리로 차량 통행이 가능하답니다.

 

 

무엇보다 11월은 우리나라에서 의미가 있는 두 개의 다리가 개통한 달이기도 합니다. 지난 2000년 11월 21일은 공항신도시 분기점부터 북로 분기점 40.2km의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전 구간 개통일이죠.

 

인천광역시 중구와 경기도 고양시를 잇는 우리나라 최초의 수익형 민자사업 고속도로인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는 대형 교량 건설 기술의 집약체로 국가 관문의 역할을 합니다.

 

이보다 11일 앞서 개통한 서해대교는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과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을 연결하는 왕복 6차로의 서해안고속도로 구간으로 서해안 교통망 확충과 물류 기반 마련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요.

 

개통 당시 국내 최장 교량으로 큰 화제를 모았는데 한국도로공사가 관리하며 서해안고속도로 전체의 폐쇄식 요금체계를 적용하기 때문에 서해대교 구간 자체엔 별도 요금소가 없습니다. 수도권 외곽 주요 도시들을 연결하며 광역 교통망의 짜임새를 더욱 탄탄하게 구축하는 서해대교와 유사한 역할을 맡은 여러 다리가 있죠.

 

수도권 서부와 충남에 걸친 서해대교가 남북 교통의 대동맥 역할을 수행한다면 일산대교는 수도권 북부의 동서 교통흐름을 원활하게 합니다. 그러나 일산대교는 서해대교를 위시한 국가 재정 도로와 대비되는 민간 투자 도로의 대표 사례 중 하나로 거론될 만큼 통행료 논란이 극심한데요.


 "부담으로 나뉘는 차선, 다리는 왕복을 원한다"


일산대교는 한강에 놓인 33개의 다리 중 유일하게 통행료를 징수하는 다리로 최소운영수입보장(MRG, Minimum Revenue Guarantee) 문제와 일반 고속도로 대비 비싼 통행료 탓에 무료화 논의가 정치적 쟁점으로도 비화한 상황입니다.

 

김포, 고양, 파주 등 경기 서북부 수백만 명의 서울 출퇴근과 일상생활을 위해 반드시 건너야 하는 다리인지라 과도한 통행료는 주민들의 경제적 부담과 이동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비판을 부를 수밖에 없었죠.

 

지금까지 상황을 보면 경기도가 제시한 일산대교 무료화 국비 분담액 100억 원이 이달 14일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하면서 내년 1월1일 통행료 무료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물론 무료화 대상에서 제외된 인천광역시와의 협의 등 세부적인 조율이 더 필요하지만요.

 

차선 사이를 오고가는 이 단순 복잡한 구조물은 2차선이든 6차선이든 통로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오늘날 바쁜 문명의 속도와 효율을 상징하는 이 건축물은 정지, 양보와 함께 주변을 살피게 하는 시공간적 쉼표를 부여하죠.

 

과거의 우리는 달호가 부른 이차선 다리처럼 누구에게나 열린 소박한 보통의 길을 원했을 겁니다. 그러나 다리가 본질적 역할인 연결과 소통의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경제적 부담에 막혀 건너야 할 장벽이 될 때 결국 도달하는 끝은 차단과 불통이 될 테죠.

 

'이차선 다리 위 끝에 서로를 불러보지만 너무도 멀리 떨어져서 안 들리네'라는 이차선 다리의 가사처럼 대화나 협의가 막힌다면 그 다음 가사 '차라리 무너져 버려 다시는 건널 수 없게…'와 같은 극단의 심정으로 치닫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일산대교 무료화 가능성은 공익이 사익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고 있다는 희망적 신호입니다. 상징성을 지닌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 다리는 건설 당시 치열한 투자 논의가 있었지만 1911년 이후 공공 인프라로 무료 운영되며 '모두에게 평등하게 열린 길'의 가치를 증명해 왔죠.

 

시민들의 지친 일상에 평등한 소통의 자유를 선사하는 보통의 다리는 언제까지나 막힘없이 뚫려있어야 합니다. 그것도 손댈 필요가 정도로 튼튼하게…

 

/이슈에디코 강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