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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뷰

[이리저리뷰] 역사 만든 언어, 독립 이끈 외국어

며칠 전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CJ ENM의 tvN에서 '유 퀴즈 온 더 블록'이라는 프로그램을 우연히 보게 됐습니다. 

 

지난 12월 31일 방송에는 2026 대학수학능력시험 만점자 최장우, 왕정건 군이 게스트로 나와 올해 특히 어려웠던 수능 영어에 대해 얘기하더라고요.

 

광주 서석고 3학년 최 군은 "평소 연습할 때보다 잘 안 풀리는 느낌이었는데 끝나고 친구들이랑 얘기해 보니까 이번 수능이 확실히 어려웠구나 싶었다"며 이번 불수능에 대한 술회를 풀어놨습니다.

 

이어 서울 광남고 3학년 왕 군은 "수능 영어는 양심이라는 게 있어서 본문, 선지가 있으면 둘 중 하나만 어렵게 나오는데 올해는 둘 다 어려운 양심 없는 수능이었다"고 말하며 불수능을 넘어 '용암수능'이라 불린 이번 시험의 위엄을 짐작케 했죠.

 

실제로 올해 영어 1등급 비율은 3.11%로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전체 만점자도 5명에 그쳤고요. 두 학생은 각각 서울대 경제학과와 의예과에 합격하며 결실을 맺었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험난했는지 방송을 통해 솔직하게 털어놨습니다.

 

수능 만점자인 저 학생들뿐 아니라 우리나라 수험생이라면 대부분 어렵게 공부한 영어를 실생활에서 제대로 활용하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요? 과거와 마찬가지로 영어는 시험을 위한 과목일 뿐 정작 외국인을 만나면 말문이 막힌다는 자조 섞인 푸념이 여전한 게 현실입니다.

 

하지만 푸념을 내뱉기 전, 사실 경탄이 먼저 터졌었죠. 병오년이 시작된 이달, 수능 만점을 받은 두 학생의 얘기를 접하기 전, 이번 '이리저리뷰'의 주제로 떠올린 분들이 먼저 계십니다.


새해 벽두의 두 선구자


충청북도 청주에서 1890년 1월 8일 태어나 1966년 5월 30일을 눈을 감은 독립운동가 김재형은 3·1운동 당시 출생지와 인근 지역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며 만세 시위를 일으킨 인물입니다. 중국 상해 프랑스 조계 지역에서 활동하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의 생계를 지원하고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죠.

 

1919년 4월 10일 상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제1회 임시의정원회의에서는 초대 재무총장으로 선임되기도 했습니다. 비록 그 자리를 사양했지만 임시정부의 재정과 외교 등 주요 활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계속 담당했고요. 

 

김재형은 3·1운동 등 국내외 독립운동의 확산과 조직적 활동을 도우며 독립운동의 기반을 다지는 데 기여했고, 우리 정부는 그의 공로를 인정해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습니다. 김재형과 같은 달인 1월 7일생인 독립운동가 서재필은 1864년 출생한 이래 김재형보다 더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내일은 1951년 1월 5일 세상을 등진 그의 75주기 되는 날이고요.

 

1884년 참여했던 갑신정변 실패 후 일본과 미국으로 망명한 서재필은 미국에서 의학을 공부해 조선인 최초의 서양식 의사가 됐죠. 1890년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 그는 사실상 '한국계 미국인 1호'로 안전한 미국 생활을 버리고 다시 조국을 찾았습니다. 

 

1896년 조선으로 돌아온 서재필은 중추원 고문에 임명되고 정부 지원을 받아 우리나라 최초 민간 근대 신문인 '독립신문'을 창간했습니다. 주지하듯 한글과 영문으로 발행된 이 신문은 국민계몽과 자주독립 정신을 널리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죠. 

 

여기 더해 이상재, 이승만 등과 함께 독립협회를 꾸려 자주독립 운동과 민주주의 확산에 힘썼고 광범위한 민중이 참여하는 만민공동회를 개최해 외세 간섭에 대응하는 여론을 모았습니다. 

 

1898년, 미국으로 추방된 후에도 독립운동을 멈추지 않은 채 필라델피아에서 의장을 자처한 한인연합대회를 개최하는 동시에 한국통신부와 한국친우회를 설립하며 미국 내 독립운동과 여론 확산을 주도했죠.

 

3·1운동 이후에는 뉴욕에서 독립운동 기념식을 진행했고, 1921년 워싱턴 군축회의에서는 한국 대표단 부단장으로 활동하며 국제사회에 한국 독립을 호소했습니다. 이런 노고를 치하해 정부는 1977년 건국공로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고요.


 나라를 바꾼 외국어 능력


 

김재형과 서재필, 두 독립운동가는 '쓸 수 있는 외국어'로 조국의 독립을 꾀한 대표적 인물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프랑스어, 영어, 중국어 등 여러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었던 김재형에게 외국어는 단순히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독립운동의 무기였던 셈입니다.

 

머나먼 외지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것도, 임시정부 요인들의 안전 거처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도, 해외 독립 자금을 모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외국어 능력 덕분이었던 거죠. 프랑스어와 중국어로 조계에서 생존했고 영어로 세계에 조선의 목소리를 전한 겁니다.

 

지금 우리 학생들이 배우는 영어는 아직까지도 문법과 독해에 매달려 점수를 올리는 데만 치중해 안타까운 마음이 큽니다. 언어를 도구가 아닌 목적으로 배우는 탓에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데는 서툴죠.

 

나라와 민족의 독립을 위해 탁월하게 외국어 능력을 활용한 독립운동가 김재형과 서재필, 이 두 분이 살아생전 몸소 실천한 가르침은 백만 번 되새겨도 모자람이 없습니다.

 

새해 1월이 시작됐습니다. 김재형과 서재필이 태어난 이 달을 맞아, 우리가 배우는 언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언어는 점수가 아니라 소통이고, 시험이 아니라 도구이며, 개인의 성취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힘입니다.

 

두 독립운동가가 외국어로 조국의 독립에 기여했듯, 지금 우리가 배우는 언어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쓰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슈에디코 전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