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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추억… 코로나19가 만든 강제 후각장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멀리 외출을 한 게 언제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할 정도입니다. 요즘처럼 살인적인 폭염이 쏟아지는 날엔 한적한 산과 청량한 바다가 더욱 그립기만 하네요. 코가 뻥 뚫리게 숨이라도 크게 들이마시면서 기억 속에는 여전한 자연의 냄새라도 맡고 싶습니다. 매번 풍경을 접하는 TV에서 향기까지 전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벌써 십 년 전인 2011년 전반기가 지나갈 쯤 삼성전자종합기술원 김종민 박사팀과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진성호 교수팀이 1만 가지 향기를 낼 수 있는 TV 기술을 개발했다는 소식이 들렸었습니다. 온갖 TV 프로그램에서 나는 향기를 맡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한껏 들떴던 기억이 있는데 아직 이후의 얘기는 들리지 않네요.

 

향기를 내는 TV의 원리를 간단하게 설명하면 전자코로 감지한 화학 성분의 정보를 전송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냄새의 경우 색상처럼 기본 분자 없이 하나하나 조각조각 퍼즐을 맞추듯 향기 매트릭스를 조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전자코 기술은 1987년 첫 등장 이래 이미 보건과 식품, 안보 등의 분야에서 활용 중입니다. 보통의 모든 세포가 방출한다는 휘발성 유기화합물(Volatile Organic Compounds, VOCs)의 측정 및 분석에 주로 이용하는데 근자에는 보건 분야에서 부각하고 있다 하네요. 

 

요새 뉴스에도 소개된 암 진단이 바로 그것입니다. 지난달 미국 임상종양학회의에서 혈액샘플에 있는 췌장암 및 난소암 세포를 100% 근접 정확도로 구별한 전자코 소식이 들렸습니다. 펜실베이니아 의과대학의 연구진들 사용한 이 전자코는 일반 세포와 암 세포 간 미세한 VOCs 조성차를 파악할 수 있답니다. 난소암 환자 95%, 췌장암 환자는 90%의 정확도로 20분 내에 혈액 패턴차를 찾아낼 수 있다니 그저 놀랍기만 하네요.
 

이제 고개를 당겨 우리나라의 최근 이슈를 살피겠습니다. 부산대학교 나노과학기술대학 나노에너지공학과 오진우 교수 연구팀과 광메카트로닉스공학과 한동욱 교수 연구팀은 지지난달 과일 신선도 판별용 휴대 전자코를 선보였습니다. 기존에 쓰던 후각 수용체 대신 유전공학 기반의 친환경 바이오물질을 사용한 게 차이점이고요.

 

지난 2019년 10월에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진단치료기연구실 연구팀과 분당 서울대병원이 인간의 날숨에서 폐암세포 배출물질을 검출해 폐암을 진단하는 내용의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얼마 전까지 진단 정확도 75% 정도로 알려졌으니 지금은 기술이 한층 더 진보해 정확도도 높아졌겠죠.   
 
국제학술지인 네이처의 자매지 '네이처 머신 인텔리전스'는 작년 초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미국 반도체업체인 인텔과 코넬대 신경 생리학자들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전자코를 대량 양산하고자 냄새 맡는 반도체칩을 연구 중이고요. 

 

로이히(Loihi)라는 이름이 붙은 이 뉴로모픽 칩은 인간의 뇌 신경망과 유사하게 각각의 정보를 동시에 받아들여 계산하는 병렬 연산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는 직렬 연산 방식이고요. 이 칩은 인간이 냄새를 맡을 때 뇌 신경망에서 이뤄지는 과정을 수학적 알고리즘으로 바꾸는데 냄새 간 간섭이 있어도 열 가지 이상의 냄새 구분이 가능하답니다.

 

이렇게 거창한 목적의 전자코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지금 필요한 건 반강제 외출금지를 당한 지구인들 대신 자연의 냄새를 맡아전달해주는 전자코. 우리 대신 여기저기 누비면서 실컷 킁킁거려주는 날이 언제나 올까요.

 

/이슈에디코 전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