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좋아하는 김수경의 영화·씨네필 관련 이모저모 이야기'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주의) 연상호 감독하면 대다수 사람이 떠올리는 징크스가 있습니다. 한 작품이 잘 되면 다음 작품은 그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것인데요. '부산행' 이후 '염력'과 '반도'에 이어 넷플릭스 콘텐츠 '선산'. 더 말을 얹지 않아도 아시겠죠. 그렇다 보니 지난해 개봉한 '얼굴'이 소소하게 흥행하면서 올해 군체를 걱정하는 시선도 없지 않았고요. 저도 반신반의하며 극장에 앉았는데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걱정은 내려놓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짚을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요. 극히 주관적인 의견이지만, 몇 가지 저의 호불호 포인트를 한번 풀어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좋았던 점은 영화 속 감염체입니다. 군집 형태의 생명체가 모티프(motif)인데, 황색망사점균과 같은 점액질을 통해 집단으로 생각을 공유하고 함께 진화합니다. 초반엔 간판 속 이미지와 사람을 구별 못 하던 이들은 점차 사람을 식별하고 생존자의 행동을 따라 하더니, 나중엔 언어까지 구사합니다. 이런 진화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영화 끝까지 눈을 떼기가 쉽지 않았고요. 현대무용팀 세 팀을 따로 고용해 완성한 감염체의 군무와 움직임은 그 자체로 또 다른 볼거리입니다. 속도감도 넘쳐서 10분 만에 감염 사태가 발생하고 30분 안에 주요 인물들이 모두 얽히죠. 인간 쪽의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감염체는 집단지성으로 점점 진화하는데, 정작 같은 집단지성을 쓰는 인간은 결국 이기적인 개인주의 탓에 퇴화합니다. 인간보다 감염체가 더 낫지 않나 싶은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는 구조죠. 서영철(구교환 扮)도 꽤 인상적인 빌런입니다. 단순히 악당으로 군림하기보다 머리를 씁니다. 자신이 백신이라고 공표해 사람들이 오히려 자신을 밖으로 내보내게끔 유도하는 모습을 보며 진짜 '미친X(긍정적 의미)' 같다고 내적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럼에도 허술했던 부분이 몇몇 보였습니다. 사실상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던 감염체가 후반부에 '옷 하나'로 허무하게 무너집니다. 최현석(지창욱 扮)이 건물 안에서 싸울 때 최현석 옷에 잔뜩 묻은 점액질 탓인지, 감염체가 그를 공격하지 않는 걸 목격한 권세정(전지현 扮)은 감염체 옷을 입고 탈출하죠. 그 옷 때문에 감염체 무리에서는 '앤트밀(선발 개미의 정보 교류의 오류로 수천 마리 개미무리가 끝없이 원을 그리는 현상)'이 일어났고 순식간에 퇴화하더니 서영철이 죽게 되는 원인을 제공합니다. 특히 서영철은 감염체들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받아보고 있었는데, 그 옷에 대한 정보는 왜 몰랐을까요. 납득이 쉽지 않았습니다. 민폐 캐릭터 문제도 짚고 싶습니다. 학생 이소은(이담희 扮)을 수년째 괴롭히는 일진 여학우는 영화의 3분의 2지점까지 살아남아 전형적인 재난물 민폐를 일으킵니다. 이름도 없는 이 캐릭터가 굳이 생존자 무리에 포함돼야 했는지, 그리고 민폐 캐릭터는 남녀가 같이 존재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았습니다. 서영철이 이 모든 걸 벌이게 된 계기도 다소 약합니다. 대학교수였던 아버지 서경석이 연구비 착취 의혹으로 자살 전, 자신을 고발한 권세정을 향해 소통 부족을 호소했는데요. 그걸 본 서영철은 복수를 계획했다는 설정입니다. 새로운 인류의 탄생을 갈망한다는 거대한 야망의 출발점치고는 조금 가볍게 느껴졌습니다. 그럼에도 군체는 충분히 재밌는 영화입니다. 곳곳 빈틈들이 영화를 즐기는 걸 방해할 만큼 크지는 않았거든요. 독특한 좀비 설정과 속도감, 그리고 인공지능(AI) 시대에 인간의 개별성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연상호 감독 특유의 질문이 살아있는 작품입니다. /이슈에디코 김수경 기자/
이달 21일 국내에서 개봉하는 연상호 감독의 새 좀비 영화 '군체(群體, 단일 개체가 아닌 여러 개체가 모여 이루는 집합체를 뜻하는 단어)'가 예매량 20만 장을 돌파하며 흥행 기대감을 키우고 있습니다. 군체는 정체불명 감염사태로 봉쇄된 건물 안에서 고립된 생존자들이 감염자들에 맞서 벌이는 사투를 그린 작품인데요. 지난 2016년 1000만 관객을 넘긴 '부산행'부터 2020년 '반도'에 이어 올해 세 번째 좀비 시리즈로 찾아온 연상호 감독은 군체에 대해 "처음으로 좀비가 주인공인 영화"라고 언급했습니다. 20일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군체 기자간담회에는 칸 영화제에서 7분간 기립박수를 받고 돌아온 연상호 감독과 배우 ▲전지현 ▲구교환 ▲지창욱 ▲신현빈 ▲김신록이 함께했습니다. 군체 속 좀비는 기존 우리에게 익숙한 감염자가 아닙니다. 생각할 수 있는 데다, 다른 감염자들과 정보를 공유하면서 점점 고도화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영화 초반 제대로 걷지도 못하던 이들 좀비는 후반부에서 인간의 언어까지 구사하죠. 늘 휴머니즘과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고민했던 연 감독은 이런 좀비의 형태를 인공지능(AI)에서 떠올렸습니다. AI가 구동되는 원리가 재밌어서 파다 보니, 보편적인 사고의 총합이 세질수록 인간의 개별성이 무력해진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는 연 감독은 AI가 발달한 시대에서 가장 인간다운 건 '개별성'이 아닐까 싶었답니다. 생명공학자 권세정 역을 맡은 전지현 씨도 "군체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동시적인 연결성"이라며 "기존 좀비는 개별적으로 통제 불능한 상태였지만, 이 영화에서는 네트워크로 실시간 진화하고 큰 덩어리로 움직이는 게 차별화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앞서 제작한 부산행과 반도와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는데요. 부산행과 반도가 각각 기차와 반도라는 공간에 집중했다면, 군체는 좀비라는 존재 자체를 정면으로 살핀 것이죠. 연상호 감독은 "이 영화는 집단지성 갖고 있는 좀비와 인간의 대결"이라며 "영화 초반 속 좀비는 아주 원시적인 상태지만 '집단지성'의 힘으로 급격하게 진화하는 반면, 인간 쪽도 집단지성을 사용함에도 퇴화한다"고 부연하고요. 이렇게 진화하는 좀비 움직임을 구현하기 위해 스턴트맨과 브레이크 댄서팀 외에 현대무용팀을 세 팀이나 따로 섭외했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상상으로만 있던 좀비를 완성한 기분이었다네요. 군체 캐릭터들의 설정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세정은 과감한 액션보다는 감염자들의 진화 패턴을 읽고 룰을 파악하는 인물이죠. 연 감독이 전지현 씨의 클로즈업을 유독 많이 쓴 이유도 여기 있었습니다. 그는 "이 영화는 룰이 계속 바뀌는데, 관객이 그 룰을 놓치면 흥미를 잃는다"며 "매번 새로운 룰을 깨닫는 세정의 얼굴을 문장의 마침표나 쉼표처럼 반복적으로 넣었다"고 답했습니다. 구교환 씨가 열연한 서영철은 과거 바이오 기업에 근무했던 천재 생물학자로 새로운 인류의 탄생을 갈망하는 인물입니다. 빌딩 안 감염 사태 중심에 있는 그는 좀비들과 동선으로 연결되는, 일반적인 빌런과는 결이 다르죠. 그는 "아이들(좀비무리)의 동선과 직접 연결되는 서영철 연기를 하면서 100여 명이 한꺼번에 연기하는 느낌을 받았다"며 "좀비 배우들의 움직임을 먼저 보고 영감을 받아 연기하거나 내가 연기한 뒤 가이드를 부탁하는 등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회상했습니다. 극 중 최현석(지창욱 扮)과 최현희(김신록 扮)의 관계 역시 돋보입니다. 현석이 하반신 마비인 현희를 업고 이동하는 장면이 영화 거의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데요. 이에 대해 김신록 씨는 "현이는 현석의 누나이자 장애인인데 전사에서 언급되지 않아도 이 남매의 정서가 어떻게 드러날 수 있는지 고민했다"며 "내내 신체적으로 가깝게 붙어있다 보니 친밀성이 직간접적으로 표현됐다"고 응대했습니다. 지창욱 씨 역시 촬영 내내 붙어있다 보니 오히려 의지하고 힘이 났다고 말을 보탰고요. 신현빈 씨가 맡은 공설희는 세정의 전 남편인 한규성(고수 扮) 현 아내이자 또 다른 생명공학자입니다. 통상 전처·현처 구도와 달리, 이 영화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가장 신뢰하는 파트너죠.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지만 가장 같은 걸 원했던 사람들'이라는 신현빈 씨의 설명이 인물 관계를 단번에 정리해 줬습니다. 군집 형태의 생명체들은 항상 변이를 만든다고 합니다. 이는 약점이 생기면 전부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살아남으려면 다른 무언가를 남겨야 하는 것이고요. 연 감독은 이런 생명체의 특성이 사회가 하나의 의견으로 쏠릴 때도 소수 의견을 보호해야 한다는 메시지와 맞닿았다고 짚었습니다. 엔딩 역시 그런 의미로 넣었다고 하네요. 늘 장르물로 시대를 읽어온 연상호 감독이 이번엔 AI 시대 속 인간의 개별성을 묻고자 합니다.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군체는 내일(21일)부터 전국 극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슈에디코 김수경 기자/
직전 '짜사이'에서는 우리가 익히 알지 못했지만 유사 분야(?)에서 활동 중인 뮤지션들의 얘기를 했었죠. 이어지는 이번 타이어 편에서는 더욱 편한 읽을거리로 방향을 완전히 틀어버린 연예인들을 살피려고 합니다. 지난 1971년, 열두 살 소년 피터 오스트럼(Peter Ostrum)은 영화 '초콜릿 공장(Willy Wonka & the Chocolate Factory)'에서 찰리 버킷 역을 맡았습니다. 진 와일더(Gene Wilder)와 호흡을 맞춘 이 영화는 이후 세대를 넘어 사랑받는 고전이 됐죠. 촬영이 끝나고 제작사는 오스트럼에게 3편 출연을 제안했습니다만 그의 시선은 다른 곳에 박혀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사준 말을 돌보다 만난 수의사의 모습에 반한 것이 계기였고요. 코넬대 수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뉴욕주 라우빌에서 40년간 수의사로 일하다 2023년 은퇴했습니다. 3개월마다 들어오는 영화 로열티는 약 10달러였다고 하니 저 같은 소시민들이 보기엔 영화에 나오는 골든 티켓을 그냥 버린 거나 마찬가지겠죠.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모두가 증오했던 조프리 바라테온. 그 역할 덕에 확실한 인지도를 쌓은 배우 잭 글리슨(Jack Gleeson)은 시즌 4를 끝으로 연기를 은퇴하고 아일랜드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또 1980년 영화 '샤이닝'에서 잭 니콜슨의 아들 대니 역을 맡았던 대니 로이드(Danny Lloyd)는 이 한 편을 남기고 일찍 영화계를 떠나 켄터키주의 한 대학에서 생물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됐고요. 방향이 반대인 경우도 있는데요. 한국계 미국인 켄 정(Ken Jeong)은 노스캐롤라이나대 의대를 졸업한 내과 전문의로 카이저 퍼머넌트 병원에서 7년간 환자를 진료하면서도 틈틈이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에 올랐죠. 영화 '행오버(The Hangover)'를 통해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뒤 배우로 본격 전향했지만 지금도 의사 면허를 유지하고 있답니다. 공연 중 관객이 발작을 일으키자 무대에서 뛰어내려 응급처치를 한 일화는 너무 유명하고요. 1996년 영화 '마틸다'의 주인공 마라 윌슨(Mara Wilson)은 '34번가의 기적'에도 출연한 할리우드 대표 아역 배우였습니다. 청소년기를 거쳐 뉴욕 대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했지만 오히려 극심한 무대 공포증을 경험해 글쓰기로 방향을 틀었다죠. 회고록 'Where Am I Now?'를 내놓으며 결국 작가가 됐고요. 정작 연기와 무대에 공포를 느껴야 하는 연기자들은 꿋꿋하게 자리는 지킨다는 게 함정 R&B 네오소울의 아이콘 에리카 바두(Erykah Badu)는 2010년 이후 정규 앨범을 내지 않고 있습니다. 대신 둘라(Doula)로 활동하며 산모와 아기를 돕고 있죠. 참고로 미국에서 많이 접할 수 있는 직업인 둘라는 출산 등 사람의 건강과 관련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가입니다. 이런가 하면 영화 '그렘린'과 '리지몬트 하이의 수업 시간'의 히로인 피비 케이츠(Phoebe Cates)는 1994년 배우 케빈 클라인(Kevin Kline)과 결혼한 뒤 사실상 은퇴한 상태죠. 이후 뉴욕 맨해튼 카네기 힐에 '블루 트리(Blue Tree)'라는 이름의 부티크를 열고 조용히 가게를 운영 중이랍니다. 이번 편 마지막 소개 인물은 'Let's Stay Together'를 내세워 1972년 빌보드 1위에 오른 소울 음악의 전설 알 그린(Al Green)으로, 1976년 목사 안수를 받고 멤피스에 풀 고스펠 태버나클 교회를 세운 그의 설교는 지금도 끝나지 않았죠. 최근 한국에서도 세컨드 커리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통계청과 KB금융그룹 경영연구소가 지난 2023년 발표한 자료대로라면 한국인의 주된 직장 퇴직 평균 연령은 49.3세, 기대수명은 83.6세. 이 수치를 고려하면 퇴직 후에도 30년 이상의 시간이 남는 만큼 '제2의 직업'은 선택이 아니라 반강제 필수가 된 시대입니다. 타이어는 그 쓸모를 온전히 다하기 전까지 한 방향으로만 굴러가지 않습니다. 꺾이고 틀어지다가 때로는 완전히 반대편으로 방향을 돌리기도 하죠. 중요한 건 어떻게든 굴러가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이슈에디코 정금철 기자/
문득 거실에 있는 전신거울이 눈에 띄어 찍었습니다. 그저 비치는 모습을 담기만 할 뿐 거울 그 자체가 담긴 적은 없었을 거라 생각하니 이상하게 측은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모든 것을 반사해 비추는 피사체라니 이색적이기도 하고요. 이번 편에서는 전체를 비추며 예전과 다른 내 모습을 돌아보고 회상에 잠기게 하는 전신거울처럼 시대의 흔적을 사명에 새긴 기업들의 과거를 살피려 합니다. 기업에 있어 전신거울 역할을 하는 건 어쩌면 바로 옛 이름이 아닐까요? 지금은 알파벳 두세 글자로 줄어든 대기업 이름들이 태동할 때는 짧지만 친절한 설명과도 같았거든요. 단출했던 과거, 성장으로 흘러간 역사 오늘은 5월 9일이라 이 날짜부터 얘기를 시작하겠습니다. 76년 전 바로 이날, 서울 용산구 갈월동 소재 동방청량음료합명회사라는 작은 업체에서 사이다 한 병이 세상에 나왔죠. 지난 1949년 12월 성(姓)이 모두 다른 7명의 주주가 국산 사이다를 만들자는 의지를 모아 설립한 회사의 첫 작품이 칠성사이다입니다. 당초 일곱 주주의 성이 모두 다르다는 데서 칠성(七姓)이라 했다가 북두칠성처럼 번영하자는 뜻을 담아 칠성(七星)으로 바꿨다네요. 이후 동방청량음료는 칠성음료공업, 칠성한미음료를 거쳐 1974년 롯데에 인수되면서 지금의 롯데칠성음료가 됐습니다. 사명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칠성사이다라는 제품명은 76년째 그대로고요. 이런 사례는 꽤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의 시작은 1896년, 서울 종로 배오개에 연 포목점 '박승직상점'으로 오늘날 두산그룹의 모태가 됐죠. 창업주의 아내 정정숙은 1915년 '박가분(朴家粉)'이라는 한국 최초의 화장품까지 만들어 팔며 큰 인기를 끌었고요. 기아는 자전거 바퀴 먼저 굴렸습니다. 1944년 김철호가 서울 영등포 문래동에 세운 경성정공주식회사는 자전거 부품을 만드는 회사였죠. 1952년 기아산업으로 이름을 바꾸고 한국 최초 자전거 완제품 '3000리호'를 내놨습니다. 삼천리 금수강산을 누비자는 통일의 염원을 제품명에 새겨 판매하다가 1979년 자전거 부문을 분사하면서 지금의 삼천리자전거가 됐고, 기아는 자동차로 방향을 완전히 틀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CJ의 출발점은 제일제당이죠. 1953년 11월 5일, 부산 공장에서 국내 처음 흰 설탕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전후 한국에서 설탕은 600g 한 근에 300환, 같은 무게의 소고기보다 두 배나 비싼 귀한 물자였고요. LG는 이름의 변천 자체가 하나의 역사입니다. 1947년 부산에서 락희화학공업사로 출발해 국산 화장품 '럭키크림'을 만들었고, 1958년에는 금성사가 설립되면서 이듬해 국내 최초의 국산 라디오 'A-501'이 탄생했죠. -SS501의 U R Man을 이 라디오로 들으면 새로운 감상에 젖지 않았을까 하는 세상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락희, 럭키, 금성, 럭키금성. 지금의 LG라는 두 글자 안에는 그 모든 시간이 접혀있는 겁니다. 포스코(POSCO, POhang iron and Steel COmpany)의 옛 이름은 국가 산업화의 목표가 거의 그대로 박혔죠. 1968년 설립된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는 경북 포항에서 국가가 필요로 한 종합제철 산업을 영위하려는 의지의 사명이었습니다. 낯설던 과거, 다시 만들어지는 흐름 낯선 첫 이름들은 얼마든지 더 나열할 수 있죠. SK의 출발점인 선경직물은 1953년 한국전쟁의 폐허 속 수원에서 세워졌는데 '선경(鮮京)'이라는 이름 자체가 일제강점기 합작회사인 선만주단의 '鮮'과 교토(경도)직물의 '京'을 합친 것이었습니다. 한화는 1952년 부산에서 출발한 한국화약주식회사, 삼성그룹의 출발점은 1938년 대구의 삼성상회였고 아모레퍼시픽은 태평양화학공업사라는 이름으로 화장품과 화학의 경계에서 자랐습니다. KT는 1981년 체신부의 통신사업을 분리해 만든 한국전기통신공사였죠. 선경직물, 한국화약, 삼성상회, 태평양화학공업사, 한국전기통신공사. 지금의 SK, 한화, 삼성, 아모레퍼시픽, KT. 이름이 짧아진 만큼 사업의 반경은 넓어졌지만, 긴 이름 속에 담겨 있던 시대의 솔직함은 오히려 사라졌습니다. 최근에는 이름을 바꾸는 흐름이 다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올해 30주년을 맞은 잡코리아는 올 1월 사명을 '웍스피어(Worxphere)'로 바꾸면서 인공지능(AI) 기반 인적자원(HR, Human Resource) 테크 그룹으로의 전환을 선언했고, 현대엔지니어링은 잇따른 중대재해 이후 이미지 쇄신 차원에서 지난 4월부터 사명 변경을 추진 중이죠. 과거의 사명 변경이 '무엇을 만드는가'에서 '우리는 누구인가'로 넘어가는 과정이었다면, 근자의 리브랜딩은 '우리는 어디로 향하는가'를 선언하는 행위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네요. 동방청량음료 등 과거의 사명은 분명 낯설지만 이 이름들이 있었기에 현재 익숙한 기업들의 전신을 다시 돌아볼 수 있겠죠. 전신거울은 만들어진 순간부터 지금까지 비추는 대상 그대로를 비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울에 왜곡이 있으면 모두에게 바른 모습을 비추지 못합니다. 우리 기업들이 왜곡된 모습으로 보인다면 거울 앞에 선 기업 자체에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 거겠죠. 우리 기업들의 긴 이름들 안에는 대한민국이 무엇을 먹고, 입고, 만들고, 연결하며 커 왔는지에 대한 역사가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겁니다. /이슈에디코 전태민 기자/
올해도 한국 프로야구 열기가 마그마급입니다. 재작년 사상 최초 천만 관중 돌파에 이어 지난해는 1200만 관중을 넘어섰고 올해 관중 동원 초반 기세는 더욱 거셉니다. 이런 와중에 2026 한국야구위원회(KBO)리그 첫 월간 MVP 후보로 총 8명의 선수가 선정됐는데요. 3~4월 월간 후보들은 투수 부문 ▲LG 라클란 웰스·유영찬 ▲삼성 아리엘 후라도 ▲KIA 애덤 올러가와 야수 부문에서 ▲한화 요나단 페라자 ▲SSG 박성한 ▲삼성 류지혁 ▲KIA 김도영입니다. 저는 이 가운데 아시아쿼터로 합류한 LG 트윈스의 라클란 웰스를 눈여겨보고 있죠. MVP 후보 선정 기간에 5경기 선발 등판해 2승을 따내는 동안 8일 NC 다이노스 전을 제외한 4경기에서 모두 퀄리티스타트(QS, Quality Start)를 기록했습니다. 이닝 소화와 함께 평균자책점도 1.16으로 이 부문 리그 1위를 찍으며 유독 볼펜 투수들이 혹사당하는 요즘 선발의 미덕을 더욱 빛내고 있죠. 특히나 선발로 제 역할을 했다는 방증인 퀄리티스타트는 투구능력을 종합한 성적표와도 같아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표입니다. 6이닝 이상 던지면서 자책점을 3점 이하로 억제했을 때 부여되는 이 기록은 지난 1985년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의 스포츠 기자 존 로(John Lowe)가 고안했죠. 당시 9이닝 전체를 다 소화하는 완투가 줄고 투수들이 분담하는 역할이 변하던 시기에 감독들은 선발투수가 6이닝은 책임져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고 존 로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존 로는 퀄리티스타트에 대해 '투수가 제 몫을 했는지를 정확히 보여주는 지표'라고 설명했고요. 이 문장의 핵심은 '제 몫'으로 퀄리티스타트는 승리와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투수가 퀄리티스타트로 마운드를 내려와도 타선에서 점수를 내지 못하면 패전투수가 될 수도 있죠. 경기 승패는 과정이 만드는 인과와 맥을 따르는 게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퀄리티스타트는 승패라는 결과를 걷어낸 채 오직 과정의 질만 들여다보는 지표로, 근래 스포츠 경기에서 흔히 보고 듣는 '졌지만 잘 싸웠다'는 말을 수치화한 것일 테고요. 야구장 바깥의 퀄리티스타트 용어만 다를 뿐 퀄리트스타트는 우리 사회 곳곳에 닮은 구조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의료 분야의 경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2001년부터 시행 중인 요양급여 적정성 평가를 언급할 수 있죠. 병원이 환자를 진료한 뒤 청구하는 진료비가 적정한지, 의료 서비스의 질이 일정 수준 이상인지를 따지는 제도로 수술 전 예방적 항생제 사용, 급성심근경색 치료, 뇌졸중 대응 등 여러 항목에 걸친 평가 후 결과에 따라 진료비를 가감합니다. 일정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병원의 기준선으로 잘한 병원은 인센티브를 주고 미흡한 병원에는 삭감 조치가 뒤따르는 동시에 부당 청구 적발 시 환수와 행정처분까지 이어지고요. 건설업에서는 건설산업기본법으로 기준을 잡습니다. 시공 품질에 대한 기준을 명시하고, 이를 충족하지 못하면 영업정지라는 제재를 가하죠. 영업정지 기간에는 신규 수주를 전면 차단하고 처분 이전 체결한 기존 공사만 할 수 있습니다. 기업 경영 영역에서는 법이 직접 제 몫을 정의하죠. 상법 제382조 제2항은 회사와 이사의 관계를 위임에 관한 규정으로 본다고 못 박았고, 제382조의3은 이사의 충실의무를 명시했습니다. 이사는 회사의 일을 맡아 처리하는 사람이니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를 기울여서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이른바 선관주의의무로, 법령이나 정관을 위반하거나 임무를 게을리 하면 동법 제399조에 의거해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하죠. 이사회 의결 없이 독단적으로 중대한 계약을 맺은 공기업 임원이 손해배상 책임을 지고, 계열사 부실대출을 방치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금융기관 임원에게 선관주의의무 위반이 인정된 판례가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상법 개정을 통해 이사의 충실의무가 회사뿐 아니라 주주에게까지 확장되며 기준이 높아졌죠. 숫자로 재는 퀄리티스타트 역시나 이름은 다르지만 투자의 세계에도 퀄리티스타트가 있습니다. 1966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윌리엄 샤프(William Sharpe) 교수는 펀드매니저가 더 큰 위험을 감수하고 수익을 거뒀는지, 아니면 시장을 보는 실력에 기인한 것인지 가리는 지표를 만들었죠. 위험 한 단위당 얼마만큼 초과 수익을 올렸는가를 측정하는 샤프 비율(Sharpe Ratio)은 수익률이라는 화려한 결과가 아니라 수익을 만든 과정의 효율성을 따집니다. 예를 들어 펀드 A가 연 12%, 펀드 B는 10%의 수익률을 시현했더라도 A가 수익을 내고자 훨씬 위험한 자산에 투자했다면 가치를 다르게 두는 거죠. 무위험 수익률이 5%이고, A의 수익률 변동성(표준편차)이 10%, B의 변동성이 5%라면, 위험 대비 수익의 효율은 B가 높습니다. A의 샤프 비율은 0.7, B는 1.0으로 B가 더 적은 위험을 감수하고도 더 안정적인 초과 수익을 올린 셈이죠. 샤프 비율 산출 공식은 (수익률-무위험 수익률)÷수익률의 표준편차이므로 A는 (12%-5%)÷10%=0.7, B는 (10%-5%)÷5%=1.0이 나옵니다. 샤프 비율이 1 이상이면 양호한 투자, 0 이하면 투자 고려 대상에서 빠진다는 게 통상적인 기준이고요. 하지만 요즘은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큰 이익을 바라는 사람들이 많아서 91세 고령의 윌리엄 샤프 교수가 통탄할 듯합니다 야구의 퀄리티스타트, 의료의 적정성 평가, 건설의 시공 품질 기준, 상법의 선관주의의무, 투자의 샤프 비율 모두 결과가 아닌 과정에 기준선을 긋습니다. 선 위와 아래로 구분하는 승리나 수익이라는 최종 결과물에 집중하지 않고, 이르는 과정이 최소한의 품질을 갖췄는지 따지는 것. 존 로가 퀄리티스타트라는 기준을 만든 것은 선발투수가 제 몫을 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기준은 신뢰를 만들죠. 그리고 신뢰는 곧 제 몫을 하고 있으리라는 믿음이고요. 왠지 우로보로스(οὐροβόρος, Ouroboros)가 연상되는 문장이지만 세상사 꼭 끝이 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요 그런데 기준은 있되 페널티가 사실상 작동하지 않는 영역이 있습니다. 기준선 아래로 내려가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곳. 퀄리티스타트를 찍지 못해도 계속 선발 등판이 보장되는 기이한 리그가 우리 사회에 존재합니다. 이 얘기는 다음 편에서 이어가도록 하죠. /이슈에디코 정금철 기자/
동네 뒷골목인지 작은 길가인지 버려진 타이어를 무심코 한참 들여다봤습니다. 본디 검은색에 쉴 틈 없이 닳아 거무튀튀 지친 외관에 그래도 원형이라고 아무 장식 없이 구르다가 쓸모를 다해 쓰레기 더미에서 나뒹구는 것을 보니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네요. 매일매일 지쳐도 살리고 살기 위해 쉼 없이 굴러야 하는 우리 인생과 닮았다 싶었습니다. 어제 가볍게 술잔을 기울인 영향이 남았는지 아직까지 감상적인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 절대 아닙니다 닳으면 갈아 끼우고, 펑크가 나면 때우고, 그래도 안 되면 새로 바꿔서라도 움직여야 어디에든, 어디로든 향할 수 있으니까요. 업무 추진을 위해 잦은 이동을 감수해야 하는 건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국내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최민희(남양주갑) 국회의원의 업무용 차량 타이어에 쇠젓가락이 박혀 있었다는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수사에 나서는 일이 있었죠. 지난달 6일 경기 남양주시 다산동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세워둔 의정활동 차량을 이튿날 운행하던 중 타이어 공기압 경고등(TPMS)이 켜졌고, 카센터 점검 과정에서 한쪽 끝이 뾰족하게 갈린 15㎝ 길이의 쇠젓가락이 타이어에 박힌 것을 발견했답니다. 의원실 측은 고의 훼손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경찰이 확보한 CCTV 영상에는 수상한 인물이 포착되지 않았고 손상 부위가 타이어 바닥면 쪽이라 외부에서 일부러 찔러 넣기 어려운 구조였다네요. 경찰은 주행 중 도로 위 이물질이 우연히 박혔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은 가운데 쇠젓가락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 의뢰한 상태로 수사를 이어가는 중입니다. 실제로 타이어에 못, 나사, 금속 조각 같은 이물질이 박히는 일은 생각보다 흔하죠. 타이어 펑크의 가장 잦은 원인이 바로 이 이물질 관통이니까요. 현재 승용차에 보편화된 튜브리스 타이어는 이물질이 박혀도 공기가 서서히 빠지는 특성이 있어 운전자가 바로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보급이 늘고 있는 런플랫 타이어는 공기가 완전히 빠져도 시속 80㎞ 이하로 약 80㎞를 주행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제품이고요. 고의든 우연이든 한바탕 소란을 일으킨 최 의원의 타이어보다 훨씬 더 먼저 그리고 훨씬 더 큰 소란을 만들었던 타이어가 있습니다. 당시 아이돌에 관심이 없던 저도 이름을 알았을 정도인 조이 매킨타이어(Joey McIntyre). 그렇습니다. 1990년대 전 세계 대표 보이그룹 뉴키즈 온 더 블록(New Kids on the Block, 이하 NKOTB)의 막내. 추억 안에 봉인했던 NKOTB는 놀랍게도 아직 현역이었습니다. 또 나만 몰라? 재작년 앨범 'Still Kids'를 발매한 이들은 오는 10월까지 라스베이거스 돌비 라이브 레지던시를 연장했다고 하죠. 레지던시(residency)는 특정 행사장에 상주하면서 정해진 기간에 반복 공연하는 방식으로 한 장소에 입주해 관객이 찾아오게 하는 공연 방식이고요. 조이 매킨타이어 개인은 지난해 솔로 앨범 'Freedom'을 내고 단독 투어를 돌았으며, 미국 스트리밍플랫폼 Roku에서 제작한 크리스마스 영화에도 출연했습니다. 같은 그룹 멤버 도니 월버그(Donnie Wahlberg)는 미국 방송사 CBS의 드라마 'Blue Bloods' 14시즌 출연에 이어 작년에는 스핀오프 'Boston Blue'의 주연을 맡기도 했죠. NKOTB뿐 아니라 이들의 라이벌 백스트리트 보이즈(Backstreet Boys)는 작년에 라스베이거스의 초대형 몰입형 공연장 스피어(Sphere)에서 상주 공연을 열었습니다. 아울러 밀레니엄 앨범 25주년 기념 리이슈 발매와 함께 올해도 스피어 공연을 이어가고 있죠. 같은 시대를 풍미했던 남성 R&B, 팝 그룹 98 Degrees는 앨범 'Full Circle'을 지난해 발매했습니다. 멤버 닉 라쉐이(Nick Lachey)는 넷플릭스 리얼리티 프로그램 '연애실험: 블라인드 러브(Love Is Blind)'의 진행자로 오히려 새로운 세대에게 더 익숙한 얼굴이 됐고요. 여성 힙합, R&B 그룹 TLC 소식도 있습니다. 지난 1999년 앨범 'FanMail'로 정상에 섰던 이 그룹은 2002년 멤버 리사 '레프트 아이' 로페스의 사망이라는 비극을 겪었지만, 남은 두 멤버 T-보즈와 칠리는 듀오로 활동을 지속했죠. 올해는 그룹의 얘기를 담은 뮤지컬 'CrazySexyCool'의 초연도 예정됐습니다. 각 그룹의 공식 사이트와 소속 엔터사들의 보도자료, 영국의 연예·셀러브리티 전문 매거진 Hello Magazine, 미국의 종합 온라인 매체 HuffPost를 통해 어렵사리 파악한 만큼 이들의 모습이 정겹긴 하지만 그저 마냥 반가운 감정으로만 다가오는 건 아니더군요. 기억 속에 멈춘 줄로만 알았던 이들의 부지런한 행보를 보니 폐타이어에 고정했던 시선을 떼고 다시 차들이 북적이는 도로로 눈길을 돌려야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기억이든 시선이든 마음이든 한 곳만 향하면 굳을 수도 있으니까요. /이슈에디코 정금철 기자/
현재 전주시 일대에서는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가 한창이죠. 지난달 29일부터 오는 8일까지 전 세계 54개국 237편을 상영하는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눈에 띈 부대행사 중 하나는 의외로 농심의 '신라면 스튜디오'였습니다. 이 팝업스토어는 '영화의 거리' 중심께 자리를 잡았는데요. 농심은 지난 2024년부터 전주국제영화제 공식 스폰서로 활동하며 매해 페스티벌존에서 이벤트 부스를 운영했습니다. 그러다 올해는 아예 독립된 팝업스토어를 꾸렸죠. 농심 면마케팅팀 이미리 선임은 "매년 조그맣게 팝업을 진행하면서 아쉬웠던 부분이 있었다"며 "올해가 신라면 40주년인 점이 떠올랐다"고 기획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신라면은 40년 전인 1986년 '사나이 울리는 신라면'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등장해 국민 라면으로 자리 잡았죠. 1991년 국내 시장점유율 1위에 오른 뒤 35년째 왕좌를 지키는 신라면의 작년 기준 누적 판매량은 425억 개에 이릅니다. 올해 3월 기준 온라인 소비자 관심도에서도 라면 브랜드 중 1위를 기록했고요. 저는 지난달 30일 직접 신라면 스튜디오를 찾아 '나만의 신라면 만들기'를 체험했습니다. 4000원을 내면 흰색 컵라면 통과 세계 랜드마크·신라면 캐릭터 스티커를 받을 수 있죠. 여기에 해외에서만 판매 중인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 협업 신라면도 증정하는데 ▲스파이시 퀸(기존 신라면보다 매운 맛) ▲슈퍼스타(햄치즈 맛) ▲햄버거(햄버거 맛) 중 한 가지를 고를 수 있습니다. 그다음 신라면과 튀김우동 중 면, 스프를 각각 하나씩 선택하고 너구리 모양 어묵, 맛살 어묵, 튀김, 파 등 토핑을 마음껏 넣을 수 있는데 토핑을 너무 많이 담으면 맛이 없다니 욕심은 금물입니다. 이렇게 완성한 컵라면은 직원이 즉석으로 밀봉해 주고, 가운데 테이블에서 용기에 그림을 그린 후 스티커를 붙이면 진정한 나만의 라면이 완성되죠. 농심은 팝업스토어 외에도 신라면 40주년을 주제로 오세연 감독의 '라면이 뿔기 전에', 김태엽 감독의 '라면이 떨어지면'이라는 제목의 단편영화 2편을 전주영화제 관객들에게 선보입니다. '라면이 뿔기 전에'는 할머니 '영옥(차미경 扮)'과 어색하게 서예학원에 간 손녀 '지수(최지수 扮)'가 갑자기 사라진 할머니를 찾아 헤매다가 라면을 배달하러 온 낯선 여자와 마주치며 벌어지는 얘기를 담았습니다. 오세연 감독은 재작년 1월부터 본격적인 홍보를 시작한 신라면의 새 카피 '인생을 울리는'이라는 문구에서 이번 작품을 착안했다는데요. 신라면이 인생을 울린다면, 나를 울리는 존재는 누구일까라는 물음에 자연스레 할머니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또 붓글씨 디자인 '신(辛)'을 보며 서예학원을 배경으로 정했고요. '라면이 떨어지면'은 엄마가 떠난 집에 남은 어린 남매의 얘기입니다. 오빠는 동생에게 선반에 가득한 라면을 다 먹으면 엄마가 돌아올 거라고 거짓말을 하며 동생을 달래지만 선반 바닥이 보일 때까지 엄마는 돌아오지 않죠. 그때 등장한 누군가가 또 다른 얘기를 끌고 갑니다. 두 작품 모두 신라면이 긴 시간 한결같은 맛으로 늘 곁에 있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죠. 이달 2~3일 CGV 전주고사점, 5일 메가박스 전주객사점에서 상영하는데 영화제 이후에도 별도 플랫폼으로 공개할지 내부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이에 대해 이미리 선임은 "이번 팝업스토어와 신라면 단편영화를 통해 신라면의 새로운 가치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제언하네요. 40주년 신라면 팝업스토어를 오는 5일까지 운영할 예정이라니, 영화도 보고 나만의 신라면도 만들며 내 인생을 울리는 존재들의 가치를 되새기는 건 어떨까요? 참고로 판매 수익금 전액은 전주시에 기부된다고 합니다. /이슈에디코 김수경 기자/
냉장고를 열어 먹을 것을 뒤지던 중 지난달 마트 과일 코너에 먹음직스럽게 진열돼 끌리듯 구매했던 대저토마토를 찾았습니다. 대저토마토를 구매했던 지난달 21일 저녁, 웹서핑을 하다가 부산 강서구 대저동에서 이날 제23회 대저토마토축제가 열렸다는 소식을 접한 기억이 확 떠오르네요. 그렇습니다. 사놓기만 하고 기억도 하지 못한 채 한 달 훌쩍 넘는 날짜가 지나버렸던 것입니다 하하ㅠㅜ 짭짤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대저토마토는 3월 중순부터 4월까지 당도가 가장 높은 시기로 요리보다 생과가 더 맛있다고 합니다. 냉장보관 시 보관기한은 일주일 정도라는데 저와 한 달을 함께 한 대저토마토는 과감하게 포기해야겠군요. 대저토마토를 생전 처음 구입한 날, 대저토마토축제도 축제지만 대저동에서 재배해 대저토마토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신기하게도 같은 씨앗을 다른 지역에 심으면 우리가 아는 대저토마토 맛이 나오지 않는다고 하네요. 낙동강 하구에서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며 만들어진 토양이 특유의 짭짤한 풍미를 내기 때문이죠. 그래서 대저토마토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 지리적표시 제86호로 등록돼 있습니다. 이름이 곧 품질의 보증서인 거죠. 빼앗긴 종자에도 이름은 붙는가 우리가 익히 아는 청양고추는 충남 청양군에서 나는 고추가 아니라 경북 청송의 '청'과 영양의 '양'에서 온 이름이죠. 그런데 이 고추에는 이름 논쟁보다 더 씁쓸한 뒷얘기가 있습니다. 지난 1998년 IMF 외환위기 때 청양고추를 개발한 중앙종묘가 멕시코계 다국적 기업 세미니스에 인수됐고, 이후 미국 몬산토를 거쳐 2018년에는 독일 바이엘에 매각됐죠. 우리가 가장 많이 먹는 매운 고추의 종자 주인이 독일 기업이라 우리 농민이 청양고추를 재배하려면 독일에 로열티를 내야 하는 목 칼칼한 현실입니다. 또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청양고추는 1983년 중앙종묘의 유일웅 박사가 태국 재래종과 제주 재래종 고추를 교배해 개발할 당시 식용 목적의 품종이 아니었답니다. 카레 제조에 필요한 캡사이신 추출용이었으나 시험 재배하던 청송·영양 지역 농가에서 매운탕에 넣으니 맛이 좋다는 반응이 나왔고 횟집에서도 인기를 끌자 식용으로 바뀐 거죠. 물론 충남 쪽은 과거부터 청양 지역에서 종자를 골라 재배했다고 주장하며 2000년부터 축제까지 개최하는 상황이라 논쟁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청양고추가 종자를 빼앗겼다면 겨울 딸기의 대명사 설향(雪香)은 종자 주권을 갖게 된 경우입니다. '눈 속에서 피어나는 향기'라는 의미의 이 이름은 2005년 충남농업기술원 논산딸기시험장에서 개발한 국산 품종에 붙여졌죠. 설향 탄생 전까지 국내 딸기 시장의 85~90%는 일본 품종인 장희(아키히메)와 육보(레드펄)가 차지해 우리 농가는 연간 30억 원이 넘는 로열티를 일본에 내야 했습니다. 설향은 이 두 품종을 교배해 만든 국산 품종입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열매가 많이 맺히는 장희의 장점에 병충해에 강한 육보의 장점을 합친 설향의 보급률이 2007년 28.6%에서 2009년 51.8%로 오른데 힘입어 2021년 기준 국산 딸기 품종의 보급률은 96.3%까지 치솟았죠. 기억이 되는 이름들 어원이 바뀌면서 원래 뜻이 잊힌 사례도 있는데요. 꽃게의 '꽃'은 식물의 꽃(花)이 아니라 뾰족하게 돌출된 지형을 뜻하는 '곶(串)'에서 왔다는 설에 무게가 실립니다. 성호사설에서는 곶해(串蟹)라는 기록이 있거든요. 등딱지 양끝이 곶처럼 뾰족하게 튀어나온 생김새에서 '곶게'라 부르던 것이 발음이 변해 '꽃게'가 됐다는 거죠. 서서갈비는 먹는 자세가 이름이 된 사례입니다. 원조 격인 연남서식당은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가족을 잃은 창업주가 길가에 드럼통 세 개를 깔아놓고 잔술을 팔기 시작한 것이 출발점이었다죠? 뜯어먹기 번거로워 기피하던 저렴한 반찬 겸 안주 소갈비를 서울 대중교통의 종착지 마포에서 배차시간에 쫓기는 버스 기사들이 선 채로 먹고 가며 단골이 됐습니다. 이 드럼통 앞을 거친 수많은 단골들은 변변한 상호도 없던 이 가게를 서서갈비라 부르며 자발적 네이밍을 했고 지금은 서울미래유산에도 등재돼 명성을 유지하는 중입니다. 명성이 아니라 오히려 험상궂은 생김새로 천대받던 아귀는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어부들이 그물에서 꺼내자마자 버렸던 물고기였지만 1960~70년대 신세가 달라졌습니다. 경남 마산 어시장 근처에서 버려지던 아귀를 된장과 콩나물에 넣고 매콤하게 끓여 먹기 시작한 것이 아구찜의 시초로 알려졌죠. 지금은 마산 오동동 아구찜 골목이 전국구 맛집 명소가 됐고, 아귀도 어엿한 고급 어종 대접을 받습니다. 아울러 초당옥수수는 강릉 초당동에서 나는 옥수수가 아니라 초(超)월할 초, 엿(糖) 당 자를 써 당도를 뛰어넘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영어 이름도 Super Sweet Corn이고요. 물론 초당순두부는 허균과 허난설헌의 아버지 허엽 선생의 호(草堂)에서 온 강릉 초당동의 지명이 맞습니다. 이처럼 흥미로운 이름 얘기처럼 가격표도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 주변의 이 귀한 먹을거리들은 모두 한 편의 짧은 서사를 지니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서사가 어떻든 우리가 섭취하는 이 땅의 모든 것은 역사가 인정하는 자연 그 자체의 브랜드겠죠. /이슈에디코 강민호 기자/
강원도 인제군 소양호 상류에서 붕어가 죽고 있습니다. 3월 말부터 시작된 폐사는 한 달 가까이 이어져 육안으로 확인된 것만 수천 마리에 이르고 수면 아래 가라앉은 개체까지 합치면 실제 규모는 가늠조차 어렵답니다. 다른 물고기는 멀쩡한데 붕어만 몸 주변이 붉게 변하고 비늘은 힘없이 벗겨진 채 하얀 배를 드러내며 죽어나간다네요. 40년 넘게 소양호에서 조업해온 어민도 이런 일은 처음이라 하고요. 통상 4~5월은 붕어잡이 최대 성수기라 수억 원대의 내수면 어업인 손실이 예상되지만, 원인조차 규명되지 않은 채 시간만 흐르고 있습니다. 소양호뿐 아니라 이달 6일에는 경기도 수원시 서호천에서도 메기와 붕어 수십 마리가 떠올랐죠. 이곳은 2022년과 2024년에도 같은 구간에서 물고기 집단 폐사가 반복됐지만 지금까지도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지 못하던 와중에 유사한 사례가 다시 발생했네요. 물고기는 죽어서 떠오르는데 원인은 점점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상황이라니… 붕어(魚)의 참극입니다. 그런데 100년 전 오늘, 온 나라를 뒤흔든 다른 붕어도 있습니다. 100년 전 이달, 두 갈래의 붕어 1926년 4월 25일,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창덕궁 대조전에서 53세를 일기로 붕어(崩御)했습니다. 백성들은 돈화문 앞에서 목 놓아 통곡했고, 망국의 상징이던 황제의 죽음에 일제에 의한 독살설까지 나도는 등 비탄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죠. 사흘 뒤인 4월 28일, 보통학교 중퇴 후 일본인 상점에서 고용살이를 하며 조선인 차별에 이를 갈던 서른 살 청년 송학선이 결단을 내립니다. 진고개(지금 충무로) 고서점에서 우연히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본 뒤 총독 암살을 다짐한 송학선은 사진관 근무 중 손에 넣은 양식도 한 자루를 품고 과자 행상으로 위장한 채 사이토 마코토 총독을 노렸죠. 오후 1시 10분경, 순종의 빈소가 마련된 창덕궁 금호문에서 빠져나온 무개차 한 대를 본 군중 가운데 누군가 사이토 총독이 있다고 수군거리자 송학선은 비호처럼 뛰어올라 칼을 휘둘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망자는 국수회 부회장 다카야마였고 총독과 생김새가 비슷한 일본인민회 이사 사토와 이케다는 부상을 입었죠. 재동 쪽으로 피신하려던 송학선을 경찰 수십 명이 추격했지만 저항하던 그에게 쉽게 접근하지 못하던 중 겁에 질린 헌병 두 명이 권총을 겨누자 송 의사는 두 팔을 벌리며 외쳤습니다. "오냐, 쏘아 죽여라." 머리에 상처를 입고 붙잡히는 순간에도 인근 휘문고보 학생들을 향해 만세를 외치라 소리치던 그에게 일본 판사가 재판정에서 "피고는 어떤 주의자인가? 사상가인가?" 묻자 의연했던 송 의사의 답변. "나는 주의자도 사상가도 아니다. 다만 우리나라를 강탈하고 우리 민족을 압박하는 놈들은 백번 죽여도 마땅하다는 것만은 잘 알고 있다." 1심과 2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송 의사는 1927년 5월 1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서른의 짧은 삶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비록 오인으로 본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지만 혈혈단신 필부의 단독 의거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장은 커졌고 금호문 의거는 한 달 반 뒤인 6·10 만세운동의 도화선 중 하나가 됐죠. 사형을 선고받고 교수대에 올라서는 순간까지도 태연하면서도 당당했던 그의 마지막은 일제 앞에서 실로 진정한 붕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죽음 같은 질식, 생명의 호흡 수문을 닫아 물을 가두면 흐름이 멈추고, 흐름이 멈추면 산소가 사라지죠. 침전물이 쌓여 수질이 악화하면 견디지 못하는 개체부터 배를 드러냅니다. 2026년의 붕어는 아직 원인조차 특정하지 못한 환경 탓에 죽어갑니다. 산소 부족인지, 수질 악화인지, 질병인지 단정할 수는 없지만 숨통을 막는 조건이 생명을 앗아간다는 사실만큼은 자명하죠. 100년 전 조선도 그랬습니다. 일제는 경계를 닫고 자유를 막아 숨통을 조였습니다. 일본인 상점에서 멸시를 당하면서도 생계를 위해 버텼던 송 의사도 억압에 질식해 광복의 숨구멍을 찾았을 겁니다. 신문에 실린 흐릿한 사진 한 장으로 총독의 얼굴을 파악하고 거사를 위한 양식도 한 자루를 챙긴 채 과자 행상이 돼 궁 앞에 섰던 송 의사의 오인 공격은 어쩌면 시대가 만든 필연이 아니었을까요? 다시 물고기의 죽음을 떠올리게 됩니다. 독립운동가의 희생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죽음의 구조는 닮았기 때문이죠. 환경이 숨을 조이면 가장 취약한 존재부터 쓰러진다는 것, 그리고 그 환경을 만든 존재는 사람이라는 것. 이때 만행을 저지르던 일제의 존재들을 사람으로 봐야하는지 순간 깊은 고민을 했습니다만 글 전개를 위해서는 부득이하게 사람으로 칭해야겠습니다 소양호의 수문을 누가 닫았는지, 서호천의 오수가 어디서 흘러들었는지, 원인은 아직 밝히지 못했으나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이 반복되면 그건 대응 부재라는 맥락으로 해석할 여지가 크지 않을까 합니다. 과거 송 의사는 일제에 칼을 들고 맞설 용기와 의지가 있었지만 물속 붕어는 죽어 떠오르는 것 외엔 다른 선택지가 없을 테죠. 정확히 100년 전 오늘, 금호문 앞에서 칼을 휘두른 청년이 재판장에서 남긴 말은 "총독을 죽이지 못한 것이 저승에 가면서도 한이 된다"였습니다. 송 의사의 한은 결국 광복으로 돌아와 지금까지 우리에게 자유의 빛을 내리쬐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소양호와 서호천에서 원인 불명 떼죽음을 당하는 붕어들의 한은 100년 뒤 어떤 형태로 돌아올까요? /이슈에디코 정금철 기자/
[악(樂)덕(후) 지주(지극히 주관적인) 무작위 명반 소개] 스물세 번째는 2007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밴쿠버에서 초고속 음향 역학을 위시해 기교적 음악 물리 법칙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나타난 테크니컬 데스 메탈 밴드 Archspire(아크스파이어)의 'Bleed the Future'. 인간의 손발로 튕기고 두드릴 수 있는 속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요? 지난 2007년 Defenestrated(디페네스트레이티드, 사람·물건을 창문 밖으로 투척, 직위·권위에서 강제 해임)라는 이름으로 결성한 이 밴드는 2년이 지나 자신들의 존재를 세간에 알리기 시작합니다. 2009년 아크스파이어로 개명하면서부터죠. 초기 멤버는 기타리스트 토비 모렐리(Tobi Morelli)와 딘 램(Dean Lamb), 드러머 스펜서 프루엣(Spencer Prewett), 베이시스트 야론 이블(Jaron Evil), 보컬리스트 숀 아셰(Shawn Haché)였습니다. 숀 아셰가 익스트림 메탈 밴드 Mitochondrion(미토콘드리온)에 합류하기 위해 떠난 후 올리버 레이 알레론(Oliver Rae Aleron, 음악 활동 때 사용하는 다른 이름 올리 피터스·Oli Peters)이 보컬을 맡으며 밴드의 핵심 라인업이 잡혔죠. Trendkill Recordings에서 2011년 정규 1집 'All Shall Align'을 발매한 이들은 2013년 프랑스 메탈 전문 레이블 Season of Mist와 계약하며 도약을 본격화하고 2014년 2집 'The Lucid Collective'에 이어 2017년 3집 'Relentless Mutation'으로 영향력을 과시하게 됩니다. 건강 악화 탓에 밴드를 떠난 야론 이블의 후임 클레이턴 하더(Clayton Harder)마저 2집을 끝으로 재즈 기타를 배운다며 탈퇴하고 2016년 1월, 6현 베이스의 재러드 스미스(Jared Smith)가 합류해 만든 3집은 아크스파이어를 씬 리더 자리에 올린 기념비적인 작품이 됐죠. 그리고 2021년 10월 29일 내놓은 정규 4집 'Bleed the Future'는 발매 첫 주 3700장을 판매하며 빌보드 히트시커스(Heatseekers) 앨범 차트 7위, 인디펜던트 앨범 차트 8위, 하드록 앨범 차트 25위에 오릅니다. 여기 더해 라우드와이어(Loudwire) 선정 '2021년 최고의 록·메탈 앨범' 16위, 메탈 인젝션(Metal Injection) 선정 '2021년 최고의 테크니컬 데스 메탈 앨범'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동시에 올리버 레이 알레론은 같은 매체 팬 선정 '올해의 보컬리스트'로 뽑혔죠. 이 부분은 저도 좀 의아한 게 아크스파이어의 유일한 약점은 보컬로 꼽힐 만큼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이것도 모자라 2022년 주노 어워드(Juno Award) 메탈·하드 뮤직 부문 올해의 앨범상을 받은 4집의 라인업은 이미 언급한 보컬 올리버 레이 알레론, 기타 딘 램과 토비 모렐리, 베이스 재러드 스미스, 드럼 스펜서 프루엣입니다. SF(Science Fiction, 공상과학)와 외계 침략을 주제로 삼는 아크스파이어 세계관은 이 앨범에서 '보아넷(Boanet)'이라는 기생 생물체를 중심에 두죠. 인류의 기억과 혈액을 조작해 미래를 지배하려는 보아넷의 외형은 앨범 표지에서 볼 수 있고 가사를 따라가면 하나의 디스토피아 SF 서사에 빠져들게 됩니다. 보아넷 그리고 그 배후인 'A.U.M.'의 존재처럼 음악적으로 이 앨범은 속도와 정밀도의 극한 공존을 도모하는데요. 앨범 전체에서 초고속 질주를 감행하면서도 각 악기의 음을 분리해 들을 수 있는 프로덕션과 스위프 피킹, 탭핑, 핀치 하모닉스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딘 램, 토비 모렐리의 8현 기타는 현재 테크니컬 데스의 정점을 찍습니다. 재러드 스미스의 6현 베이스 아르페지오는 송곳침대 위에 뜬 풍선과 같이 섬세하고도 선명한 윤곽을 감추지 않고 스펜서 프루엣의 초정밀 드러밍은 메탈스톰 슈퍼건을 리듬처럼 타격하는 듯하죠. 이 전체를 이어붙이는 올리버 레이 알레론의 속사 딕션 퍼커시브 그로울링은 가사 전달보다는 리듬 패턴으로 작용하며 그 자체가 아크스파이어의 정체성을 표현한다고나 할까요? 부연하자면 메탈스톰 슈퍼건은 호주의 메탈스톰사가 개발한 프로토타입 기준 세계에서 제일 빠른 총으로 분당 100만 발까지 사격 가능하다고 합니다. 퍼커시브 그로울링은 그로울링과 퍼커션의 타격을 결합한 개념으로 곡의 무게 중심을 맞추는 역할을 하고요. Cryptopsy(크립톱시), Gorguts(고것츠), Beyond Creation(비욘드 크리에이션), Beneath the Massacre(비니스 더 매서커), First Fragment(퍼스트 프래그먼), Quo Vadis(쿼바디스) 등 테크니컬 데스 메탈의 산실 캐나다에서도 최정상급인 아크스파이어의 4집에 수록된 총 재생시간 31분 26초, 여덟 곡을 살피며 이번 편 마칩니다. 작은 회오리를 만드는 리드 기타의 뒤를 따라붙는 블래스트 비트로 리스너를 잡아끄는 첫 번째 곡 'Drone Corpse Aviator'는 '사체 드론 조종사'라는 제목과 무척 잘 어울립니다. 앨범의 SF 세계관을 함축한 곡으로 올리버 레이 알레론의 퍼커시브 보컬과 스펜서 프루엣의 드러밍이 하나의 리듬 엔진처럼 맞물리면서도 슬래밍의 여운까지 느끼게 하죠. 보아넷의 면면을 본격적으로 드러내는 두 번째 곡 'Golden Mouth of Ruin'은 금빛 주둥이를 통해 새 경로를 심어 인류의 기억을 소거하는 기생체의 의식(儀式)을 묘사했습니다. 초반의 어느 정도 기본을 지키는(?) 전개를 지나 중반부터 전개되는 템포 전환이 이 곡의 백미로 정신없이 휘몰아치다가 다음 곡을 위해 차분한 긴박감을 남깁니다. 세 번째 트랙 'Abandon the Linear'는 '선형성의 포기'라는 제목답게 예측을 허용하지 않는 비선형적 구조가 특징이죠. 멍하게 듣다가 집중력을 잃어도 다시 이목을 집중시키는 베이스와 예측 못한 감상에 젖게 하는 기타 솔로는 아크스파이어가 단순하게 기술적 정점을 찍은 밴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요. 앨범의 주제를 응축한 타이틀 트랙 'Bleed the Future'는 최고 BPM이 과연 어느 정도일까 자연스레 궁금증이 들 만큼 사람의 손을 거친 연주의 물리적 한계에 도전합니다. 8박과 7박 프레이즈의 다운비트에 동기화한 투 히트 훅 반복으로 중독성을 만들죠. 보아넷의 탄생과 미래의 변주를 가사로 풀며 앨범의 SF 서사에서 전환점 구실을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다섯 번째 곡 'Drain of Incarnation'은 정적이고도 맑은 인트로로 편한 호흡을 허용하다가 1분을 넘기면서부터 과호흡 수준의 트레몰로 리프가 터지며 곡을 뒤집죠. 각각의 책무를 지키는 악기들에 드릴로 세세한 구멍을 뚫어 크게 엮은 듯 하나의 덩어리가 된다고나 할까요? 아크스파이어의 협연 능력을 압축해 보여주는 곡입니다. 이어지는 트랙 'Acrid Canon'은 날카로운 디스토션과 피그 스퀼(Pig Squeal)이 귀를 쫑긋거리게 하는 곡으로 '매캐한 규범'이라는 제목은 보아넷이 인류에게 강제하는 새 질서의 독기를 연상시키죠. 밀도 높은 리프 공세가 곡 전체를 꽉 채웁니다. 7번 트랙 'Reverie on the Onyx'는 도입부와 중후반부께 모차르트 레퀴엠의 라크리모사(Lacrimosa) 첫 소절을 인용해 특별한 느낌을 주죠. '흑마노 위의 몽상'이라는 제목은 장르의 예술적 확장을 노린 멤버들의 취지와 부합해 신비로운 분위기를 완성합니다. 익스트림 메탈의 질감이 섞인 라크리모사를 듣는 체험은 정말 특별하네요. 마지막 트랙 'A.U.M.'은 앨범에서 가장 짧지만 가장 무거운 곡입니다. 밴드를 좋아하지 않는 스펜서 프루엣의 지인이 녹음한 짧은 인트로 샘플이 삽입된 코믹스런 시작과 달리 곡 자체는 앨범의 SF 서사에 종지부를 찍죠.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낙시만드로스(Ἀναξίμανδρος)가 제시한 개념인 만물의 근원이 되는 존재 아페이론(Apeiron, 무한)을 구사할 수 있는 모든 연주에 적용한 것 같이 모든 악기가 최대 출력으로 종국을 향해 내달립니다. 인류의 기억과 미래를 지배하는 것으로 묘사되는 A.U.M(Apeiron Universal Migration)이라는 상징적 존재의 전모를 드러내며 31분간의 최면 같은 몰입이 순간이었음을 깨닫게 하죠. 참고로 이 곡 제목 자체가 우주 창조의 신성함을 담은 원시 진언이자 주문인 산스크리트어 '옴(aum, ॐ)'과의 의도적 동음을 노린 작명입니다. Drone Corpse Aviator 3:46 Golden Mouth of Ruin 4:04 Abandon the Linear 4:35 Bleed the Future 3:47 Drain of Incarnation 4:18 Acrid Canon 4:07 Reverie on the Onyx 3:46 A.U.M. 3:03 /이슈에디코 정금철 기자/
이달 1일부터 한국환경공단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24시간 대화형 자동상담(챗봇) 서비스 도입. 기존에는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전화상담을 이용해야 했지만 이제 야간과 주말에도 누리집과 모바일을 통해 층간소음 관련 정보 확인 가능. 이용자가 소음 유형이나 이웃과의 갈등 상황 등을 입력하면 ▲해당 소음의 층간소음 해당 여부 ▲상황별 대응 방법 ▲상담·중재 신청 절차 등 안내. 메뉴를 통해 이웃사이서비스 이용절차와 대응방안, 본인 인증 후 접수 민원의 진행 상황도 확인할 수 있으며 아파트·연립·다세대 등 공동주택은 물론 오피스텔·다가구주택 주민도 이용 가능. 다만 챗봇은 초기 대응을 돕는 '상담안내' 서비스로 직접 갈등을 중재하거나 소음을 측정하는 것은 아니며, 전문 상담이나 현장 확인이 필요할 경우 기존 층간소음 이웃사이서비스의 방문상담·소음측정 등으로 연계해 지원. /이슈에디코 정금철 기자/
우리나라 전 지역 곳곳을 살피며 큰 비용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행사와 축제들을 중점적으로 소개하는 [나들이 가GO이슈]의 9월 셋째 주(14~20일) 정보입니다. ◇수도권 -광명시 책축제 ·기간: 19일 ·장소: 경기 광명시 오리로 703 광명시민체육관 '무한한 탐험의 시작, 다정한 도서 여행!'을 기치 삼아 시민과 책을 잇는 독서문화축제. 작가와 소통하는 북콘서트와 문화공연, 세대별 독서 이벤트 진행. 책을 주제로 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꾸려해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한자리에서 일상 속 독서의 즐거움 공유. ·관련 사이트: https://gmlib.gm.go.kr/front/index.php?g_page=event&m_page=event15 -서리풀뮤직페스티벌 ·기간: 19~20일 ·장소: 서울 서초구 서초대로 233 반포대로 서초역~서초3동사거리 일 년에 단 이틀 10차선 반포대로를 자동차 대신 음악으로 채우는 도심 음악축제. 클래식·K-POP·키즈 클래식 등 40여 차례 공연과 시민 참여 프로그램 마련. 그랜드 스테이지 주요 공연은 사전예약제로 운영하며 마켓·먹거리 부스와 거리 곳곳의 다채로운 무대도 무료. ·관련 사이트: https://seo
[IE 경제] 해외여행 증가세보다 훨씬 빠르게 불어나는 항공서비스 소비자피해. 특히 여행사나 글로벌 온라인여행사(OTA)를 거친 항공권의 계약해제·취소수수료 분쟁이 잦아 추석 연휴 출국을 앞둔 소비자의 주의 필요. 14일 한국소비자원과 공정거래위원회는 추석 명절을 앞두고 '추석 명절 소비자 피해예방주의보'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항공서비스 소비자 피해주의보 발령. 여기 따르면 최근 3년간인 2023~2025년 항공서비스 피해구제 신청은 모두 7438건으로 연평균 37.0% 증가해 같은 기간 해외여행객 연평균 증가율 14.1%보다 훨씬 높은 수준. 연도별 피해구제 신청은 2023년 1705건에서 2024년 2532건, 지난해 3201건까지 증가. 소비자상담 역시 같은 기간 8737건에서 1만1085건, 1만4739건까지 늘며 3년간 총 3만4561건 집계. 피해 이유로는 항공권 계약해제·해지나 청약철회 거부, 과도한 위약금 등 '계약해제 관련'이 4341건으로 전체의 58.4%를 차지해 최다였고 다음은 결항·지연 등 계약불이행 2020건(27.2%), 부당행위 394건(5.3%) 순. 지난해만 보면 계약해제 관련 피해 비중은 62.1%까지 상승. 특히 여행사·OT
[IE 사회] 공무 수행 중 목숨을 잃거나 다친 공무원에 대한 국가 보상과 재활·복귀 지원 강화. 순직공무원 사망조위금 최저액은 현행 595만 원에서 1190만 원까지 오르고 위험직무 순직 유족연금도 상향. 또한 심리·건강 이상이 발견된 공무원이 즉시 업무를 멈추고 진료받을 수 있는 '긴급직무휴지' 제도도 신설. 인사혁신처(인사처)가 14일 내놓은 '특별한 희생 공무원에 대한 보상 예우 강화'라는 제하의 보도자료를 보면 이번 개편은 ▲보상·예우 강화 ▲재활·직무복귀 ▲선제적 재해예방 ▲행정 대응역량 향상 ▲합리적 관리체계 정립 등 5개 분야를 중심으로 추진. 이는 공무원 재해보상 제도 개선 종합계획에 따른 것으로 우선 순직공무원 유족이 절차 지연 때문에 보훈 혜택을 늦게 받는 문제 개선. 현재는 국가유공자 인정을 위해 인사처와 국가보훈부에 각각 신청해야 하지만 앞으로는 '순직유족급여 청구일'과 '보훈 등록 신청일' 중 빠른 날을 기준 삼아 보훈 보상 권리가 발생하도록 관련 법 개정 추진. 위험직무 수행 중 순직한 공무원의 유족연금 지급률도 기준소득월액의 현행 43~63%에서 47~67%까지 상향. 공무상 사망에 대한 예우 차원으로 순직공무원 사망조위금 최저